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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결혼식

thezine 2008. 3. 18. 01:15


 날이 참 맑고 좋았던, 선선한 바람까지 불던 지난 토요일 오후,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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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2호선만 타다가 7호선을 타니 참 쾌적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7호선을 타니 2호선은 (1호선보다는 낫지만) 북적대고 낡은, 마치 판자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 키가 작을 때는 2호선만 창문이 아래까지 길어서 밖을 볼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이제는 2호선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창밖이 보일 만큼 키가 커버렸다.

 전철을 타고 다닐 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역시나 한강을 건널 때다. 의정부나 인천에 사는 사람들은 청량리나 서울역을 지나면서 1호선이 지상으로 올라올 때가 가장 좋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7호선이 뚝섬유원지에 가까와오면 한강을 건넌다는 기억이 나서 일치감치 전철문 옆에 서서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한강다리는 길이가 2킬로미터 정도 되지만 막상 움직이는 전철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시간이 많지 않다. 하물며 맘에 드는 사진을 찍기엔 너무 짧은 시간.

 셔터속도가 빨라도 철교의 구조물이 흐릿하게 찍힐 만큼 전철은 부지런히 다리를 건넜다. 날씨 좋은 날 지하철이 땅 위로 올라오는 건 언제나 상쾌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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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섬에는 선상 결혼식장이 있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선상결혼식장이 있고, 유원지 중간에도 결혼식장이 있다. 이날 결혼한 사람은 나의 유치원 동창이자, 어머니 친구의 딸이며 같은 교회를 수 십년(?) 동안 다닌 친구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으면서도 제대로 이야기 한 번 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냥 아는 친구'로만 지냈는데 결혼식날 며칠 전에 기별을 듣고 결혼식장에 갔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와 우리 가족을 알고 지내온 아주머니, 아저씨 집사님들이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해오셔서 부지런히 인사를 했다. 보통은 친구의 결혼식날은 동창들이 모이는 날인데, 이 친구의 결혼식날은 '동네 어른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너는 결혼 언제 하니?" 하는 '인삿말'만 서른 번쯤 들었고, 나는 "올해는 하려구요."라고 으레 하는 대답으로 인사를 드렸다.

 이 날 결혼한 친구는 조금 특이하게 쌍동이다. 쌍동이치곤 누가 봐도 생김새가 구분이 갈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이 날 결혼하는 동생은 인사하러 다니느라 바빴는데 언니격인 다른 친구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눴다. 반가워, 여자친구랑 같이 한 번 보자, 이렇게 2~3분 떠든 이야기가 어쩌면 내가 그동안 그 친구와 평생 했던 말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지만도 않다.

 유치원에서 떠들다 벌을 받을 그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 그다지 친근한 기억은 없지만 25년쯤 되는 인연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냥 아는 친구'가 이럴 진대 그때부터 늘 붙어다닌 친구라도 있었다면 그 정다움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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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결혼식이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지만, 이런 날에는 오랜만에 보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보는 청년부 친구들과 바뀐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전화번호가 한 번 더 바뀐 후에야 다시 보게 될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컴퓨터를 켜면 바이러스백신 프로그램이 알아서 업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이 친구들을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어디 사냐 하는 소식들을 업데이트했다.

 버스가 대교에 오르는 모습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보이고, 전철이 철교를 건너 역사로 들어가는 모습이 은하철도처럼 보였다. 강물엔 2인용 오리들이 떠있고 날씨가 참 맑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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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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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 걸까


  사진 찍느라 전철 한 대를 보낸 후에야 전철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2호선은 토요일에도 11시만 넘으면 이내 붐비기 시작하는데 7호선은 오후 늦도록 한적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7호선이라고 해도 나중에 고속터미널 같은 갈아타는 역에서는 우루루 인파가 몰려온다. 그래도 그 전에, 적어도 한강 다리를 건널 동안 만큼은 전철 안은 고요하고 창밖은 눈부셨다.

 전철은 공짜가 아니지만 한강을 건너는 전철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은 공짜다. 어떤 이들은 무심하게 다른 사람 발만 쳐다보고 있고 어떤 이는 창밖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양복에 넥타이 차림이 실내에서는 조금 더웠다. 이럴 때 넥타이를 풀면 셔츠 안에서부터 눅눅하고 뜨끈한 공기가 목 밑으로 올라온다. 셔츠깃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면 가슴팍에는 주먹만한 시원함이 느껴진다.
 
 조금은 나른하고, 조금은 흐뭇했던 토요일 오후, This is la vie e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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