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서평]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Southbound)', 그리고 386, 전공투, 68세대 본문

서평&예술평

[서평]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Southbound)', 그리고 386, 전공투, 68세대

thezine 2007. 8. 4. 01: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사진의 책들은 일주일 전쯤 구입한 책들이다. 한두달에 한 번씩 5-6권씩 책을 구입한다. 넓지도 않은 원룸에 책이 쌓이다보니 읽은 책들을 골라서 장롱에 처박아뒀는데 계속 쌓이고 있다.

 책을 고를 땐 주로 추천 도서 목록을 참고한다. 신문 기사의 추천 목록이 유용하다. 연초, 휴가철, 가을은 책을 추천하는 기사가 등장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남들이 읽는 책'만 읽게 될 위험이 있지만 '남들이 읽는 책만 읽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좋은 책은 실로 너무나 많다.

 또 참고할 만한 건 서점 서가다. 삼성동 coex몰의 서점에 가면 주 통로를 따라서 경제경영, 처세서, 소설, 비소설, 인문학, 어학, 육아... 종류별로 '밀어주는' 혹은 '잘팔리는' 책들을 진열해놓았다. 요즘 잘 팔리는 책이 어떤 책인지 분위기도 파악할 겸 가끔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녀석은 메모해둔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서점에는 좀 미안하다. - -;;)

 항상 책을 5-6권씩 주문하다 보니 책이 배달된 날은 퇴근 길에 가방이 아주 묵직하다. 개 중에는 몇 달이 되도록 읽지 못한 책들이 몇 있다. 내가 주로 읽는 책들은 역사, 인문, 사회에 관한 내용이다. 특히 역사 서적들은 양이 많고 진도가 느리게 나간다. 역사서의 특징이다. 한 권의 역사서가 담고 있는 '시험범위' 안의 그 시기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겠는가. 저자도 나름 선택하고 줄인 게 그 정도라는 생각을 하면 읽는 페이지마다 소홀하게 읽고 넘길 수가 없다.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밀린 책들은 대개 역사서다. -_-; 그래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가까운 곳에 놔두고 있다.

-=-=-=-=-=-=-=-=-=-=-=-=-=-=-=-=-=-=-=-=-=-=-=-=-=-=-=-=-=-=-=-=-=-=-=-

  경제 관련 서적도 한 때 몇 권 읽었다. 경제나 재테크에 너무 문외한이라는, life planner(보험 영업하는 후배)의 지적을 받고 어떤 책이 좋은가 보러 갔다가 베스트셀러로만 몇 권 집어온 적이 있다. 기본기는 이해했다는 생각으로 그 후론 책은 찾아보진 않고 경제기사만 읽어보는 정도다.

 (그때 읽은 베스트셀러: 20대여 재테크에 미쳐라,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등 나머지는 읽은 후 장롱에 넣어서 제목 기억 안남.)

 어쩌다 '밀리언 달러 티켓'이라는, '좋은 생각'에서 한 페이지로 소개해도 충분할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사기치는 책도 산 적이 있다. 이 책은 따지자면 처세, 사업, 성공에 대한 책이다.

 요약하자면, 주로 보는 책은 역사, 인문, 사회 관련, 어쩌다 읽어보는 경제/경영/처세서가 있다.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스스로 소설은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별로 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쾌한 코미디'라는 서평을 보고 이 책을 골랐다. 나에게 유쾌한 코미디가 필요한 시기였던 것일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위기 전환 삼아 '남쪽으로 튀어'의 일본판 표지를 올린다. '나오키상 수상 제1작' 이라는 말이 써있다. 이 소설이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말이 아니라 '공중그네'라는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후 첫 번째로 내놓는 작품이란 뜻인 것 같다.

맨 위의 4글자는 오쿠다 히데오라는 말인 것 같고(英을 '히'로 발음하는 걸 일본 만화에서 본 기억이 있다.) 밑에는 이 소설의 영어 제목인 Southbound가 적혀있다.


 '남쪽으로 튀어'는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일본의 386세대로 비유할 수 있는 전공투 세대의 전설적인 운동가였던 아버지 '우에하라'. 그는 커다란 덩치에 쩌렁쩌렁한 목소리, 거기에 '케첩과 콜라는 미 제국주의의 음모야!'라고 외치며 집안에서 먹는 것을 금지한 괴짜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지로'가 그런 아버지 밑에서 겪는 성장드라마... 라고 할 만한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면 나는 국민을 그만두겠어!" 라고 하는 부분. 분명히 한글로 우리말을 적어놨는데 일본 냄새가 폴폴 풍기는 표현이다. '국민을 그만둔다'는 기상천외(?)한 표현이 맘에 든다.

