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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치팅 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thezine 2009. 6. 1. 01:37


치팅컬처 표지

 책을 직접 찍으면 위 사진보다는 보기 좋을텐데 인터넷으로 구한 거라 표지 사진이 별로다. 표지와 제목, 부제만 봐서는 책의 주제를 알기 어렵고 선뜻 손이 갈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속임수와 부패, 편법의 심리학 외에도 미국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the cheating culture 영문 표지

 원제는 위와 같다. 부제를 살짝 풀어쓰면 '전보다 더 많은 미국인들이 남보다 앞서기 위해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이유'이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편법, 부패, 도덕적 해이를 다양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어느 자료에서도 찾기 어려운(이 책의 저자도 서문에서 '자료 구하느라 힘들었다'고 토로) 실제 사건들이 흥미롭다.

 이 책의 말미에는 이런 편법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편법과 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부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체로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내 생각에 그 중 가장 큰 것은 부패를 조장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들켰을 때 잃는 것에 비해서 부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패를 더 많이 저지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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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미국은 정직과 신용의 나라라고 배워왔지만 실제로 미국 역시 부패와 부정이 만연해있다. 대학 교수는 소송이 두려워서 표절 학생에게 낙제점을 주기를 꺼려한다. '엔론 사건'처럼 사회적인 파장이 컸던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도 회계부정을 통해 거액의 보수를 챙기고 피해를 주주에게 떠넘긴 기업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미국에 기업 범죄가 이토록 만연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금융 회계 정보를 수사하는 것이 어렵고 수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상당수 화이트칼라 범죄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내가 금융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수억 달러를 벌었다면 아마 웃으면서 God bless America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번 금융 위기에서 본 것처럼 미국의 금융, 회계 기법은 월가의 종사자들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했다. 적은 수의 수사 인력이 기업범죄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이 책은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몇 년 전에 쓰여졌지만 이 책에서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설명한 것을 읽자니 마치 최근에 나온 금융위기의 원인 분석 기사를 보는 듯 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부 통찰력 있는 지식인들에게는 일찌감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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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대가가 미미하고 종종 회사돈으로(즉 주주돈으로) 벌금을 물어 기업인의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 외에, 과도한 성과주의 역시 부정부패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올리려는 분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복리와 기업의 실력은 향상되고 있지만 반면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 아니면 도'식의 경쟁을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대형 마트들이 윤리적 비난을 무릅쓰고 중소형 마트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한 예이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편법과 비윤리적인 방법을 무릅쓰는 사람들이 외부인들에게 하는 변명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


분식회계, 비자금, 편법승계, 탈세, 폭력... 참 골고루 한다


 우리나라도 기업범죄라면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 리스트도 아니고 휠체어 타고 다니던 기업 총수들 리스트다. 영어 사전에 Chairman of the Board는 '회장'이란 뜻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Wheelchairman은 '한국 회장'이라고 웹스터 사전에 등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위에 등장한 사람들 중에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해외도피 중인 정태수氏 외에 단 한 명도 없다. (정태수 역시 해외도피를 하지 않고 재판에만 성실히 응했어도 집행유예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법원은 그렇다.) 정태수 외에 나머지 모두 집행유예 아니면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마 애시당초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선량한 기업가를 검찰이 기소했었나보다. 1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100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던 옛말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1억을 빼돌리면 사기꾼이 되지만 1천억, 1조원을 빼돌리면 회장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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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치팅 컬처'에 등장하는 부정은 다양하다. 기업의 회계, 금융 범죄, 학교에서 학생들의 부정행위, 불법자료 다운로드, 내부정보를 이용한 로펌/회계법인/컨설팅 회사의 도덕적 해이, 보험사기, 허위보도 저널리즘, 제약회사의 불법행위, 과학자들의 부정(우리가 잘 아는 황우석... 아니라 황구라 박사 사건), 운동선수의 불법약물, 탈세, 직장에서 물품 남용 등



 저자는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부정, 편법, 사기는 대체로 돈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기 마련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래된 말이 있는데, 실상은 보수는 부패로 흥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진보라고 하는 사람이든, 보수라고 하는 사람이든 '부패'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건 똑같다.

 하지만 부패의 원인과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심 없이 뉴스를 볼 때만 '에이 나쁜 놈들' 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제도적인 장치가 한국에 비해 잘 정립된 미국에서조차 이토록 부패와 부정이 만연하다는데, 한국 사회의 치팅컬처, '속임수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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