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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화교' - 화교와 교포에 대해

thezine 2008. 6. 2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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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왕겅우/다락원


 '화교'라는 책을 읽고 이 글을 쓸 생각을 하면서, 서평으로 쓸까 아니면 그냥 기타 잡담으로 쓸까 살짝 고민을 했다. 기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에 대한 글이지만 한 편으론 곁가지를 조금 멀리 쳐서 교포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만 하고 글로 옮기지 못한 것까지 쓸 생각이었기 때문.

 '화교'라는 책은 '왕겅우'라는 사람이 썼다. 이 사람의 약력을 보니 현재 싱가폴국립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이고 전에 호주국립대 교수, 말라야대학 교수(검색해보니 말레이시아에 있는 대학), 홍콩대학 부총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싱가폴과 홍콩은 물론이고 호주나 말레이시아에는 화교가 아주 많이 살고 있다. 스스로도 화교이고 화교가 많은 지역에서 학자로 활동한 사람이다.

 저자가 대학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이 책도 논문처럼 쓰여졌다. 특히나 화교의 기원과 역사를 다룬 책이니 만큼 관련 참고 문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역사책들은 하나같이 참고문헌이 엄청나게 많다. 역사에 대한 책은 정말 아무나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위축되게 만든다.) 본문에는 곳곳에 주석이 달려있고 해당 주석에 대한 참고 문헌들이 소개되어있다. 구성이나 문체, 전반적인 느낌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논문 정도라고 보면 딱 좋다.

 이 책은 중국인들이 해외에 진출한 시기, 진출한 방법과 형태, 역사적인 배경, 현재 '화교'라고 부르는 집단이 생겨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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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고 대륙중심적이었다. 나도 처음에 이 말을 듣고 그 시절엔 다 농경사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유럽과 비교를 하니 이해가 쉬웠다. 말하자면, 당시 유럽은 국제 무역과 해양진출에 집중했던 것이다. 한족이든, 만주족이든, 몽골족이든 중국의 지배세력들은 대륙만 지배하기에도 바빴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었고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주변국은 신하로 복속시키는 것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활발하게 해외진출을 했을 리가 없다. 상인들이 외국에 다녀오는 것은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중국인이 외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배신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농업 중심국가였고 농업이란 게 한 사람의 일손이라도 아쉬운 분야인 점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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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한 중국인 '쿠리'



 하지만 청말, 국운이 쇠하면서 본의아니게 중국을 외국에 개방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 호주 등지로 노동자를 수출하기도 했고 중국에 외국 사람들이 다수 진출하기도 했다. 해외로 진출한 중국인 노동자들은 괴롭고 힘든 노동에 종사한다는 뜻으로 '쿠리(苦力)'라고 불렸다. 이 단어는 coolie라는 영어단어로 바뀌어서 나중에는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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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쿠리'라는 단어는 중국, 인도 출신 노동자를 가리키게 된다

  이들 '쿠리'들은 중국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호주와 미국 등지에서 고된 노동에 종사하고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서 이들에게 민족의식이 생겨났다. 고국에 있었다면 오히려 사회의 하층민인 신세를 한탄했을텐데 외국에 나와 애국심이 생겨났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 점에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훗날 중국 본토가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분열되어있을 때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공산당과 국민당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보다도 이들을 더욱 더 본토 사람들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일본이 중국과 화교가 많은 동남아시아를 침략했을 때이다. 이렇듯, 때때로 내부인의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한 일을 외부의 안티 세력이 해주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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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들이 썼던 양식의 모자 'coolie hat', 미국 모 쇼핑몰에서 $12.99에 절찬리에 판매중