 요즘 서평 시리즈를 올리고 있는데,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과 같은 목적성 도서와는 달리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은 더 올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일본의 전공투 세대라는 게 종종 한국의 386가 비교/대조되는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공투 세대는 일본의 패전 후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킨다. 물론 그 시기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386을 가리킬 때 전대협 세대니 하는 운동권 출신을 가리키듯 일본의 운동권 출신들이다. (전공투란 말 자체도 일본 만화에서 처음 접했으니 이래저래 쪼가리 지식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느낀다.)

 한국의 386세대는 교수로, 사업가로,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사회를 주도해나가고 있다. (그 중 일부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도 하니 세상 참 웃긴다.) 유럽의 독일에선 2차대전 이후 60년대 들어 베트남전, 체게바라 암살과 같은 세계적 격동 속에서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68세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인상적인 표어로 사회적인 억압을 타파하는 운동을 벌였고 보수신문사 방화와 같은 폭력 투쟁까지 벌였다고 한다. (폭력투쟁은 아직까지도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폭력 투쟁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지금은 신나치주의에 앞장서고 있다니, 어쨌거나 극단주의자는 별 수 없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폭력 투쟁을 벌였던 '적군파(RAF)' 미국계 은행, 미군, 상업시설, 정부요인, 기업가, 검찰 등에 대한 파괴와 살해를 저질렀다.



 대체로 선진국의 추세는 50년대 후반-60년대 후반이 세계적 정치의 격동, 충돌,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그 변화를 주도하던 시기였던 것같다. '68세대' 출신들은 나중에 독일의 정치인, 국가지도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도 군사독재와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시기적으로는 늦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전공투 세대는 그 후 철저히 소외당했다고 한다. 그때 활동했던 운동가들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전력 때문인지, 아니면 폭력투쟁(예를 들면 '적군파' 같은)의 기록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공안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에도 주인공의 아버지나 과거 운동가 동료들이 여전히 감시대상인 장면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 적군파가 여객기를 납치했을 때 사진



 일본이라는 나라가 사회적 억압이 심하고 전후 반성 없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우익 성향이 강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의 반항아들을 정부가 조직적으로 억압해왔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공투 세대가 세월이 지나 다시 모인 모임을 보니 그 중에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자영업, 학원 강사와 같은 불안정하거나 대체로 초라한 현실에 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386출신들이 일부 학원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기분이 묘할 정도다. (386출신들이 풍부한 독서량과 논리로 무장하고 어린 학생들을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있다는 보수 신문의 사설이 문득 생각난다.)

-=-=-=-=-=-=-=-=-=-=-=-=-=-=-=-=-=-=-=-=-=-=-=-=-=-=-=-=-=-=-=-=-=-=-=-

 재밌는 우연이라면, 이 소설(그렇다. 이 글은 원래 '남쪽으로 튀어'라는 소설의 서평으로 시작한 글이었다.)은 분명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과 같이 산 책인데 이 날 유시민이 청중의 질문을 받고 추천한 책 중에 하나라는 점이다. 재밌는 우연이다. (참고로 3권을 추천했는데 대하소설 '토지',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함께 추천했다.)

 유시민 의원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추천하며 이웃한 나라에서 있었던 전공투 세대의 실패,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대변하는 순수한 진보 개혁주의자의 절망을 생각했던 것 같다.

 보수는 세상을 장악했고 개혁 세력은 파벌주의와 이익다툼을 하는 세상에서 전설적인 운동가가 그저 개인적인 차원의 저항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비극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끝나진 않는다. 초반에 썼지만 이 책은 상당히 유쾌한 책이다. 괴짜 아빠의 기행을 바라보며 곤란해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의, 지극히 일본스러운 생각과 행동들을 보면서 읽는 내내 재밌었다. 지난 주말 이틀을 꼬박 이 책을 읽는 데 보냈을 정도.

 무언가 대단한 결말을 이룬 것도, 그렇다고 절망적인 실패를 겪지도 않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현실을 바꿔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생각을 하면(범여권 대통합이니 하는 지리멸렬한 진보진영을 볼 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세상이 비관적으로 느껴지기 쉽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관적이지만도 않다. 원래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오랜 노력이 필요했으며 하루 아침에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대한 태극기를 펼치던 사람들은 다른 걱정 없이 자기 위로 지나가는 부분만 앞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저 어디에선가 끝에 다다라 태극기가 펼쳐졌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 세대는 우리 세대의 역할을 감당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이 소설을 썼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즐거운 기분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다. 크기도 적당하니 휴가철에 가방 속에 넣어갈 책으로 강추한다.


PS: 저자의 '공중그네'는 서점에서 틈틈이 읽고 있는데 3/4쯤 읽었다. 돈 번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