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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thezine 2013. 4. 9. 00:25


 오랜만에 읽는 일본 소설....은 아니구나.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읽고 있는 다른 책도 있긴 하다. 그 책은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책의 무게감이 많이 달라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두께는 제법 되지만 종이질도 얇지 않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도 빨라서 생각보다 단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을 알기 전에 표지 그림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낡은 잡화점에 대해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를 떠올리곤 했는데,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니 일본 잡화점은 이렇게 생겼을까? 문득 궁금해지네.


 내용은... 설명하기 애매하다. 어디까지 설명해야 스포일러가 아닐 수 있을까? 나미야 잡화점에서 익명의 고민들을 상담해주는데 그 고민 상담 서비스가 시공을 초월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아닌가? 이 정도면 책을 읽는 재미 자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다. 그런 포인트가 놀라운 반전이거나 결론이었던 건 아니고 내용을 이끌어가는 배경으로 쓰인 것이니.




 이 책 초반을 읽으면서 전형적인 일본식 상상력을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생각했다. 오래 오래 전에 '사토라레'라는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다 들려버리는 사람을 사토라레라고 한다는데, 하필 이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인류의 공익에 기여를 하기 때문에 사토라레 본인은 자신이 사토라레라는 점을 모르고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는 상상 속의 설정이다. (본인이 사토라레라는 점을 알게 되면 정신적인 충격으로 사회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이에 사람들이 다 모른 척 해줘서 그 사람이 발명이라던지 새로운 의학 기술이라던지 하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도록 해준다.)


 일본적 상상력은 그렇게 특이하고 만화적인 상상력의 화두를 하나 던져놓고 거기에서 성실하게 스토리를 쌓아가는 특징이 있다. 엄지공주인가? 손가락만한 사람들 이야기... (이것 말고도 많은데 하도 오래 되서 생각들이 나지 않네) 애니메이션이 발달한 것도 그런 독특한 일본적 상상력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만 가지의 복잡한 사회적인 프로토콜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일본의 문화 속에서 그런 식으로 상상으로라도 자유를 누린 건지도 모르겠다.





책 이야기에서 좀 벗어났는데, 각설하고,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을 한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 하나 하나가 별개의 스토리를 이루어서 전체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철수의 이야기 하나, 영희의 이야기 하나가 나오고 철수와 영희도 알고 보면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 책에는 그런 식으로 6-7명의 스토리가 각기 따로 또 같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 중요한 교차점이 나미야 잡화점이다.


 책의 작가는 일본의 손꼽히는 추리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작가의 강점인 건지, 인물들의 인생이 기발하게 엮여 있다. 단순히 철수와 영희가 지나가다 슈퍼에서 마주치는 수준의 억지 인연들이 아니라 나름 유기적으로(?) 엮인 인생들이다.


 그러면서 각각의 인물들은 가족애, 모성애, 연인의 애정, 진로 문제... 등등 인간의 기본적인 고민과 감정들을 하나씩 맡아서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후부터는 작가로서는 정말 쉽게 술술 써나간 글이었을 것 같다. 술술 써나갔기 때문에 읽는 독자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물론 번역 솜씨 덕도 크겠지만 번역된 후에도 그런 문체의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는 점은 문학의 매력인 듯. 한 편으론 일본 문화, 일본 문체가 그만큼 익숙해져서 그런 면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보통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성격인데,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공들은 내밀한 이야기를 용기내어 상담편지를 통에 넣는다. (나중에는 상담의 덕을 본 사람이 추천해줘서 본인도 시도해보는 식으로 계기를 다양하게 만들어놓긴 했다.)


 누군가 상담을 해준다고 하면 난 깊은 고민들을 나눌 수 있을까? 내 고민이 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을 하다가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물론, 오늘처럼 '맞벌이에 아기가 아플 때 하루 휴가를 내고도 간병을 하루 더 해야 할 때의 난감한 상황'은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도 묘사가 가능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가는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해줬을까? 출퇴근 길에 걸으면서 (스마트폰도 볼 수 없고 책도 볼 수 없이 심심할 때) 상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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