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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지금 여기의 유학, #2 한국인의 자서전

thezine 2008. 4. 9. 16:24

서평 #1. 지금 여기의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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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에 반발해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유학'이라는 책은 우리나라 유학의 마지막 보루라 할 성균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다. 저자들 역시 성균관 대학 유학동양학부의 교원들이 다수이고 나머지 필자 역시 성균관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공부했던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들'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12명이 주제를 나누어 각자 1~2꼭지의 글을 써서 하나로 묶어낸 책이다.

 우선 내용을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도록 목차를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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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왜, 지금 유학인가

 제1부: 지금, 현재의 유교
- 유교, 민주주의, 자본주의
- 종교로서의 유교, 그 역할과 전망
- 유가의 의사소통과 상호배려의 윤리
-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통과 가족주의
- 여성의 경험으로 읽는 유교
- 동아시아의 미학지평과 유가예술정신
- 계몽의 빛, 유교

제2부: 유학의 영원한 이상
- 중국 유학의 연원과 전개
- 한국 유학의 脈(맥)과 흐름
- 유학의 이상: 자아의 성숙과 세계평화
- 유학의 생태 친화적 자연관
- 인간에게 어떻게 도덕이 가능한가?

마치며: 동아시아의 미래는?
- 21세기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과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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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유학의 종교적인 측면, 사상적 연원, 정치적 의미, 유학의 여성관, 자연관 등 여러 측면을 나누어 분석한다.

 이 책의 서문격인 '여는 글'에는 먼저 얘기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도 등장한다. 구한말의 온갖 폐습과 악습, 그리고 좋지 않은 '유산'들을 모두 '공자(유교)' 때문이라는 식의 비난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니 어쩌니 하며 '유교 문화 덕분에 아시아 국가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던 서구 지성들이 IMF 위기가 유교 문화 때문이라는 식으로 한 입으로 두말하는 타자의 시각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시킨다.

 '공자가 죽어야...'에 대한 어떤 서평을 보면 과연 그 비난의 화살이 유학과 공자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나라가 구한말 총체적인 어려움에 빠지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도 지겨운 당파싸움과 아무 쓸모 없는 이론적인 논쟁으로 소모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유교가 나쁜 때문인가? 하는 억울함을, 유학을 학문으로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변론하고 알려지지 않은 장점을 찬양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악습들이 모두 유교 때문이라는 비판이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상과 종교라면 대개 근본적인 정신은 훌륭한 것도 사실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직자들의 비행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나, 내부 권력 다툼으로 소리없이 치열한 한국의 불교나, 폭탄 테러범들이 자신의 신앙을 올바르다 착각하며 신봉하는 이슬람교나, 그 본연의 가르침이 사실은 훌륭하고 고매한 것임은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원래는 좋은 사상인데 잘못 적용이 되서 그렇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이 시대에 필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유학자들의 외침은 유학 뿐 아니라 다른 사상과 종교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유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할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국 청나라가 망해가던 시기, 망한 직후에 군벌이 할거하던 시기에도 권력을 독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 혹은 백성의 충성을 얻고 싶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유교를 강조했다. 청나라 자체도 만주족이 한족을 점령하고 세운 나라지만 만주족 왕족 역시 유교를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유교는 권력의 정당성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권력에 복종시키도록 하는 이념을 제공한 것도 사실. 더군다나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평등한 관계도 아닌데 권력의 정당성을 강조해봐야 실질적으로는 유효한 통치이념은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유교는 정말 백성을 위한 통치를 하고 싶은 의지와 능력을 갖춘 '성군'이 나타날 때만 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청나라의 건륭제, 강희제, 조선왕조 500년 세종, 영/정조가 성군으로 기록된 것은 그만큼 나머지 통치자들이 '별로'였다는 뜻은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서도 '유학은 어떤 학문이다'라고 짧게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유학과 유교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한국 문화에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너무 깊게 새겨져 있다 보니 어느 것이 유교의 유산이고 어느 것이 한국 고유의 정신 문화인지 구분하기도 불가능하다. '장유유서'처럼 평소에 사용하는 어휘나 생활습관에도 깊이 스며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달리 상하관계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심리에도 유교가 스며있다.

 중국의 산동성 '곡부(Qufu취푸)'에서 태어난 공자와, 그가 집대성한 유학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에 여행을 갔을 때 하노이에 유교 사당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중국은 문화대혁병 때 저지른 엄청난 삽질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 기념물을 짓기도 하고 공자의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전에 읽은 책 중에는 공자의 직계 75대손임을 내세우는 필자가 쓴 책도 있었다. 대만에 갔을 때 왠만한 대도시에는 모두 공자를 기리는 사당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주 이씨가 가끔씩 종묘에서 큰 행사를 여는가 하면 왠만한 성씨(姓氏)는 모두 족보를 만들고 때 되면 시제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이다.

