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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 주걸륜 본문

서평&예술평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 주걸륜

thezine 2008. 2. 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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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의 포스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만의 유명한 가수 겸 배우 '주걸륜'이 주연뿐 아니라 감독까지 맡아서 만든 영화다. 어딘가에서 이 영화가 괜찮다는 영화평을 보고 즉흥적으로 구해서 방금 봤다.

 주걸륜은 그전부터 유명했던 대만의 가수이다. 가수 주걸륜의 노래는 이미 오래전부터 구해서 MP3로 듣곤 했는데 이 정도로 실력이 있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대만과 중국은 말이 통하니 만큼 중국 본토에서도 아주 유명한 가수다. 홍콩, 대만, 중국 본토의 가수나 영화배우들은 교류가 아주 활발하다. 주걸륜은 공리/주윤발과 함께 '황후화'에도 출연했는데 그러고보면 본토, 홍콩, 대만의 배우가 모두 출연한 셈이다. 중국과 대만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더욱 특이하게 느껴진다. 남한과 북한에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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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는 피아노가 자주 등장한다. 다른 악기도 종종 등장하지만 실제로 연주하는 소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소품 이상이며 스토리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주걸륜은 '피아노 스턴트' 없이 본인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솜씨가 훌륭하다. 내가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두 달 다니다 때려치운 것이 한이 되게 만든다고나 할까.

 가수로서의 주걸륜이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황후화'에 그가 출연한 걸 봤을 때는 그저 아이돌 스타라서 캐스팅이 된 걸로 생각했다. 이제보니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작곡, 노래, 연기, 감독 등등. 주걸륜의 주가가 우리나라에서도 확확 떠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는 개봉관은 적었지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대만 영화가 개봉된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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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 주걸륜(극중 이름은 '아룬')은 피아노를 잘 치는 고교생으로 등장한다. 예술 고등학교인지 악기를 다루는 학생들이 대부분.
 
 주걸륜은 학교에서 청순한 매력을 가진 '샤오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첫 눈에 봐도 청순하고 가련해보이지 않는가!

 저 배우의 이름은 Gui Lun Mei라고 한다. 영화 외의 사진도 찾아봤는데 영화에서 모습이 가장 나은 듯 하다. 실제 모습에선 영화만큼 청순한 느낌이 안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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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오위를 알게 된 아룬은 이것저것을 물어보지만 종종 그녀는 그저 '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說的秘密)'이라고만 대답할 뿐 자세한 이야길 해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별 뜻이 없어보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대사였다. 나름의 반전이 있는 영화라서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선 하지 않겠음.

 아무튼 위 장면은 이 영화의 제목인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대사가 등장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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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첫키스 장면.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경치, 음악(이나 귀를 편하게 해주는 뱃소리나 새소리 등), 둘만 있는 순간 - 이런 조건들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대개 효과가 좋다.

 어느날 아룬은 샤오위의 집을 방문한다. 샤오위의 집 옥상은 아름다운 담강(淡江)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이 강이 담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 이름이 담강고등학교라서 그럴 거라고 추측한 거다.) 타이페이시 가까이에 '담수하(淡水河)'라는 강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 강의 다른 이름이거나 지류가 아닐까. 바다처럼 폭이 넓고 잔잔이 흐르는 담강이 내려다보이는 그곳,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멋진 장면. 언젠가 다시 대만에 가게 되면 이런 경치가 보이는 곳을 찾아가고 싶게 만든다. (이래서 관광과 문화는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미국 드라마를 보고 뉴욕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생각해봐도 그렇고,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한국에 찾아오는 중국계 관광객들이 그렇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대만은 자연 경관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랜드캐년이나 나이아가라폭포, 혹은 계림이나 장가계 같은 임팩트 강한 곳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지만 대만은 그 아름다운 자연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무덥고 햇빛이 강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짜증나기만 하진 않은 곳.

 이런 풍경...을 화면 가득 담아놓고 그냥 바라보며 와인 한 잔 마셔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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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에서 주걸륜은 종종 피아노를 친다. (마음만 먹으면 피아노 잘 치는 남자는 여자 꼬시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 이 장면에서 주걸륜은 굳이 한 손으로만 피아노를 친다. '샤오위'가 '왜 한 손으로 치느냐'고 묻자 손을 내밀며 '너의 손을 잡으려고'라고 말한다. 내가 피아노를 잘 쳤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더욱 얄밉다. 피아노 치는 것 갖고도 여자 꼬시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는 건 남자의 본성이다. 어쩔 수 없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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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주걸륜)을 좋아하는 여학생. 결국 미녀에게 둘러싸인 천재에 대한 이야기군. 쳇. 이래서 직접 감독한 건가?


 아룬이 연습실에서 눈을 감고 피아노를 치고 있던 중에 아룬을 짝사랑하는 여학생(서있는 사람)이 연습실에 들어온다. 아룬은 그게 샤오위인 줄 알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을 가리킨다. 그러자 여학생은 웬 기회냐 싶어 아룬에게 뽀뽀를 하고 이를 놓칠소냐, 샤오위는 이 모습을 창밖에서 봐버린다. 상처 받은 샤오위. 아룬은 자기에게 입을 맞춘 사람이 샤오위가 아니란 걸 깨닫고 뛰어나오지만 이미 샤오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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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오위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천식으로 몸까지 아프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영화는 어설프지 않았다. 아룬과 샤오위의 아픔은 단순히 한 쪽이 병들어 죽는다는 식의 최루성 멜로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아룬과 샤오위를 힘들게 하는 슬픔의 정체는 따로 있다. 바로 연인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 그리고 그로 인해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만날 수 없는 이유'는 '먼 거리'이다. 혹은,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 사람이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아룬과 샤오위가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일상적으로 볼 수는 없는 영화적인 감성의, 힌트를 더 주자면 환타지스러운 장벽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이유'의 형태가 특이할 뿐, 결국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다. SF영화도 원래는 미래라는 특별한 배경을 통해 심오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탄생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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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못볼 줄 알았던 아룬과 샤오위가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

 아룬은 샤오위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다시 샤오위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미소만 짓고 별 말이 없는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강의실에서 재회했다. 이 마지막 장면에 그 날의 날씨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만, 추측컨데 영화에서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리 춥지 않은 포근한 봄날씨였겠지. (나는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만날 수 없는 이유'라는 게, 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알고 보면 해결할 수 있는'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영화는 어쩐지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내가 무엇을 그리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리고 누군가, 무언가를 만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무엇을 만날 수 없고 왜 만날 수 없는지 모를지라도, 혹은 그런 것따윈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잘 만든 멜로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에 빠지고 싶어지는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나면 내가 만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샤오위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둘이 '만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만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그리운 사람/존재는 무엇인가? 확실한 답이 없어도 이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울린다.





ps: 그러고보면 대만 영화는 한국에선 접하기 어려운 듯 하지만 관련이 있는 작품은 종종 접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와호장룡'을 감독한 '이안' 감독의 다른 작품들-결혼피로연, 브로크백마운틴, 색계-도 간접적으로는 대만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오래전이지만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도 유명하다. '비정성시'는 대만 근대의 아픔을 담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