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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등짐

thezine 2008. 5. 4. 20:33

 '표준체중'이란 걸 이야기할 때 흔히 비유하길, 자신의 표준체중보다 10kg 더 무겁다면 10kg의 짐을 메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몸무게가 표준에 가까웠다면 더 가벼운 몸으로 살 수 있을텐데 무거운 짐을 아무 이유없이 메고 다니는 셈이다.

 나쁘게 말해 '허례허식'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하다. 어쩌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돈도 많이 쓰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왜 그럴까. 이해가 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관혼상제'라고 하지만 그중에 제일은 혼례다. 그 중 가장 중요해서 '제일'이라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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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한하게 요즘 들어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 또래라면 그럴 때가 됐으려니 할텐데 나이를 막론하고 나보다 4~5살 많은 사람부터 나보다 4~5살 어린 사람까지 올 봄 들어 집중적으로 시집장가를 간다. (경기의 사이클이나 사회적인 흐름도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누군가 연구 좀 해줬으면 좋겠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후배가 친구들과 고민을 이야기했다. 외국 생활을 꽤 오래했던 신부는 서양식 결혼이 하고 싶었고 후배의 부모님은 일반적인 관례대로 하길 원하셨다고 한다. 아마 결혼 준비 과정에서 부딪히는 일은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아직 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이 결혼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많이 봤다.

 결혼 준비 까페에 가입했던 적이 있다. 익명 게시판에는 다양한 결혼 준비 고민들이 올라와있다. 갈등의 형태는 다양하다. 예단이라고 하는 기이한 관례라던가, 한 때 뉴스에 심심찮게 올라오던 혼수 문제도 많이 올라오는 내용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혼수, 예단, 장소, 비용, 집...

 진짜 줄다리기라면 그저 있는 힘을 다해 줄만 잡아당기면 그만이다. 이기면 좋고 지면 끌려가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줄다리기는 그럴 수가 없다. 신랑이 하고 싶은 결혼, 신부가 하고 싶은 결혼에 더해서 신부와 신랑의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이 모두 제각각의 방향에서 줄을 잡아당긴다. 더군다나 '어른들'이 끼어있고 '경사'를 준비하는 만큼 무조건 힘자랑을 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결혼에 대해 하는 말이 결혼은 두 집안의 만남이라고들 한다. 가족관계의 네트워크가 느슨하고 '관계'보다는 '개인'이 위주인 서양에서는 결혼식에 참가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정확한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한 독일인 커플을 보니 하객이 모두 합쳐서 80명 정도. 한국에서는 신랑이나 신부측 한쪽만 80명이어도 중간 이하의 규모일 듯.

 반면 한국의 결혼식은 한 쌍의 부부 뿐 아니라 두 사람의 부모님의 인맥이 총동원되는, 그야말로 한국 가정사의 대미라고 할 수 있는 행사다. 결혼식에는 먼 친척 뿐 아니라 직장 동료, 동호회, 초-중-고-대학 동기와 선후배, 거래처 사장님, 입사 동기 모임, 종교활동 등 모든 인적 네트워크가 총동원된다. 연락이 5년, 10년 동안 끊긴 지인들도 결혼식 때만큼은 연락을 해오고 참석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청첩장에는 철수와 영희의 이름이 아닌 철수의 부모님 이름, 혹은 영희의 부모님 이름이 찍혀있다. 신랑 신부가 영화의 주연이라면 부모님은 영화의 감독인 셈이라고 할까. 이렇게 한국식 결혼에서 결혼은 신랑 신부만의 행사가 아니다.

 결혼식에 대한 신랑신부와 부모님들의 각자의 바람과 소망과 욕심들 그 어느 것 하나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결혼식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 '당연히 이렇게'라고 생각하는 틀에 맞춰 나가길 바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다만 개개인의 '이렇게'가 모두 제각각일 뿐이다. 주변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있을테고, 본인 스스로 '결혼식은 이래야 한다'는 관념 중에 도저히 바꾸기 힘든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관념들 때문에 결혼이 힘들어지고 심지어 깨지기도 하는 일들. 누구를 위한 결혼인지, 왜 하는 결혼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바꿀 수 없는 관념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바꿀 수 없는 관념이 때론 양보 없이 평행선을 갈 수도 있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혼이란 골문을 향해 출발해버린 용감한 사람들일테다. 다만 그저 그렇게 평행선을 걸으며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은 될 수 있다.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에 대해 뭐라도 답을 얻겠다는 욕심은 무모한 것일 수도 있다. 대신 평행선이 어딘가로 언젠가는 수렴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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