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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 본문
홍동백서니 하는 것이 생각보다 '근본 없는 매뉴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차례와 제사가 참 의미 없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왜 그렇게 정했는지 알 수 없는 규칙을 따라서 음식을 준비하고, 배치하고, 절 하고, 술잔을 채우고 비우는 행위가 그렇게 무의미해보였다. 제사의 실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름 상당한 지적인 충격(?)울 받은 지라 여전히 제사 행위가 무의미해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이름도 모를 몇 대조 할아버지가 아닌, 사랑하는 그리운 가족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 일을, 이렇게 해야 해' 라고 믿으며 성의를 가득 담아 상을 차리는 행위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제사를 지내며 눈가가 뜨끈해지는 순간이 온다.
아버지 제사를 모시면서 그것이 자식으로서 가족으로서 그렇게 하는 게 좋다는 동료의 이야기가 아주 인상 깊었다. 이게 뭐냐 싶은 생각이, 나처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닌 직접 손에 음식과 기름과 물을 묻히며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없지는 않겠다 싶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의무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제사라는 것이 고인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표현하는 진실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혹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은 있다. 이미 집집마다 제사상 음식을 자유롭게 변형하기도 한다지만 여전히 딱히 맛있지도 않은 음식에 돈과 시간을 많이 쓴다는 생각은 한다. 물론, '조율이시 홍동백서'가 '근본 없는 지침서'라 해도, '몇 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해도 새로운 '전통'이 될 수는 있는 것이긴 하다. '이 방식(홍동...)은 생각보다 아주 역사가 짧은 전통이지만, 그래도 이것도 여전히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식이 있고, 이것을 지키는 것이 돌아가신 가족에 대한 나의 성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내용을 담기 위해 형식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메뉴는 더 유연하게 정했으면 좋겠다. "평소에 내 돈 주고는 먹지 않을 메뉴인 건 맞지만, 그래도 격식도 지킬 겸 이럴 때 한 번 차려보는 거지." → "홍동... 거시기 혀.", "뭐 딱히, 굳이, 이 음식이어야 될 필요는 없어. 고인을 위한 제사도 산 자들이 먹으려고 만드는 거야." → "고인을 떠올릴 수 있도록, 고인의 생전 최애 해장 메뉴, 별점 5점 줬던 메뉴, 웨이팅 2시간도 했던 메뉴, 월급 타면 드셨던 메뉴, 그리고 후손들의 입맛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메뉴, 가짓수, 양을 조절합시다."
그리고, 며느리가 제삿상을 차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 사(史)정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을 모든 한국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고인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음식을 차리는 것이 더 의미있겠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된다. 짧지만 살가운 가족의 정을 나눈 며느리도 물론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이 가장 짧은 사람 한둘이 전적으로 상을 차리는 것보다는, 고인을 가장 많이 그리워하는 자식들이 준비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면 메뉴와 맛을 떠나서 더 의미가 느껴질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인이 특별히 좋아했던 메뉴가 아닌 이상) 배달 음식을 올리거나 남이 만들어준 음식으로 가짓수를 늘리기보다는, 약소하지만 내 손으로 성의껏 만든 메뉴로 차리는 것도 좋겠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끓인 필살기 미역국과, 잡곡의 비율과 물 조절을 세심히 해서 씹는 맛과 고소함을 극대화한 새로 지은 밥, 직접 무친 겉절이 정도도 내 기준에는 괜찮다 싶다. (물론 그 자리에 모인 후손들은 배달이든 뭐든 그것보다는 더 많은 음식이 필요하겠지만.)
물론 나는 이러나 저러나 차릴 일이 없는 사람이고, 당사자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가족들이 모여서 집중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벤트가 없어지게 된다. 살아오며, 나이 먹어가며 이런 저런 장례를 치르면서 위와 같은 생각들을 했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시점에서 위에 말한 고민들은 관계 없는 이야기가 되버린다. 그래서 예전부터 제사가 없는 집안에서 명절이나 기일에 부모님이나 가족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아직도 행동은 부족하지만) 나름의 방법을 생각 중이다. 그렇게 살갑지는 않은, 깊은 정을 쌓지는 못했던 손주나 후대 후손일지라도 전혀 다른 환경과 시대와 삶을 살아온 어른들의 '인생을 기억하고 나누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의미있는 일이다.
명절은 언제나 피곤함과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귀찮음과 보람을 동시에 안겨준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며칠 만에 몇주를 산 것 같은 느낌. 더불어 이 기나긴 명절 덕분에 이 모든 일을 끝마친 지금도 아직 쉴 날이 남았다는 것에 감사 감사 무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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