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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계획 본문
지난 연말 초겨울에 일정 상 포기한 굴업도를 너무 춥지는 않은 3월 말에 가볼까. (백패킹 3대 성지 - 짬뽕 3대 성지나 3대 500?은 다른 거고, 아무튼 3대OO라는 단어의 인위적인 어감이 별로긴 하지만, 누가 정한 건지 알 수 없는 근본 없는 3대 맛집류와는 달리, 백패킹 3대 성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소인 듯 하여, 이곳들 모두 가보지 못했지만 나는 모두를 인정하기로 함.) 굴업도의 백패킹 장소는 춥다는 바닷가에서도, 사방이 탁 트인 섬에서, 그 중에서도 산(언덕) 위 허허 벌판에 있다. 한 겨울에는 극동계 장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3월이 좋을 것 같다.
작년 6월 말, 비바람이 심해서 포기한 제주도에 딸린, 우도에 딸린, 비양도 백패킹을 올해 6월에는 다시 시도해볼까. (여기도 백패킹 3대 성지) 이번에는 시도가 아니라 반드시 다녀오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번에 타보고 뭐 이런 허접한 차가 있나 싶었지만 또 잠자리가 생각보다 편하고 정이 들었던 중국산 듣보 캠퍼밴이 생각난다. 다시 그 차를 빌려서 비양도와 다른 한 곳을 가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내친 김에 연말에는 선자령 (대관령 양떼 목장 근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동네. 역시나 백패킹 3대 성지)도 가볼까. 선자령은 꼭 추울 때 가란 법은 없는데, 눈 오는 날 가보고 싶은 동계 백패킹 욕심이 생기는 곳이다. 다만 백패킹 장비 개시하던 날, -1~0도의 날씨도 생각보다 추웠던 걸 생각하면, 극동계용 침낭 없이 선자령에 도전할 계획은 없다. '적절한 장비 없이 무리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써놓고 보니 '적절한 장비를 사고 싶다'는 말을 하는 느낌이다. (애초에 나는 백패킹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지만, 결국 오토캠핑 장비에 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백패킹 장비에 썼지.)
내 장비 수준은 '동계도 가볼만은 한데, 극동계는 힘들' 것 같은 정도다. 침낭의 내한 스펙을 COMFORT 온도와 EXTREME 온도로 구분하고, 전자는 '이 침낭을 덮고 편하게 잘만한 온도', 후자를 '이 침낭을 덮고 자면 죽지는 않을 온도'라고 한다는데, 실제로는 전자는 '캠핑이 가능한 최저 온도', 후자는 '사고 상황이라면 이 침낭을 써서 죽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자발적으로 이 온도에서 쓰지는 않을 온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내복+잠옷,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 발포매트 and/or 에어매트, 침낭 속 핫팩 같은 보조 수단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여기에 야전침대까지 더해지면 어지간한 한국 산속 겨울날씨라도 해볼만 할 것 같다.
백패킹 매니아들은 여기에 더해서 구스다운이 들어간 바지와 양말덧신도 신는다. (우모바지, 우모양말) 극동계 날씨에 얇은 텐트와 침낭에만 의지해서 한겨울 산속 날씨를 견디려면 그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제대로 된 패딩이나 침낭에 들어가는 구스다운이라서 15-30만원은 하는 것 같다.
'이런 물건까지는... 나에겐 과해'라고, 지금은 느끼지만 언젠가는 나를 위해 비밀리에 주문한 선물이 되어있을 지 모른다. 5년 10년 후 인생 계획도 물론 중요한데, 이제 막 1개월을 보낸 시점에서 생각해보는 올해 주요 이정표, 마일스톤을 생각해보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