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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끄적끄적

역사 속에 잠들다

thezine 2008. 1. 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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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안에서 2차 대전 때 추락한 비행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최근은 아니고 두어달 전쯤)

깊은 바다 속에 잠긴 것도 아닌데 몇 십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하늘을 날기 위해 최대한 가벼운 몸체로 설계하고 만든다지만

모양새는 여전히 쇳덩어리인 비행기.



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는 해방을 위해 악전고투하던 시절에

하늘을 날며 전쟁을 벌이던 제국들의 추억이 묻어난다.



학교 다닐 때는 지긋지긋했던 역사.

세계사든 국사든 참 재미가 없었다.

연도를 외워서 순서를 기억해야 하고

정조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이 무엇이고

누가 만든 동전의 이름이 무엇이고 하는,

순전히 시험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답하는 데 초점을 둔 수업들.


아마 선생님들로서는 학사일정이라는 궤도를 벗어날 수가 없었을테지만,

역사를 가르치며, 그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야기(story)라는 점을 항상 일깨워줬다면 어땠을까.


내가 기억하는 역사 수업은

등장 인물의 이름은 많이 들어 익숙하지만

마치 소설 내용을 외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현재라는 그림이 완성된 것은 모두

역사라는 밑그림에 의한 필연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수업이었다면,

국사교과서의 몇 줄에 불과해 보이는 내용이

사실은 당대 인물들의 치열한 대립과 경쟁을 요약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면,

아마 역사 수업이 훨씬 재밌었을 것이다.



때늦게 역사에 흥미를 갖고 틈틈히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있다.

역사는 하나이지만 그 역사를 해석하는 틀은 늘 바뀐다.

거울이 하나이지만 거기에 무엇을 비추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 보이듯,

늘 사람들은 현재의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하곤 한다.

한민족이란 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기에 인접한 당나라와 싸운 고구려를 한 민족의 수호자로 해석한다거나

마찬가지로 인접한 경쟁국가 고구려와 싸우는 당나라를 응원했던 신라를 민족반역으로 해석하는 것 모두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의도적인(?) 오류들이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무심한 표현들을 상기해보고

어른이 되어 읽은 책을 통해 그 내용의 속 뜻을 헤아려보고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깨닫는 것도 재미있다.

지적인 호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것도 즐거운 일.



하지만 가장 즐거운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상상해보면서

비장함, 긴장, 박진감, 씁쓸함, 공포, 기쁨과 같은 감정들이 느껴질 때다.

기록된 역사의 모든 순간이 해석의 차이를 떠나서 대부분 실제 있었던 일이며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그 당시의 물건들에는

몇 세대에서 몇십세대 앞서 같은 세상을 살았던 옛 사람들의 손길이 남아있음을 느낄 때

역사는 살아있는 삶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바다물에 몇 십년을 잠겨 있었던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전투를 벌이던 장면을 상상해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희극, 누군가에겐 비극이었을 전투의 승리와 패배를 비교해보는 것,

'격추'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성과'의 일부로 들리지만

'파괴'와 그에 따른 '죽음'을 떠올리면 역시 전쟁의 비극이었음을 생각해보는 것,

나는 요즘 이렇게 역사를 즐기고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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