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시사주간지 TIME지(志) 구독기 본문

서평&예술평

시사주간지 TIME지(志) 구독기

thezine 2009. 5. 18. 13:56

다양한 TIME 표지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학 캠퍼스에는 이런 저런 잡상인들이 참 많았다. 영어 교재 따위를 권장하는 부류가 많았다. 예전에 어떤 시사프로그램에는 신입 여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화장품을 팔고 환불을 안해주는 악덕업체들이 나오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신입생은 만만한 존재인 걸까? ^^

 어리숙하던 신입생 시절, 나도 가끔 백양로를 지나가다 영업사원에게 이끌려 강의실이나 아니면 주차장에 세워둔 봉고차에 앉아 벼라별 물건을 파는 사람을 만났다. 봉고차에는 나 외에도 몇 명의 어리버리한 학생들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영업 사원의 멘트를 듣고 있었고.

 애당초 따라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대부분은 좋게 거절하며 선방했지만 그때 구입한 창작과비평 전집은 아직도 애물단지로 남아있다. (책 내용은 좋다. 지금도 주간논평을 이메일로 받아보며 꼬박꼬박 읽고 있다. 하지만 좋은 내용도 이렇게 전집 형태로 대량으로 책장을 채우고 나면 손이 가지 않는다.)

대충 이렇게 생긴 창비 전집



 굳이 알아보진 않았지만 대학 캠퍼스를 맴도는 잡상인들에게 주요 시즌은 아마 3, 4월이 아닐까. 대학 생활에 이미 거의 적응을 한 2학기만 되어도 얼결에 물건을 사게 만들긴 어려울테니까 말이다. 아마 TIME을 접한 것도 그런 식이지 않았나 싶다.

 연대 캠퍼스에서 창비 전집 영업을 하시던 아저씨는 하도 많이 봐서 대충 모습이 생각나지만(아이보리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머리숱 없는 아저씨) TIME을 어떻게 구독하게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 그때 20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2년 구독을 하게 됐다. 당시 한 달 용돈 30만원에서 차비와 밥값을 제외한 나머지 가용 자금 중에 5만원은 큰 돈이었다. (참고로 지금은 1년 구독료가 23만원 정도이고, 요즘 장사가 안되는지 같은 금액으로 6개월을 추가로 보내준다고 한다. 옛날에 받아본 가격은 약 1920원/1부. 요즘 가격은 2950원/1부. 타임을 처음 받아본 건 한 12년 전쯤 일인데 구독료는 그 사이에 50% 정도 인상된 셈이다.)



TIME의 권위 - 국내 언론에 종종 인용된다.

TIME을 인용한 연합뉴스 기사


TIME을 인용한 손택균 기자의 기사



 언론매체로서 TIME의 위상은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TIME에 실린 주요 기사들은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종종 중요하게 다루곤 한다. 동아일보 손택균 기자님도 영화 기사에 TIME을 즐겨 인용하는 것 같다.(님자 안 붙이면 감수성 예민하신 손택균 기자님께서 섭섭해하실 듯 하여...^^)


 특히 매년 빠지지 않고 한국 신문에서 많이 인용하는 것이 TIME이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목록이다. 리스트는 매년 많이 바뀌지만 특성상 정치 지도자가 많이 포함되어있다. 각국의 대통령, 수상만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특히 미국의 대통령은 거의 언제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리스트의 선정 기준이 너무 미국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아무튼 이 기사는 매년 국내 언론에서 단골로 소개한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인용기사가 나온다.

-=-=-=-=-=-=-=-=-=-=-=-=-=-=-=-=-=-=-=-=-=-=-=-=-=-=-=-=-=-=-=-=-=-


 쓰다 보니까 '구독기'가 아니라 '소개글'이 되어버려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겠다.

 처음 TIME을 접한지 12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 중에 TIME을 구독한 기간은 다 합쳐서 5년 정도이다. 처음에는 우연히 구독을 시작했지만 읽다보니 언론매체로서 TIME만의 매력이 있어서 띄어띄엄, 최근까지 구독을 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 2년, 그리고 군제대 복학 후 2년, 그리고 회사에 다니며 TIME을 얻어 주던 동료 덕분에 몇 개월, 그리고 작년에 누군가 정기 구독을 '중고 매물'로 올린 것을 보고 시세보다 조금 싸게 받아본 것을 다 합치면 5년 정도 된다.

어려웠던 점 - 어휘
 처음 접한 TIME에서 보는 영어는 고등학교 때 문제집, 독해집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문장 구조도 복잡한 것들이 더 많지만 가장 큰 차이는 어휘들이다. 고등학교 독해집도 최상급 독해집 정도라면 난이도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어휘 만큼은 시사주간지의 특성상 고등학교 교재에서 보지 못한 단어들이 많았다.

