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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을 깨우던 소리

thezine 2010. 4. 11. 22:08

 실제론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를 가느라 만화를 본 적은 별로 없긴 하지만, 아무튼 어렸을 때 만화로 잠을 깨던 기억은 생생하다. 6살 때, 만화를 보면서 잠을 깼었다. 그 소리에 잠이 깬 건지, 잠이 깨서 그걸 본 건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그림을 보여주던 그 TV 화면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0월에 군대를 가서 군대에서 처음 맞는 겨울, 훈련복 소매로 콧물을 닦으면서 추위에 떨던 그 때였다. 6살 때 잠에서 깨어 부시시한 눈으로 만화를 보던 기억을 떠올린 게 말이다. 내 기억 속에 그 이불 속은 따뜻하고 포근했고, 멀리서는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압력솥 꼭지가 딸랑거리는 소리였던 것 같다.) 만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재미있었고, 내 옆에는 나보다 먼저 잠이 깨서 나보다 더 재미있게 만화를 보고 있던 동생들이 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 재미도 덜했을 것 같다. 지금도 혼자 보는 TV는 재미가 별로 없으니까.


 한 인터넷 사이트에 위의 만화 오프닝 동영상이 올라왔다.(http://video.nate.com/212072623) 역시 그림만 보는 것보다는 음악이 함께 나오니 향수가 오감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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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나를 그렇게 쉽게 사로잡다니, 왠지 농락당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너무 코믹하려나. 그리고 문득, 지금은 그렇게 쉽게 어딘가에 푹 빠지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조차도 마음이 담담하니, 매주 때 되면 보여주는 TV프로그램에 마음이 설레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은 드라마만 시작해도 설레어 하니 나보다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아기 아빠들에 따르면,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면 뽀로로 비디오가 직빵이라고 한다. 무슨 최면에 홀린 것처럼, 떠들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조용해지는 마법. 물론 그 마법 때문에 뽀로로 캐릭터를 종류별로 사줘야 한다고 함.




 어린애들이 만화에 빠져서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100% 무언가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순간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집중의 에너지를 '회사일'에 거의 다 써버리느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직을 하려니 더더군다나 집중할 일 투성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가끔 뭔가 그렇게 푹 빠질 수 있는 일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니메이터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잘 짜 만든 만화같은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푹 빠져 몰두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 순간이 즐겁기 그지 없는 순간들이 일상에도 필요하다. 항상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몇 시간쯤은 말이다.


 

 오랜만에 디즈니 만화 오프닝을 보니 나도 잠자리 바로 옆에 TV를 둘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하면 다시 그때처럼 포근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