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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 본문
호사유피 인사유명은 모양 좋은 말일 뿐, 남길 이름 석자 크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떠난 후에는 세상에 이 나무 그루터기만큼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옆 동네 뒷 산에 그루터기들은 인위적인 간벌의 흔적이 아닐까. 시계판처럼 생긴 흠집은 아마도 물이 흐르고 얼고 녹아서일까. 강남 대로변의 낙엽은 빌딩 관리인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소일거리를 더할 뿐이지만, 산에서는 떨어지고 쌓여도 누구에게도 일 없이 자연스런 풍경이라서 좋다.
오래된 작은 길가에서는 종종 나무가지로 만들어진 터널들을 볼 수 있다. 나무는 그저 제 모양대로 자랐을 뿐이지만 그 사이로 길이 생긴 덕분에 나무의 일부에 터널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오늘 비가 온 탓에 이제 산에 가도 마른 낙엽 밟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대신 차갑고, 맑고, 촉촉한 가을 공기를 만날 수 있겠다. 사람의 흔적이 진한 냄새들 - 음식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 연기 냄새 같은 자기 주장이 강한 냄새 - 없이 백지같고 투명한 공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설렌다.
생각없이 가을을 보내버릴 때도 종종 있었는데 올해는 어째 이리 가을이 소중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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