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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s irae 본문
Dies Irae는 원래 '진노의 날'인데, 승무원들이라면 사건사고가 많은 비행을 '이레'(irregular한 상황)가 많다고 하니 Dies Irre도 말이 될 것이고, 어제 오늘 천재지변에 가깝게 비가 많이 온 상황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오늘 아침에 버스가 늦어지고 평소보다 미어터지고 출근시간이 길어지고 하는 상황을 보니 문득 사회생활 시작하던 시절에 비 많이 오는 날이면 경험했던 짜증나던 일들이 생각이 났다. 오늘은 그냥 마음에 여유가 있었지만, 그 시절 나는 이런 날이면 더 걸리는 시간, 인파로 부대끼는 불편함, 신발과 옷이 젖는 불쾌함, 우산을 접지 않고 타는 이들의 무신경함 등등이 겹쳐서 억울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1년에 몇 번 정도는 겪음직한 상황과, 기분인데 이걸 무슨 깨달음이라고 할 거리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과 감정을 말해주고 그런 상황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저녁식탁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른 이야깃거리들과 함께 섞어서, '비가 올 때 이런 일이 생기고 이런 기분이 너희도 들 수도 있다'고 말이다. 사소한 경험 이야기가 쌓이다보면 인생의 순간들을 더 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간만에 굵은 빗줄기가 너무 좋았는데, 수해가 생길까봐 더 많이 퍼풋길 바랄 수는 없었고, 그저 일기예보 레이더 화면에 흘러가는 멀어지는 구름 그림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