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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끄적끄적

good cop, bad cop

thezine 2024. 12. 21. 01:32



good cop, bad cop의 원래 뜻은 다르지만,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순화하자면, 무심한 부모 라고나 할까)의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 표현이 떠올랐다. 마침 평일에 쉬게 되서 새로 옮기려는 축구팀 연습장에 갔다. 축구하러 온 아이들 숫자는 대충 세어도 최소한 40명은 될 것 같고, 코치만 6명 정도. 그동안 다녔던 팀들에 비해서 인원이 많다 보니 우루루 뛰어다니는 모습도, 분위기도, 활기가 느껴진다.
 
 대충 세어보니 연습을 보러 온 부모는 15명 정도였다. (열 명 보단 많고, 스무 명은 안되어 보였다) 나처럼 부부가 같이 보러 온 사람들도 조금 있는 것 같으니 대충 세어도 아이 40명 중 10명 정도만 부모가 연습을 보러 왔다.

아이의 학교 공개 수업 행사에 갈 때는 좀 더 자세하게 세어보곤 한다. 공개수업 때면 어지간하면 휴가를 내고 수업에 따라다녔던 것을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심리도 없지 않고,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보다 더 가정적이라고 하는 '요즘'의 내 근처 나이대의 부모들은 어떨까, 숫자로 확인하는 것의 현실감이 있다. 학생이 30명이라고 치고 부모가 25명이었으면, 대충 봐도 저기는 부부가 같이 왔구나 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대충 아이들 30명 중에 10명 정도는 오늘 부모님이 모두 못왔구나, 그런 셈을 해보곤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그냥 ZOOM으로 대신했던 공개 수업, 누구든 일이 있으면 못올 수도 있는 행사인데, 그래도 부모가 그 자리에 없으면 그 아이는 아주 조금은 섭섭하거나 아쉽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스스로 묘사하고 설명하지 못할 망정, 작게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그걸 느끼고 인식하기도 하기 마련이다.
 
 몇 번의 공개수업 때나, 오늘처럼 축구 클럽을 옮기는 경우에, 아이가 삶의 소소한 전환점을 지나는 순간들에 오늘처럼 운때가 맞으면 good cop이 되어 연습시간 내내 같은 자리에서 거의 일관되게 아이를 지켜보며 응원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다가 '축구 연습 정도의 일에 굳이 같이 가서 내내 서 있어주는 일'은 생각도 못할 만한 사정이 생길 때면 나도 언제든 bad cop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산다는 게 그렇다.

자상한 부모와 무심한 부모의 간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리 멀지 않다. 완벽한 자상한 부모나 일관되게 무심한 나쁜 부모는 흔치 않다. 실제의 대부분의 부모의 삶은 그 한 중간에서, 아마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상한 부모에 조금 더 가깝게, 그러다 때론 그 지점에서 크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진폭 내에서 여건에 맞게 또는 기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good cop으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나의 의지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은 운도 따라주기를 바래야한다. 작은 부모노릇 한 번 하는 데도 내 마음대로만 될 순 없다는 생각에 겸손해진다. 나의 천성 상 조금 더 뻔뻔하고 자신만만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쩔 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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