 그런데 중국인의 해외 진출 초기에는 이런 '쿠리'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중국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선진 문물을 배워야겠다는 의식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로 장학생들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들은 정부 관리들의 감독을 받으면서 미국, 유럽 등지에서 대학을 다녔다. 당연히 본토에서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문 출신의 자제들이었다. 이들은 막노동을 위해 팔려오듯 해외에 진출한 쿠리들과는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해외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을 출신 지역, 하는 일, 노동자, 학생, 관리의 구분 없이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한 단어로 '화교'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고 한다. '화교'의 한자는 華橋이다. '華'자는 빛나는 것, 아름다운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중국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는 다리(bridge)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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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교'에 대한 편견은 많았다. 중국 본토 사람들이 해외 화교들의 도움을 얻고 동질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때문에, 화교들이 거주 국가에 충성심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고난 후에는 중국적인 것은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중국 현지의 친척을 돕는 행동이 공산국가 중국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화교 중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때문에 부를 독점한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무렵,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고향의 세력들로부터 '중국적인 것을 지키라는' 비난이나 압력을 받기도 했다. 화교들 스스로도 사람에 따라서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순전히 현지인의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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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용광로보다는 뚝배기처럼 보인다



 한 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사는 것을 '용광로(melting pot)'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 용광로 이론은 다양한 문화가 섞여서 동질적인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문제가 많았다. 화교를 포함해서, 이주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화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동화될 수는 없는 법이다. (혹은 현지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강제적인 폭력일 수도 있다.)
 
 따라서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인 관용 속에서 권리를 보장받고 능력을 발휘해 현지에 기여한다는 '다문화주의'가 적당한 해답이라고 한다.



 (책 내용은 짧게 쓴다고 썼는데 역시나 써놓고 보니 길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이 말만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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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교포'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실제로 '교포'라는 사람들과 알게 된 건 군대에 다녀온 후다. 내가 근무하던 미군 부대에도 한국계 미군들이 있었지만(흔히 '김치 G.I.'라고 부르는) 그보다는 복학 후 교환학생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교포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그때 알게된 대만인 교환학생이 나에게 'Gyopo'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뜻밖의 질문을 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외국인 학생 기숙사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이야길 하다보면 자기가 '교포'라는 이야길 하더란다. 교포라는 말이 아예 한국인 2, 3세들에게도 아예 일상적인 영어 단어처럼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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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들의 블로그들:막걸리를 Makolli라고 쓴 게 귀엽네



 그 이후 그 동아리를 통해서(Mentors club이라고, 아는 사람은 아는 동아리) 나와 짝지어진 대만 학생 외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온 교포들을 여럿 알게 됐다. (여담이지만 캘리포니아에 교포가 워낙 많고 그 교포들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많이 와주는 덕에 한국 학생들도 그쪽 학교들로 교환학생을 갈 수가 있다.)

 그때 친해진 교포 동생들과 이야길 하면서 가끔 '댕~'하는 느낌이 드는 생각의 차이를 느낀 적이 몇 번 있다. 짤막한 장면들을 나열하는 게 이해가 빠를 듯.

-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연히 민주당쪽일 거라 생각하고 부시를 욕했는데 '고어'가 아닌 '부시'를 찍었다는 친구(대화 중에 '악의 축'이란 언급을 설명하려다가 생각이 안나서 axis of evil을 axis of devil이라고 말해버려서 창피했던 기억도 남.)

- 한국과 미국의 국제 경기가 열리면 마음이 한쪽으로 확 쏠리지가 않고 어느 쪽이 잘 해도 한편으론 좋고 한편으론 아쉽다던 이야기

- 뭔가 일이 있을 때면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모습(그리고 영사를 친구 대하듯 편하게 만나는 모습에서 부러움.)

- 교포 여럿과 연세대 학생 여럿이 함께 롯데월드에 갈 때 교포들을 위해서 김밥을 준비해둔 게 있었다. 설명하다보니 전달이 잘 안되서 간단하게 '미국 사람들은 이거 먹고'라고 했더니 '우리 미국 사람 아니에요' 하며 항의하듯 말하던 친구

- 여럿이 밥을 먹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 젓가락 들기를 기다리던 친구



(마지막 2가지 케이스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한국사람으로서 그런 행동이 좋아보였다.

