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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끄적끄적

헐키

thezine 2014. 8. 1. 00:22


영화 많이 보던 시절, 스스로가 헐리웃 매니아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비디오가게 선반을 채운 영화들 대부분은 미국영화였지. 어디서 난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언터처블의 기차역 총질 장면이(슬로우 모션으로 유모차가 계단으로 굴러가는) 생각난다.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살던 곳을 떠나와서 그랬는지 원래 올빼미 체질이어서 그랬는지, 아무튼 밤에 깨있는 시간이 많은데 책도 좋지만, 영화가 제일 좋았다. (그땐 세상에 읽을 만한 책이 이렇게 끝도 없이 많을 줄 몰랐지)

외로운 밤 비디오 일체형 브라운관 티브이는 지금 스마트폰 못지 않은 소중한 IT기기였다. 그속에 펼쳐지는 미국의 이런저런 풍경을 보다보니 한번도 가본적 없는 미국이란 곳이 정 들고 익숙해지다 못해 묘한 향수가 생길 지경이었다. 한국드라마를 매일 접하는 중국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서울 한복판으로 오는 게 이해가 된다. 나도 시간 내고 돈들여서 뉴욕 다녀온 일이 그렇게 기억에 남으니까.

이젠 화질이 좋아지다 못해 3D 고화질로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이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극장에서는 스크린 양쪽 벽에까지 영상을 쏴대지만, 그땐 VHS테이프를 틀면 처음에 화면을 수놓는(?) 노이즈에도 마음이 설레었다. 화면 크기는 요즘 사무실 모니터보다도 작았지.

사춘기가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시기라면 그중 S/W의 상당부분을 채워주었던 비디오 영화들. 이젠 전국에 비디오가게는 이미 멸종했을 것이고 그 뒤를 잠시 잇던 DVD대여점도 찾기 힘들다. 세상은 늘 비관적인 것이 아니니, 나의 아이들은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 두뇌의 감성 뉴런을 연결해가겠지. 뭐가 됐든 내가 즐겼던 방식과는 크게 다를 것이고 나도 그네들의 취향과 애호가 이해되지 않는 날이 오겠지.

문득... 오래된 브라운관 티비를 구해서 비디오로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고가전으로도 받아주지 않는 물건을 구할 수는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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