theZINE

typewriting 본문

잡담끄적끄적

typewriting

thezine 2024. 9. 4. 23:56

 작가의 특징을 묘사하는 글 중에는 200자 원고지에 면도칼로 직접 깎은 연필을 열 개쯤 준비한 후에야 글을 쓴다던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젠 핸드폰으로 단문을 생산해야 하는 환경에서 원고지 몇 천 장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 오래 전 이야기이고, 지금처럼 컴퓨터 키보드를 꾹꾹 눌러 쓰는 것 정도로도 복고 감성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가끔 귀찮은 이유로 핸드폰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곤 한다. 어차피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기에, 사진이 필요한 대부분의 글에서 어차피 핸드폰을 써야 한다. 핸드폰으로 제목 정도만 쓰고 일단 사진부터 모두 업로드한 다음에 컴퓨터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어찌됐든 핸드폰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는 디카로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사진을 빼내고, 여러 장의 사진을 한 번에 작게 리사이즈 하고 로고 워터 마크 같은 걸 입혀주는 일괄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 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글머리 사진 같은 대표성 있는 일부 사진은 싸이월드 감성으로 편집하기도 했다. 메모장&펜 사진이나 머그컵 사진, 비 내리는 처마에 빗물이 맺히고 떨어지는 사진을 뒷배경을 많이 날려서 스톡이미지 비슷하게 스톡이미지인 양 사용했다. 포토샵으로 이런 저런 필터를 써서 효과를 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앱에서는 그 당시 필터들보다 좋은 성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그때 하던 식의 사진 편집을 할 여력도 없고, 그저 폰에서 올리고 적당히 잘라서 쓰는 정도다.

 

 원고지와 친필과 컴퓨터와 노트북과 핸드폰이라는 글자입력-type&writing-도구들의 간격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하다. 나에겐 모두 다른 느낌인데, 나의 세대보다 훨씬 디지털친화적으로(?) 성장한 아이들 세대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손글씨의 매력을 느낄까, 핸드폰으로 쓰는 엄지 문장이 추억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대상과 수단이 변할 뿐, 인간은 그때도 똑같이 과거를 그리워할까?

 

 회사에서 문서나 생각을 정리할 때 혼자 빈 회의실에서 보드마커로 커다란 벽에 내용을 적어보곤 한다. 간단한 내용인데 뒤죽박죽이 되서 정리가 안되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풀어나갈 때가 종종 있다. 연필 깎는 장인이 되어야 했던 어떤 작가들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본인의 글을 쓸 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나에겐 회사에서는 보드마커, 집에서는 노트북 키보드가 되었을 따름.

'잡담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짜장의 근본  (0) 2024.09.08
모닝 커피  (1) 2024.09.06
서울 콩국수 양대산맥 진주회관  (0) 2024.08.17
만가 (심훈)  (0) 2024.08.17
버거리 버거  (0)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