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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영화 '그랜 토리노'

thezine 2009. 8. 27. 00:42

  미국 영화배우들, 할리우드의 관계자들은 대체로 진보적이다. 미국 관련 기사에도 영화배우들은 종종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다보니 우리나라도 영화배우들이나 연예인들 다수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런 미국 연예계 분위기 때문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딱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표적인 보수적 영화배우이자 공화당 지자자로 알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길이를 알아보려고 네이버에 들어갔더니 영화평에도 '보수'와 '진보'가 이 영화의 내용과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한 네티즌 리뷰 중에 가장 위에 올라와있는 글(클릭)을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고 평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보수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보수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좀 더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보수가 '반공' 외에도 '윤리'나 '정의'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그리고 '민주주의'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잘 이해한다면 보혁갈등은 상당 부분 사라질 듯 하다. 한국의 자칭 보수들은 평화적 시위대를 경찰이 폭력으로 해산시키거나 대리투표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걸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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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자주 보지도 않는 데다 이 시간에 긴 글을 쓸 여유도, 그만한 장문의 감상도 없다. 다만 영화가 끝나가는 마지막 몇 분을 보면서 들었던 느낌은 이랬다.

 시간을 계획있게 사용해서 마지막 남은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전철에서 내리기 전,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야겠다 생각했던 부분까지 들고 다니던 책을 읽고 멈추는 시간에 딱 맞춰 읽어냈다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바쁜 업무 와중에 개인적으로 동사무소에 다녀오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하며 바쁘지만 아귀가 딱딱 맞는 보람찬(!) 하루를 보냈을 때라던가.

 올해 여든살 정도 되었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그랜 토리노'를 만든 시간이 '자투리 시간'이란 뜻은 아니다. 물론 활동하기에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얼마 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만 더 산다고 해도 앞으로 영화를 몇 편은 더 만들 시간은 될 것 같다.(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당일 관련 글을 거의 다 써놓고 올리지 못하고 있다. 커다란 일이 생기면 마음 속으로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표현이 예를 갖추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들지만, 아무튼 클린트 이스트우드란 사람, 긴 세월 동안 영화판에 있으면서 그냥 살지를 않는구나, 상당히 연로한 지금까지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의 가치를 담아내는구나, 인생이 참 알차다,...

 ...라고, 영화를 마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 '꺼리'가 너무나 많다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도, 아니면 반대로 인생의 '꺼리'로 한 가지를 파고든 사람들에게도 80년이든 90년이든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영화 '사선에서'에서 노쇠한 대통령 보디가드로 출연할 때나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다시' 노쇠한 우주비행사로 감독 겸 출연할 때만 해도 '나 아직 팔팔해, 아직 죽지 않았어' 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사선에서'가 나온지 벌써 16년이다. 16년이 흐르면서 본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표현법도 많이 바뀐 듯 하다.

 이 영화, 자막이 올라갈 때쯤에야 마음이 슬슬 아려온다. 자막이 올라가도록, 음악이 끝나가도록 화면을 보고있게 만드는 영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영화. '그랜 토리노'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영화는 흔치 않다. 그런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멋진 작자(作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