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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을 떠나며

thezine 2013. 1. 27. 23:53

 회사 독서동호회에서 내가 책을 고를 차례여서 고른 책이다. 서점에서 책 고르는 재미는 온라인서점에 비할 바 아니지만 몸이 게으르니 이럴 때 하던 대로 온라인 서점 인문 코너 추천 도서 부근을 클릭하다 찾은 책이다.

 이 책은 조선의 해방 이후 한반도에 살고 있던 수백만의 일본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역사 논픽션에 끌린다... 이미 오래된 듯. 롬멜 전기 고를 때부턴가... 취향 고정이 너무 심한 듯ㅎㅎ)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본토로 귀환하면서 겪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해방 조선의 상황을 그린 책이다. 짐을 꾸려 열차에 몸을 싣는 모습이 딱... 피난민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당시 최고의 자재로 지어졌다고 한다. 조선을 영구적인 식민지로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시 치고 빠질 생각이었다면 어쩌면 이것보다는 대충 지었으려나?
 

 현재 남대문 시장, 명동, 충무로 일대가 일제 시대 최고의 번화가라고 한다. 사진은 그 당시 충무로의 모습. 사진만 봐서는 그닥 번화해보이진 않지만 --^

 

 일본인들은 식민지 조선에 와서 그들만의 상류층 사회를 만들고 그들만의 거주 구역에서 살았다. 아직 봉건시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조선땅에서 고급 기술을 가지고 고등교육을 받고 총독부나 광공업, 상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갑작스런(?) 종전 이후에도 일본인들 상당수는 가능하기만 하면 조선땅에 머물고 싶어했다고 한다. 1890년대에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근 50년을 조선에 뿌리박고 사업을 일구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운 셈이다. 그들이 일군 사업기반, 생활기반이 모두 잘 갖춰진 조선에 미련도 있었을 만 하다.

 

 혼돈 속에 일본으로 건너간 일본인들에게 고향은 일본이 아닌 조선땅이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충무로 거리가 긴자보다 세련되었다고 자부할 만큼 일본인의 커뮤니티도 고도로 발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해방 후 긴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나고 자란 조선이 보고 싶어 다시 돌아와서 둘러보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기 전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몰려왔었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그들에게 조선은 이 땅 전체와 조선의 문화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과 일부 조선인 부유층을 위한) 마을, 학교, 휴양지를 의미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식민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도 저소득 국가에 가서 생활하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부분도 있겠다 싶다.

 

 책은 해방 직후부터 일본인의 본토 소개(疏開; evacuation)가 완료되기까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미국이 군정통치했던 남한에서는 혼란스러우나마 본토 이동 절차가 있었던 반면 소련이 점령했던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군들의 약탈과 파괴, 추위로 전쟁피난민 같은 환경에서 고생스럽게 귀환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그제서야 조선인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폭행과 강간 같은 피해를 입기도 한 과정을 그린 '요코 이야기'라는 책이 미국 교과서에 실리느니 어쩌니 하면서 미국의 한인 사회가 떠들썩 했던 사실, 일본에서는 전후 본토로 귀환한 해외 일본인들의 귀환 수기가 유행을 했었던 이야기들은 우리가 잘 몰랐을 만한 부분이다.

 역사라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 진실은 아니다.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가한 폭력과 착취는 전혀 모르는 채로 오직 본인이 경험한 종전 이후의 고난만을 이야기하며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하는 요코 이야기의 저자의 사고는 그 한 사람이 아니라 일본인 대부분의 사고의 한계를 보여주는 내용인 듯 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고 하는 건 그런 한계에 갖힌 사고를 하지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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