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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시리즈 vs. '반도' 시리즈

thezine 2008. 10. 30. 15:48


대류, 반도, 섬나라 시리즈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대륙' 시리즈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반도' 시리즈, '섬나라' 시리즈가 있는데, 위에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중국, 한국, 일본의 엽기적인 사진들을 모아놓은 시리즈들이다. 일단은 세 나라의 지리적인 특징을 별명으로 했는데, 왠지 일본 악플러들의 어투를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저런 사진들을 보며, 하루에 한 번씩은 접하는 중국의 엽기적인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중국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그 중에는 중국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언론에서 접하는 모습들을 보며 막연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중국에서 오래 살다오거나 중국을 외국인치곤 잘 아는 사람도 가끔은 중국이 지겹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중국에 대해 험담을 하면 열을 내며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반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문득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중국에서 겪은 안 좋은 경험을 한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몇 가지가 생각나는데, 중국에 얼마 이상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여기에 한가지쯤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중국 공무원들과 엮인 일 때문에 번거롭고 짜증났던 일

 -학교 교직원의 (일본인과 서양인에 비해) 차별대우를 겪은 일

 -사업을 하면서 사업파트너나 노동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본 사람

 -공공장소에서 소매치기나 추행을 당해본 사람

 -편의시설이 부족하거나 환경이 익숙치 않거나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한 사람

 -그 외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안 좋은 일을 겪은 경우

 -중국 생활은 안해봤지만 동북공정 이야기가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


 위에 나열한 것들 중에 자신이 살던 환경과 달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안 좋은 기억이 중국에 대한 이미지에 투영이 되서 중국이 싫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사는 사람이 대전에 한 번 가봤는데 하필이면 거기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대전이란 곳이 어떤 곳이든 상관없이 대전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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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중국 경제의 비중이 커지기 전에, 한국 사람들은 주로 일본을 향해 막연한 증오를 표출해왔다. 일본 물건은 좋은 물건이고 경제적으로도 의존도가 높았지만 국가로서의 일본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표적이 되어왔다. 최근에는 정권이 바뀌고 친일파가 득세하다보니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일 정도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일본의 비호감도는 최고 수준.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람들의 비호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영토 분쟁등 인접 국가들 사이에 불가피한 요소가 커다란 이유중에 하나이다. 그 외에도 한국과 중국 간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한국과 중국 간의 인적 교류가 그만큼 폭증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다.

 일례로 중국에 유학 중인 유학생 중에 가장 많은 것이 한국 사람, 그 다음이 일본 사람이다. 원래 일본 사람이 더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 순위가 바뀌었다. 일본 인구가 남한의 3배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의 숫자 역시 상당하다. 서울 목동의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가면 창구가 크게 2곳이다. 한 곳은 중국인의 출입국 업무, 다른 한 곳은 기타 모든 외국 사람들의 출입국 업무 창구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당에 가면 중국교포(조선족)가 홀서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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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대한 반감을 악플러 수준으로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사람들은 이젠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역사적, 지리적인 충돌도 있을 것이고, 중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한국이 꼽혔다는(비록 소규모에 신뢰도가 부족한 조사였지만) 소식이라던가, 지어낸 기사로 혐오감을 조장하는 일부 중국 황색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 대한 반작용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중국에 대한 비호감을 접하다보니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사는, 한국에 살아본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접했던 외국 사람은 추석과 설날에 한복을 입고 TV에 나와 한국 노래 자랑에 참가한 사람들, 이태원에 돌아다니는 미군들, 그리고 한국말을 배워서 한국 음식을 먹고 '너무 맛있어요'라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사람들 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세상이 세계화되다보니 이젠 어디에서건 외국인을 보는 일이 흔해졌는데,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출신 국가가 훨씬 다양해지고 그 숫자도 다양해진 데 비해서 한국인의 외국인을 보는 시선은 아직 많이는 바뀌지 않은 듯 하다.

 물론 새로운 이미지들이 추가되긴 했다. '도망가지 않아요'라고 현수막을 붙여놓고 베트남의 신부감을 소개시켜주주는 행태에 대한 이미지, 한국사람에게 시집온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방송해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이미지. 그리고 가끔씩 외국인들이 화재나 사고로 숨졌다는 뉴스 같은 것들이다.

동남아시아의 이미지



 한국에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그 수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어떤 곳으로 기억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할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애증의 감정과 비슷한 것일 듯 하다. 중국에서 가끔 별미로 먹던 음식이 문득 그리워진다거나, 중국에서 지낼 때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한국에 살았던 외국인들 역시 모국에 돌아가서 한국에 대해 애증 섞인 추억을 늘어놓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까운 한중일 세 나라 네티즌들이 악플을 주고 받으며 노는 모습이 더욱 덧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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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투사로 입대해서 자대에 배치받은 후 가장 초반에 대화를 나눈 미군 중에 Straw라는 성을 가진 병장이 있었다.(그래서 그의 별명은 '빨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했기 때문에 상병(Specialist)으로 군생활을 시작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병장으로 진급했던 백인이었다. 카투사들과도 친하게 격의 없이 지낸 사람이었는데, 갓 입대해 쫄병이라 눈치만 보며 말없이 지내던 나에게 자꾸 말을 시켰었다.

 자꾸 말을 걸길래 한국 사람이 외국사람에게 물어보는 틀에 박힌 질문들을(그땐 그게 틀에 박힌 질문인지 몰랐지만) 몇 개 했었다. 한국에 몇년? 군생활은 몇 년? 몇 살? 한국은 살 만하냐? 등등. 그때 이 녀석이 했던 말이 "Korea sucks to me." 번역하자면 "한국에서 사는 거 좀 x 같애."라고 했다. 기분나쁘게 말하면 아주 나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론 악의는 없었기에 별로 기분 나쁘진 않았다. "뭐가 그리 x 같아?"라고 물어보니 돌아다니면 영어로 말도 안 통하고 부대 생활도 더 불편하단다. 미군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데 그 수많은 미군 주둔지 중에 '한국'은 미군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타자에 대해서 이미지만을 갖고 판단을 할 때 종종 이성적 비판과 맹목적인 비호감 사이에서 경계가 무너지곤 한다. 타자의 집단 역시 내가 속한 집단과 비슷한 수준의 이성과 심리로, 단지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란 점을 잊고, 사람들은 인종이나 민족 같은 비과학적이지만 가시적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분류하게 된다. 단편적인 뉴스나 접하는 사람들에겐 그들과 나 사이의 무수한 공통점은 눈에 띄지 않고 소소한 차이점이 더 부각된다.

 입장을 바꿔놓고, 혹은 나 자신을 그 타자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보면 그런 판단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무의미한지 깨닫게 된다. 역지사지로 상대방을 이해하자는 것은 (도덕적인 고상함은 차치하더라도) 나와 상대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다. 인터넷에서 보는 이웃 나라의 희한한 광경을 담은 사진이나 엽기적인 범죄 뉴스는 매번 흥미롭긴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그들 역시 똑같은 인간이란 존재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고 생활하는 모습일 뿐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무지함이라는 말이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아는 것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반대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