 비교하자면 국어책에 나오는 어휘와 신문기사에 나오는 어휘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요새 시사 어휘를 예로 들면 금융위기, 유동성, 녹색성장, 인플루엔자A같은 것들인데, 이렇게 시사성이 강한 단어들이 교재에 반영될 쯤이면 이미 1~2년쯤 시간이 흘러버릴 것이다. 이렇게 시의성이 강한 단어는 교과서에도,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전에도 단어가 나오지 않을 때의 황당함이란



 그래서 처음에 TIME을 읽으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사를 읽는 도중에 길을 가로 막고 서있는 낯선 단어였다. 요즘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라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뜻을 알 수는 있지만 잡지를 인터넷 찾아가면서 볼 수는 없는 법.

 96, 97년도 당시에는 단어를 찾아보려면 최소 몇 년 에서 십 년도 더 전에 편찬된 사전 말고는 시사적인 표현들의 뜻을 찾아볼 길이 없었다.(영문과 학도였다면 주변에 물어볼 곳이라도 있었을텐데.) 발빠른 사전이라면 1년 정도 단위로 업데이트가 될 지도 모르지만 TIME에는 사전에 정식 어휘로 실리지 않는 신조어도 다수 등장한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인플루엔자A의 경우 처음에는 돼지독감, SI 등으로 불렸는데 이런 표현은 1~2주 정도로 극히 짧은 수명을 살다 사라진다. 한국의 뉴스에 돼지독감, SI같은 단어가 소개되지 않는 한 TIME과 영어사전만 봐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독해 공부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독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어다. 복잡한 문장 구조는 읽기 능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TIME을 처음 읽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TIME을 읽으면서 기사를 이해하긴 했나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읽곤 했지만 지금에 비해선 읽지 않고 넘어가는 기사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어휘나, 읽는 속도 모두 지금에 비해서 부족했다.

 그런데 과외를 할때 가끔은 TIME 기사 중에 일부를 발췌해서 단어는 모두 주석을 달아서 과외 교재로 썼던 적이 있다. 고등학생 제자한테는 이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를 만한 단어는 모두 주석을 달고 새로 타이핑해서 만든 자료였고 어렵게나마 그 기사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학생에겐 도움이 된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일일이 타이핑하지 않고 사진으로 찍거나 스캔한 후에 사진 속의 글자를 인식해서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썼을텐데)

 당시에는 TIME 들고 다니면 잘난 척 한다고 야유를 많이 받았으나 지금은 뭐라는 사람은 없다. 뭔 짓이든 꾸준히 하면 주변에서 인정해준다. ㅎㅎ


TIME을 읽는 이유
 TIME을 읽는 일은 어려운 단어, 그리고 오래 보면 잠이 오는 작은 글자 때문에 피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때때로 구독을 해온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국내 시사주간지에서 잘 다루지 않는 다양한 해외 이슈
 일단, 주제가 다양하다. 우리 언론에서는 해외 기사를 많이 다루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언론에 등장하는 해외 기사들은 대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ex. 과거 SARS나 이번 인플루엔자A관련소식)이나 미국, 중국, 일본의 소식에 몰려있다. 그 내용도 대부분 해외 언론을 받아적거나 혹은 자신의 정치적 입맛에 맛도록 왜곡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그 예는 무수하게 많다. '조선일보 외신 왜곡'으로 구글링을 해보시라.)

 한국에서 정기구독으로 받아보는 TIME은 거의 대부분 TIME ASIA판인데 평소 뉴스에서 보기 어려운 기사가 많다. 파키스탄의 정세불안 같은 내용은 우리 언론에서 아예 다루지 않거나 토막 기사 수준으로 간략하게 다뤄진다. 그렇다보니 국제정치라는 큰 그림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 언론에서도 종이 신문을 이것저것 다 찾아 읽으면 관련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신문도 인터넷으로 접하는 시절이라 좋은 내용이 있어도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해있고, 파키스탄 대통령이 이슬람 과격세력과 관계가 있는 군부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무장테러세력 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내막이나, 아프가니스탄이 현재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 중에 가장 골치아픈 의제라는 점,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파병요청을 했다는 사실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와도 연결되는 큰 그림이 있다는 점. 국제뉴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다.


우수한 필자 혹은 유명한 필자
 TIME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학자, 고위공직자가 직접 기고한 칼럼과 깊이 있는 분석기사를 볼 수 있다. 국내 언론들끼리도 잘 나가는 언론사일수록 필자나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기가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역설적인 예를 들자면 최근 고 장자연 관련 거명된 언론인도 C일보 2명, J일보 1명이었다. 여기에 한겨레나 경향이 거론되었다면 생뚱맞지 않았을까.)

