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캐리어의 하드캐리 본문

잡담끄적끄적

캐리어의 하드캐리

thezine 2023. 10. 3. 12:31

배경지식1 크게 활약하는 사람, 고군분투한 사람을 하드캐리 했다고 함.

배경지식2 여름에 크게 더워질 때는 신으로 추앙하고, 더위가 꺾이면 그런 사람 뭐가 필요하냐고 하는 환절기 밈이 된, 에어컨의 발명가, 윌리스 캐리어 (사진)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다가 에어컨의 등장이 불러온 변화를 지적한 부분이 아주 인상깊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 소환되는 농담 소재를 넘어서서, 캐리어라는 사람이 세상의 변화를 불러오는, 시대의 작은 분절을 가져오는 사건을 만들었다니.

에어컨이 없던 시절 미국 남부는 날씨 때문에 업무의 효율도 떨어지고 산업 기반도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습도가 변하면 종이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탓에 다른 색의 잉크를 몇 차례 인쇄해야 하는 컬러 인쇄가 힘들었다거나 해서 산업 발달이 지장을 받았고, 영사기와 체열로 더운 여름에는 극장이 아예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에어컨이 발명되자 1910년대부터 극장에 에어컨이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 일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이다. 근현대사 사건을 접할 때마다 늘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대상인 '소달구지 끌던 시절' 무렵이다.)

에어컨이 원래는 산업적인 수요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 에어컨 덕분에 미국 남부의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는 것(그 전에는 미국의 산업 기반은 북부), 에어컨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 중에 하나가 영화관이었다는 것. 지금은 탄생배경이나 순서가 모두 사라진 '현재의 모습'만 남아있지만, 역사를 읽다보면 이렇게 그 과정과 의외였던 인과관계들이 보인다.

개인의 삶도 어떤 선택의 의도하지 않은 여러 결과가 따라온다. 아파트 분양 사무소 몇 곳을 둘러보다가 어떤 이유로 그 중에 한 곳을 선택하는 일, 그렇게 이사를 하고 아이들이 그곳에서 자라면서 지인과 친구들이라는 인연의 숲을 형성하는 일도 그때는 내 선택의 결과가 이렇게 이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시절에 윌리스 캐리어가 하드캐리했고, 2023년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내 인생에서 무언가 하드캐리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는대로 생각할지, 생각한대로 살아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잡담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꼰대  (2) 2023.12.06
뜬 구름  (0) 2023.12.04
마음이 있는 곳  (0) 2023.09.14
신촌 뒷골목 나들이  (0) 2023.09.03
재개발  (0) 202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