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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국에 대한 커다란 착각

thezine 2008. 8. 19. 14:10

 올림픽 개막식을 한지도 벌써 열흘이 흘렀다. 전체 올림픽은 이미 절반이 넘게 진행이 되었고 이제 일주일 정도 후에는 폐막할 예정이다. 개막식 이야기를 하기에는 한두박자 늦은 감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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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올림픽 개막식 장면


 개막식 이후 온갖 기사가 쏟아졌다. 중화주의의 발로다, 어린아이가 립싱크를 했다, 불꽃놀이가 CG였다 하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개막식과는 무관하지만 참가 연령에 미달하는 13세 어린이를 체조대표로 내보냈다거나, 올림픽 투자 비용이 430억달러로 너무 과하다느니, 올림픽을 위해 빈민촌을 담으로 둘러싸고 빈민을 고향으로 쫓아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올림픽에 대한 악감정은 없지만 나 역시도 종종 '2001년에 개최가 결정된 걸 가지고 100년을 기다렸다고 설레발이친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너무 무리한 게 아니냐'고들 할만큼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었다. 올림픽은 늘 세계적인 관심사였지만 올해처럼 일찍부터 준비 과정이 매일같이 전 세계로 보도되고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SBS가 개막식 리허설을 유출시켜서 욕을 먹게 되면서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 SBS 이름을 알아버린 사건은 그만큼 중국 사람들이 이번 올림픽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고 있나 하는 점을 반증한다.

 노력을 쏟은 만큼, 정성을 다한 만큼 중국 사람들은 올림픽 진행 상황에 대해 일희일비하고 있다. 별 것 아니라고 넘길 만한 해프닝에도 중국 네티즈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다거나 경기장에서 자국 선수마저 조용히 하라고 할만큼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보면 중국 사람들이 이번 올림픽에 돈과 노력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올인한 상태라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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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


 중국인들은 개혁개방 경제를 이미 30년 가까이 경험하면서 전보다 시야가 넓어졌다. 경제는 급격히 성장하고 부자도 늘어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상황은 여전히 궁핍하다. 그들의 과거는 휘황찬란했다고 배웠고 그들의 정부는 인민을 사랑하는 아버지같은 존재라고 배웠지만 중국의 대문이 세계에 열린 후 그들은 깨달았다. 중국 인민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때때로 무시당한다는 것을.

 중국 물건이 질이 떨어진다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알았고, 중국의 소득 수준이 이웃한 일본, 한국, 대만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영광만 있을 뿐,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지만 잘 사는 나라에 비해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 늘었다. 그런 그들이기에 유인 우주선이 우주를 날았을 때, 류샹이 110미터 허들 우승을 했을 때, 화려한 연출의 올림픽 개막식을 보았을 때 더 감동할 수밖에 없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의 개막식은 3자의 입장에서 봐도 화려하고 재미가 있었지만, 중국의 문화를 한껏 찬양하고 사이사이 끼워 넣은 중화주의, 국가주의의 슬로건은 순진한 중국 사람들에겐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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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선동하고 장려하는 ‘애국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WBC 야구에서 한국이 일본과 미국을 모두 이겨버리는 모습을 보며,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재미와 희열도 국가주의적 심리 덕분이다. 가난하고 별다른 낙이 없는 상당수 중국인들이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었다면 그 또한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선동이 주는 즐거움은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 이번에 종합 1위를 달성한다고 해서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류샹이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들 공사판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베이징 대기 오염을 줄였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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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들은 ‘위대한 중국’이라는 허울뿐인 구호에 잠시 도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8월 25일 올림픽이 끝나면, 아니 어쩌면 벌써부터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이 중국을 까는 것처럼 들린다면 한국에 비유를 해보는 게 낫겠다. 박태환이 아시아인 최초로 수영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체격조건의 한계가 있다는 기존의 관념을 극복했다는 뜻에서 자축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이 양궁 최강국이라곤 하나 양궁 활을 구경도 못해본 사람이 대부분이다. 주변에 양궁이 취미라는 사람도 없고 양궁 동호회도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일반인이 양궁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아닌 듯 하다. 양궁에서 연이은 금메달은 선수 개인에게는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고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금메달의 감동은 거기에서 그치고 만다. 엘리트 체육 체제 하에서 올림픽 경기는 '그들만의 스포츠'가 되곤 한다. '연고전'을 매해 즐겁게 보고 연대의 승리를 응원하면서도 연고전 5종목 선수들이 '나와는 다른 그들'로 느껴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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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중국만 ‘강국’, ‘영광’, ‘위대함’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국민들은 엄청난 세금을 국방비에 쏟아 붓고 있다. 비록 그것이 국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허례허식에 많은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어느 나라에나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 경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올림픽과 개폐막식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았다는 식의 해석은 커다란 착각이다. ‘과거의 영광’이란 게 실제로 있었는지도,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걸 되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적 영광이라는 허상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곤 한다.



 중국사람들은 ‘인권’ 문제를 습관적으로 외국인의 딴지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인 수사일 경우도 있지만 인권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결국은 중국인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까지 무시해버리는 듯 하다. 올림픽을 통한 영광이든 뭐든 간에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중국 사람들 대부분은 현실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고, 별 생각없이 살다보면 인권 침해는 소수자들만의 이야기로 그칠 수도 있다. 2008년 한국에서처럼 '죽고 고문당한 사람이 내 가족도 아니고, 경제가 성장했으니까 독재시절도 나름 괜찮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날이 올 수도 있다. 10년, 20년 후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