 성균관대학의 유학자들은 유교의 억울함을 설명하고 이 시대의 지침으로 유교를 되살리자는 권고의 뜻으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교는 살아남아있다. 오히려 너무 깊이 스며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서평 #2. 한국인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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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특이하게 2권에 대해 서평을 쓴다. 책을 무지 많이 읽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위에 소개한 '지금 여기의 유학'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무지 오래 전에 처음 펼쳐든 책이다. 나는 책을 한 번에 한 권만 읽는 스타일이 아니고 동시에 2-3가지를 읽는 타입이다. 집에서는 이 책만,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이 책만 읽는다거나 기분에 따라서 그중에 딱딱한 책, 그 중에 가벼운 책을 골라 읽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경우에 따라선 이번처럼 2권의 책을 며칠 간격으로 끝내기도 한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기도 하고, 초반부에서는 산만하다가 뒤로 갈수록 집중해서 읽는 스타일이라, 이 책을 끝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관련 자료를 하나 둘 차곡차곡 모으는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각지의 전래되어 내려오는 전설, 민담, 시조, 야사에 스며있는 한국인의 정서, 삶에 대한 해석을 풀이해놓은 책이다. 그런데 그 순서가 사람의 일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아기가 생기기를 비는 '아기빌이'끝에 생명이 '탄생'한다. 아기가 '성장'을 거쳐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세상살이'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 작은 따옴표로 묶은 것들이 바로 이 책의 큰 얼개이자 각 장의 이름이다.

 시작해서 이 책에 대해 서평을 늘어놓기보다는 몇 가지 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하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 산에서 여인네가 소변을 보아 세상을 적시는 꿈이 아기를 낳는 태몽이더라
 - 처녀뱃사공의 배에 탄 남정네가 '내가 너의 배에 탔으니 난 너의 남편'이라고 농을 치자, 남정네가 내릴 때 그 처녀가 말하길 (내 배에서 나온 놈이니) '내 아들놈아'라고 하여 남정네를 멋적게 했더라
 - 혼인 첫날 밤, 화장실에 다녀오다 그림자가 자객이라 착각한 신랑이 놀라 달아났다. 몇년 후 그 마을에 돌아온 남정네는 폐가가 된 그 집에 다시 돌아왔는데 신부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은 채로 죽어있었다. 그 어깨에 손을 얹자 그제서야 가루가 되어 사라졌더라. 삭지 않는 기다림의 상징.
 - '죽어서 눈 못 감는' 것이 '미완'을 의미하며 죽어도 삭지 않는 시신 역시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상징하는 전설


 위에 일부 소개한 것처럼, 이 책은 다양한 민담, 전설, 야담 등에 스며있는 한국인만의 의식체계들을 소개한다. 그 이야기들을 읽자면 어느날 이 책을 쓰겠노라고 자리잡고 앉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여기서 전해들은 이야기, 저기서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그때그때 남겨두었다가 정리한 글인 것 같다.

 제목이 '한국인의 자서전'인데 '죽어서 눈 못 감을' 같은 한국인만의 정서가 스며있는 표현들이, 이야기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 책의 저자 김열규氏의 경우에는 민담과 전설을 들어 한국인만의 정서와 정신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평소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한국만의 특수성을 깨닫는 경우가 떠올랐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도달하는 곳은 비슷한 셈이다.

 그저 이웃집들과 한 마을에서 평생을 살고 기껏해야 몇십리를 못 벗어나던 시절에는 '나라', '민족'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국제적인 문제들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시시때때로 국가대표 운동경기가 열리는 시절이 되어서야 '우리나라', '한민족' 같은 개념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외국에 나가거나 외국 문화를 접할 때일수록 반대로 한국에 대해 생각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뼈저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한국인의 자서전'이 처음에는 지루해서 한 번 덮어놓은 후에 한참 후에 최근에야 다시 읽었는데 이 책에서 읽었던 몇 시구절들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는 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시 한수와 이야기 하나만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 사랑을 칭칭 얽고 동여서는 짊어지고
태산 준령을 허위허위 허위 올라가니,
그 모를 벗님네는 그만하고 버리고 가라지만
가다가 눌려 죽을 망정 나는 아니 버리고 갈까 하노라.



- 어느 멀지 않은 옛날, 아주 외딴 산골 마을에 화전민 부부가 살았다.
늦게 얻은 사내 아이가 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부부는 아기를 업고 산을 올랐다.
양지 바른 언덕의 짙푸른 노송(老松)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거죽으로 꽁꽁 동여매어 떨어지지 않도록, 가지가 둥지처럼 아늑한 곳에 아이를 매달았다.
마치 번데기 같다해서 번데기 무덤이라 했다.
번데기 무덤이 완성된 후, 아내는 나무에서 내려온 남편을 안고 흐느끼며 떠나는 아기에게 축수했다.
"잘 가거라 아가야! 겨울 가고 봄이 오거든, 번데기 아가야!
허물 벗고 훨훨 날아오르렴. 큰 나비 되어 날아오르거라.
그리고 옛날 네집으로 이 어미 찾아와다오!"
겨울 가고 봄이 왔을 때 오두막집 뜰에는 매화가 피었고
전에 본 적 없는 커다랗고 예쁜 나비가 찾아들어 봄이 다 가도록 매화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허전하기 그지없는 산간벽지의 쓸쓸한 화전민 부부의 인생살이,
번데기 무덤을 지어준 어머니는 밤마다 꿈꿀 것이다.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잠든 아기의 꿈을 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