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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의 기술

thezine 2008. 5. 28.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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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받았던 이메일들이다. 날짜가 찍힌대로, 올해 초 2월 무렵에 나날이 받았던 메일들이다. 우물에 빠트린 돌멩이 마냥, 증시가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던 시기다. 주가지수가 어떻게 어떻게 근근이 기어올라 1900을 찍는가 싶더니 다시 요즘은 1800 언저리에서 꾸물대는 듯 하다.

 어쨌거나 이 때 받았던 이메일 제목들을 보면 하나 같이 '지금이 나빠보이지만 사실은 기회야', '지금이 바닥이야', '고통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구('기대와 현실의 갭을 줄여가는 과정'이란 표현은 명문明文으로 인정!)'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중에서도 '봄바람은 불어도 돌아볼 것은 많다'는 문장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차압딱지가 붙고 집에서까지 쫓겨나서 철부지 아이의 손을 잡고 어느 곳에 밤을 보낼지 걱정하고 슬퍼하던 사람이 어느날 고민에서 해탈하고 마음을 비운 경지에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방금 윌 스미스가 아들과 함께 출연한 'pursuit of happiness'를 봤다.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보다 더 힘들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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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우리투자증권에서 날아온 이메일들인데 그 중에 눈에 띄는 '신한은행'에서 온 메일은 '주가 폭락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펀드에서 돈 빼가지 말라'는 부탁이 담긴 내용이다. 흔히 하는 말대로 경제는 '심리'라는데 다행히도 '펀드 런'은 없었지만, 미국 대공황 때 은행에 줄을 서서 예금을 찾아가던 행렬을 찍은 사진이 잠깐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2월 그 무렵에 특히 심했지만 그 이후로도 '투자증권'회사에서 날아오는 이메일은 언제나 비슷하다. 이유는 참 다양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투자해라' 하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저 메일을 작성하는 사람은 누군지 상당한 창의력과 강한 자기합리화로 무장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글이란 것은 종류에 따라서는 이렇게 명확한 한계 속에서 쓰여진다.


 언젠가 PC 통신에 빠져들 무렵, 혹은 그 전에 친구의 글을 읽고 감탄했던 이후로 틈틈히 글 쓰는 일을 즐겨왔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을 쓴다고 의식을 하면 그토록 오래 취미로 해온 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간단한 내용도 내가 쓰면 길어지는 탓에 원고지 몇 장이라는 분량까지 정해지면 더 꼬이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학부생들 후배가 중간고사를 끝내고 처음 집어든 학교 신문에 내 글이 하나 실렸다. 공대를 나와 중국어로 먹고 살고 채식에 대한 글을 쓰는 나를 보고 어떤 친구가 참 웃기고 재밌다고 했다.

 저 이메일들을 작성한 사람이 자기가 할 일에 대해서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 같진 않다. 때론 기발함에 무릎을 치기도 하고 때론 애처롭기도 한 이메일 시리즈. 그런데 지금 보니 저런 글을 다른 주제로 스스로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상황이 어쨌건 투자해라'....가 아닌,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난감해도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때론 조금 억지스러운 이메일을 써봐야겠다. 이 세상에서는 주위 어딜 둘러봐도 무조건 격려해주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스스로 격려하는 습관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