 이 글의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재밌던 에피소드도 있다. 연대 앞 횡단보도의 그 넓고 사람 많은 곳에서 옆에 있던 교포 여자애가 앞에 가는 친구를 부르면서 "야~ 같이 가 ssang年아~" 하고 크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여!'하고 그 친구를 쳐다봤는데 귀엽게 생긴 천진난만한 여학생.

 알고 보니 미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주로 가르쳐준 사람 할머니뿐, 그래서 할머니가 쓰시던 욕을 그냥 일상적인 호칭인 줄 알았단다. 웃으면서 '욕이니까 사람 많은 데선 쓰지 말라'고 누군가 설명을 해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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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교든 교포든, 그들이 자신의 모국, 혹은 부모의 모국에서 받는 시선은 본질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외체류자가 현지에서 받는 시선 역시 화교든 한인 교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나 편을 짓는 걸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편을 구분한다기보다 '우리편'으로 상대방을 정의하면서 일종의 연대감을 느낀다. 이런 취향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어디서든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더 반가워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초면에도 나서서 도와주는 게 한국 사람이다. (물론 초면에 사기치는 x들도 있긴 하다.)

 그런 성격 탓에 교포를 보면 당연히 이들은 한국 사람이며 국적이 미국이든 호주든 한국 편을 들거라고 은연 중에 전제를 할 때도 있다. (혹은 정반대로 교포는 검은 머리 외국인일 뿐이라고 혐오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일부 한국 음식에 적응을 못하거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입장을 옹호하는 모습이 낯설어보이기도 한다.

 이런 해외체류자는 어디에서건 편견어린 시선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듯 하다. 한국에서도 화교들은 나름 차별을 겪었을 것이다. 어릴 때 중국집에 갔다가 서비스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종업원이 서로 중국말을 하는 것을 듣고 괜히 화교들이 싫어졌던 적이 있다. 서로 무관한 사실을 연관지어서 폄하하는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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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버리자규~



 화교들은 현지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충성심이 부족하다거나 동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편견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이든 인도 사람이든 이민자의 입장에서는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였을 것이다. 또 이들이 조상의 국가에 '방문'했을 때도 정도는 약하겠지만 불편한 선입견을 접해야 했을 것이다.(어떤 게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궁금하다.)

 물론 해외체류자 역시 나름의 크고 작은 선입견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한 교포가 다른 교포 친구의 블로그에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고 부인을 때리는 사람들이란 리플을 남긴 걸 본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부인을 때린다는 편견은 어디에서 온 건지 연구 대상이다. 대만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이 부인을 때린다는 이야길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말이다. 한국 드라마에는 그런 장면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주제넘은 내 판단으론 교포든 화교든 100% 한국인이거나 중국인이 될 수는 없는 처지인 듯 하다. 그들을 향해 '넌 한국 사람이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한 쪽을 선택하라고 질문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한국에서 정착해서 일하고 결혼하고 애 키우면서 살면 국적이야 어쨌든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나 현지 국적의 교포들이 이방인인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화교는 중국과 한국의 교집합이고 재미교포는 한국과 미국의 교집합, 미국계 한국인들(언더우드 가족같은) 역시 한국과 미국의 교집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한국에선 중국인이라 배척받고 중국에선 한국 동족이라 배척받는 조선족(재중교포)도 화교와는 또 다른 한국과 중국의 교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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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우리편'이 아니면 다른 편이라는 식의 all or nothing식의 접근은 결국은 스스로에게 손해라고 생각한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同志)과는 물론, 스펙트럼이 조금 다른 사람들도 포용하는 쪽이 결국은 더 많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국적인 뿌리를 새로운 토양에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한 때 한국에 외국인이라곤 미국인 아니면 화교뿐이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서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 범죄를 이야기하며 외국인 노동자 인권 운동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인권이든, 외국인 이주민들이건 간에 착하고 못된 것은 논점이 될 수 없다. 쌀이 많으면 돌멩이도 섞이기 마련이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 그리고 이주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편견을 없애자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각자의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화교'의 저자는 화교에 한정해서 그와 같은 주제를 도출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 화교, 재한 외국인, 재외 교포에 대해서도 공히 적용할 수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