 한 마디로 TIME의 기사는 질이 상당히 우수하다. 자체 필진들(기자 및 각국의 특파원, 고정 기고자들, 칼럼니스트)도 우수하고 위에 말한 것처럼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외부 필자들이 많다. 한국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중 하나가 신문사 기자들인 것처럼, TIME의 필자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문사(文士)들이다. 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저널리스트로 다년간 경험을 쌓고 일주일 간격으로 발간하는 매체다. 영어 문장 자체의 수준도 아주 훌륭한 것이 당연하다.(가끔은 TIME 기사를 읽으며 '나는 이런 영문 기사는 죽었다 깨나도 못 쓰겠다'싶은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건데 왜 좌절하는지는 모르겠다. ㅎㅎ)

 TIME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거나 국내 언론은 발끝도 못따라간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사 규모나 독자층의 구성과 관심사가 모두 다르다. 그리고 TIME의 기사를 보면서 가끔 기자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편이고 영국의 ECONOMIST와 함께 손꼽히는 시사지라는 점은 사실이다.


TIME에 대한 아쉬움, 내가 생각하는 부족한 부분
 처음 TIME을 읽을 때는 일주일 동안 여러 기사 중에 5~6개 읽기도 벅찼던 것 같다. 그땐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우선은 한국 관련 기사가 최우선 순위였고 그 다음이 미국, 일본, 중국 같은 나라의 소식이었다.(기본적으로 미국잡지이기 때문에 내가 구독했던 TIME이 ASIA판이기는 해도 미국 관련 기사는 늘 비중있게 다뤄진다.)

 그런데 한국 관련 기사에 대해서만큼은 이런저런 이견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한미 두 나라 모두 관련된 기사에서는 미국의 입장에서 기술하는 편이다. 미국 회사에서 미국 언론인들이 만드는 잡지이기 때문에 당연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다른 기사의 객관성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문을 품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시사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평범한 수준의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새로운 전자제품을 소개하는 페이지나 문화면의 기사는 일정 수준을 갖추고는 있지만 내용의 특성상 TIME 같은 화려한 필진이 아니어도 역량만 갖추었다면 국내의 언론사에서도 충분히 써낼 수 있는 수준으로 느껴졌다.


TIME의 전체적인 구성
  모든 인쇄 매체가 그렇듯, TIME 역시 일정한 포맷이 있다. 표지, 목차, '말말말', '지도로 보는 <지난 한 주 세계는
?>', 기고문, 사설, 커버스토리, 문화면, 여행면(특급 럭셔리 호텔이나 특이하고 알려지지 않은 호텔 및 리조트) 같은 것들이 있다. 원래 생각은 각 코너를 사진으로 찍어 소개해볼까 했으나 귀찮아서 생략함.

구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 전에 구독이 끝난 후에 또 다시 중간에 구독을 포기한 사람이 없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은 찾기 어려웠고, '영업에 속아서 구독할 뻔 했다'는 글이 많았다. 잘 모르고, 혹은 의욕에 넘쳐 시작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정기구독권을 싸게 넘기겠다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에서 1년 구독료로 18개월간 배달해주는 조건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

 그런데 어차피 한국어로 된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일부 매니아 성향의 독자가 아니면 정기구독은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관심이 있다면 서점 가판대에서 한 번 시험삼아 사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가판 가격은 꽤 비싸다. (7000원/1부)

 영어 기사를 읽는 것이 익숙치 않다면 한 달도 걸릴 수 있다. ^^; 줄쳐가며 단어 찾으며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한 호라도 꼼꼼히 읽고 단어를 익히면 그 다음부턴 훨씬 쉬울 수 있다. 새로운 단어, 평소 접하지 못한 단어가 많지만 그 바닥도 많이 쓰는 표현은 정해져 있기 때문.

 구독 신청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된다.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아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 TIME의 한국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는 오직 판매 영업만 하는 조직인 듯 하다. 그 회사의 전화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회사는 일반적인 텔레마케팅과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 괜찮은 잡지도 영업사원 멘트를 들으면 왠지 싸게 느껴지는 역효과도 없지 않다. 순전히 본인의 생각에 따라 결정하면 되겠다.


총평
1. 영어로 된 글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어려운 단어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예전에 시트콤 '프렌즈'를 영어 자막으로 처음 볼 때가 생각난다. 영어 자막을 보려니 엄청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좀 지나면 익숙해진다. 영어로 된 글 읽기가 적응이 되면 읽을 만 하다. 단어도 1년 정도 읽으면 시사잡지에서 즐겨 쓰는 표현들이 익숙해진다.

2. 시사, 국제, 영어공부 등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 기본적으로 '잡지'이므로 내용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면 일주일마다 쌓여가는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 높음.


 정기구독이 끝나고 새로 구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던 찰나, 지난 주에 코엑스에서 열렸던 세계도서박람회(?)에서 TIME을 취급하는 회사의 부스를 지나가다가 결국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과월호도 이것저것 끼워줬다. ^^(이 회사에서는 TIME 외에도 내셔널 지오그래피, 이코노미스트, 아주주간 등 다양한 외국 미디어의 국내 영업을 하고 있다.) 이제 용돈 타서 쓰는 신세라 구독 신청을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부모님께 전화해서 구독을... ^^; 결론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총각 시절에 사야 한다는 것이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