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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국대학의 조센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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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근대화의 길을 걷고부터 국가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엘리트를 양성하는 고등 교육기관을 세웠다. 주요 거점 지역을 대표하는 구제고등학교는 제1고 제2고 같은 번호로 이름 붙여졌고 오늘 날의 고등학교 학제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의 고3~대학1, 2학년 정도로 대학의 예과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교육기관으로 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 초기 구제고등학교의 정원은 제국대학의 정원과 비슷해서 구제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제국대학 입학이 보장되었는데 다만 그 안에서도 동경제국대학은 '동대'라 불리고 제국대학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고 한다. 입학시험은 주로 어문학, 외국어, 글쓰기가 전부였던것같다. 당시 한국에는 경성제대, 일본에는 도쿄, 교토, 홋카이도, 오사카, 도호쿠, 나고야, 큐슈 7개, 그리고 대북(타이페이)제대까지 총 9개 제국대학이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자료를 뒤져서 저자가 찾아낸 조선인 출신의 제국대학 졸업자들의 삶과 진로를 다루고 있다. 어떤 이들이 제국대학에 입학했는지, 그들의 대체적인 진로는 어땠는지, 그중에 제대 출신의 여성은 어떤 이들이었는지, 해방 전과 해방 이후 이들의 삶은 어땠는지 주제별로 대략적인 특징을 서술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조사로 찾아낸 제대 출신들의 경력을 요약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제국대가 친일파 양성소였는지가 궁금했는데 실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이들을 어떤 사람들이었다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제국대학이 일제의 엘리트 양성기관이었고 애초에 식민체제에 부역할 인재 양성 목적이 있었던 만큼 당연히(?) 많은 이들이 친일의 길을 걸었다. 일제 당시 제대로 된 경제와 상업, 기업이 미비했던 만큼 졸업자들 다수는 총독부와 같은 곳에서 고위 관료가 되거나 조선에 이제 막 생겨나던 고교, 대학의 교사, 교수가 되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성공만 좇는 이기적인 엘리트는 아니었다. 일제가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들에 대해 반일 양성소로 여겨 골칫거리였던 측면도 있었다. 식민지 국민으로 2등시민 신세가 되어 고된 유학생활을 하고 또 같은 처지의 조선인들과 학생회를 조직해 어울리면서 민족의식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차별과 불합리에 눈을 떴을 것이다.
정확한 비율을 따지긴 어렵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끼기론, 청운의 꿈과 비장한 각오로, 나의 역량을 키워 조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로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고 귀국 후에는 고위관리나 사회주류가 되면서 기득권층의 일부로 서서히 젖어드는 정도의 소극적인 친일파들이 가장 흔한 케이스였던 것 같다. 해방 후에 전문성을 갖춘 몇 안되는 소수의 엘리트로 귀한 대접을 받고 미군정이나 대한민국 정부, 김일성의 북한으로 각자 부름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원죄의식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한 양심적인 면이 보이는 인사들도 있었다. 물론 오직 양지만을 쫓아다니며 해방 후에도 독재정권에 부역하고 3.15부정선거에도 앞장선 사람도 있고, 반대로 동경제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관료가 되는 것은 결국 친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에 일제에 엮이지 않고자 학자의 길을 피하듯이 걷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이과학 출신들은 해방 후에도 공학, 과학으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기에 남북한 모두 해방 후 이학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많지 않은 국가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서 이들이 후학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비교적 친일에 중립적으로 보이는 이학계열과 달리 문과 계열 특히 법학을 전공하고 식민 모국의 법조계에 진출한 이들은 일제도 유독 까다롭게 선발했고 독립운동 경력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일제에 충심으로 충성할 것으로 판단되는 자들만 등용했다. 일제 고급 관료는 넓게 봐서 모두 친일파라 할 수 있겠으나 누군가는 그저 정부 운영의 톱니바퀴 역할만 했다고 변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총독부 판검사들은 진성 친일파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제국대 출신자들의 삶은 한마디로 요약이 어렵다. 그들의 삶의 길이 다양했던 것 만큼이나 이 책을 읽고 난 감상도 복잡하다. 일제가 엘리트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자유로운 학풍과 토론과 심지어 허락된 방종도 누리던 어린 청년들이 느꼈을 성취감, 압박, 갈등, 자부심, 양심의 가책, 교만, 기대 등 다양한 감정들을 상상하게 된다.
책 초반에 등장하는 문구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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