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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도쿄산책자

thezine 2024. 4. 21. 23:06

 요즘 연이어 읽고 있는 일본 작가 강상중님이 2013년에 출판한 도시 기행 에세이. 추측하건데 이 분은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을 썼고, 그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인기 작가의 신분이 되자 출판사에서 도쿄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면서 각각의 장소가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들에 대한 에세이를 기획한 것 같다.
 
 이 책은, 독자 입장에서는 방문하는 장소 별로 3-4장 분량으로 구분되는 내용이라 연속적인 내용을 따라가는 부담도 없고, 중간 중간에 그 명소들의 사진들이 나와서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명소' 목록에는 호텔, 유서 깊은 연극 극장, 미술관, 증권거래소, 도쿄대학, 아키하바라 같은 랜드마크도 있고, 고양이 카페나 고서점가, 슬럼화된 거리 같은 도시의 지나간 역사가 담긴 곳들도 있다.

 위 사진에 나온 야네센 이라는 곳은 개발의 바람에서 빗겨나 있어서 지금은 구옥과 옛 거리의 정취가 남아있어서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산책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과, 그 사진 속 건물에 대한 설명 글. 일본의 메이지 유신 과정은 관심 있게 접한 적이 없어서 정보와 인상의 조각들의 모임 수준으로만 알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가진 메이지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정의해준 장면이라 긴 글을 붙여넣었다. 메이지의 정확한 정의까진 아니더라도, 그 핵심 명제 중에 하나는 '우수한 서구를 빠르게 따라잡고 우리도 그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다급함과 절실함이었던 것 같다. 서구의 건축가를 초빙해서 건물을 짓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부분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방법이었겠구나 싶다.
 
 

 요즘 많은 책을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데 회사 도서관 전문 운영 업체에서 관리하는지라, 아마 이 책도 어느 다른 회사 도서관에 꽂혀있다가 나의 호출에 자리를 옮겼을 것. 아주 많이는 아닌데 몇 곳에 이렇게 표시가 되어있다. 난 내 책에도 줄을 긋지 않는 스타일이라 학생 때도 공부 포기한 사람처럼 책이 깨끗했는데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열심히 볼펜과 연필을 바꿔가며 줄을 그었다. 어차피 반납할 책이니 상관은 없지만, 웃을 곳, 놀랄 곳을 상세하게 지시해주는 예능프로그램 자막이 그러듯, '이게 포인트야' 라고 하는 누군가의 오지랖을 당한 느낌.
 
 

 
 각 단락들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저자의 일관된 정서라는 것은 느껴진다. 그 중 하나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고도 성장기에 개인과 나라의 발전이라는 명확한 목표 속에 어느 정도는 개인들에게도 그 과실이 나누어지던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옛날의 그 공통의 구체적인 목표가 사라졌으니 새로운 목표가 무엇인지 각자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
 
 


 
 
지나가고 없어진 것들에 대한 향수는 늘 있을 것이고, 향수란 것은 뻔하고 쓸모없는 클리셰가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나이에 지금의 한국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십대, 이십대 초 세대들은 강상중 작가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지금의 서울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금보다 훨씬 노인이 되었을 때 그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