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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 '흉노(匈奴)'

thezine 2008. 6. 2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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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 '흉노'

 중국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골랐던 책들은 대개 그리 깊이가 있는 책들은 아니었다. 신문사 기자 몇 명이 1개월간 중국에 머물며 쓴 책이라던가, 개인적인 경험을 모아놓고 '중국은 이렇다'는 거창한 제목을 뽑은 책이라던가 하는 수준이었다. 나중에 중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알음알음으로 추천을 받은 '신중국사', '중국의 붉은별'같은 유명 저작들을 접하면서 공인된 양서를 연이어 읽게 됐다.

 책을 몇 권 읽다보니 중국 왕조의 역사, 근현대사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이야기로도 관심사가 확장되곤 한다. 여행을 위해 책을 읽다보니 대만의 역사, 대만과 본토의 역사에 대해 읽게 된 것이 그렇고, 이번에 흉노의 역사에 대해 읽은 것이 그렇다.

 흉노는 지금의 중국 북부와 서부 지방을 아우르는 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기마 유목 민족을 말한다. 이 지역은 지금은 깐수(감숙)성, 내몽고 자치구,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 일대를 포함한다. 유목이라는 것은 한 지역에 정주(停住)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사는 생활이다.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풀을 찾아 양떼가 이동하면 거기에 맞춰 사람이 따라다니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이란 동물이 워낙 중구난방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말을 타고 기동력있게 움직이며 양떼를 관리했기에 기마가 중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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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노족의 활동 시기는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5세기 정도라고 한다. 그 당시 중국의 왕조는 진나라(B.C.221~B.C.206)와 한나라(B.C.206~A.D.220)왕조였다. (진나라의 진시황이 지금의 만리장성을 지었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진시황이 쌓은 장성은 현재 유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한나라 때에 지은 것들이라고 한다.)

 흉노는 기마 민족이다. 그들만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자료가 많지 않다. 이 책은 주로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마천이 궁형(거세형)이라는 치욕을 당하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기의 완성에 매달렸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데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게 된 이유가 흉노족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한나라의 장군이었으나 어떤 계기로 흉노에 투항하게 된 이릉이라는 사람을 변호했는데 반역자를 두둔한다는 이유로 황제의 노여움을 샀고 이 때문에 사마천은 궁형을 받았다고 한다.

 이릉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이릉'은 여러 장군을 배출한 가문의 출신으로 아주 용맹한 군사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5천의 궁병(화살쏘는 병사)들을 이끌고 흉노의 부대를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릉을 시기한 다른 장군들이 지원병을 일부러 보내지 않았다. 5천의 군사로 수 만의 흉노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1만 명을 죽이며 용맹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화살이 모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흉노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릉이 비록 적군이지만 그 용맹함에 감탄한 흉노는 이릉을 죽이지 않고 같은 편으로 만들고자 곁에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릉을 시기한 한나라의 동료들이 이릉이 한나라 황제를 배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황제는 이에 격노해서 이릉의 일가를, 일설에 의하면 9촌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본인은 황제에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건만 노모와 처자가 죽임을 당하자 이릉은 참을 수 없는 비탄에 빠졌고 이에 어쩔 수 없이 흉노에 남아 이방인이 되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의 벼슬을 하는 무인인 '소무'라는 사람이 흉노에 억류되어 있었다. 흉노의 왕은 소무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였고 이릉은 소무에게도 흉노에 투항하여 이곳 사람이 되자고 했으나 소무는 끝까지 버텨 동화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둘은 같은 이방인의 처지에서 친구로서 서로를 의지하며 19년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한나라의 황제가 바뀌고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 화친이 이루어지자 억류자들을 한나라로 돌려보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힌 이릉은 한나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소무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기쁜 일을 앞두고도 한편으론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친구 이릉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국의 근현대의 역사적 격동의 시기에 본의 아니게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같은 이릉의 이야기에 나카시마 아츠시라는 사람이 '이릉'이란 제목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흉노족의 수장은 '선우'라고 불렸다. 흉노의 전성기를 일군 사람은 '묵특 선우'라고 하는데, 이처럼 흉노족의 역대 지도자들은 '호한야 선우', '호록고 선우'와 같은 '이름+선우'로 불렸다. (호록고 선우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후루꾸'라는 말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흉노족이 가장 강성하던 무렵에는 한나라가 흉노에게 조공을 바칠 정도였다. 중국 왕조들은 북방의 오랑캐들이 내내 거슬렸고 한나라 초기 출병을 해서 흉노를 토벌하려 했지만 오히려 포위당한 채로 일주일을 지내다가 간신히 도망나오는 일이 있었다.(평성의 치) 이후 한나라에 대한 흉노의 요구는 엄청나게 치욕적이었다고 한다. 흉노의 선우에게 한나라 공주를 시집보내고 조공물을 바쳤으며 한나라 황제와 흉노의 선우는 아우와 형님의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흉노족의 기마 전투 방식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유목을 하며 늘 말을 타야했던 그들은 어릴 때부터 사냥이 곧 생활이었고 사냥은 곧 전투였다. 좋은 음식은 젊은이가 먹고 남은 음식을 노인들에게 줄 정도로 그들에게는 전투 능력이 곧 선이자 목적이었다. 기마 생활, 사냥, 유목 생활 등, 생활 자체가 전투에 적합했기에 주변의 국가들과 중국의 병사들이 대적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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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최대 활동 범위

 위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얻은 자료인데 흉노의 활동범위를 시기에 무관하게 합쳐놓은 듯 하다. 한꺼번에 저 넓은 지역을 다스렸다기보다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가장 멀리 뻗어나갔을 때의 영역을 합쳐놓은 듯 하다.

 어쨌거나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영향을 끼쳤다. 서쪽으로는 유럽에 근접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흉노족이 동유럽을 괴롭혔던 훈족과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마침 '훈족(the Huns)'과 흉노(숑누)의 발음이 유사해서 그런 추측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흉노의 특징적인 '동복'이라는 청동 솥이 있는데 이 '동복'이 서쪽으로는 유럽 부근에서도 대량으로 발견되었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 비슷한 양식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흉노족이 한반도 한민족과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인터넷에 꽤 많다. (근거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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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의식이나 고기를 삶는 데 쓰였다는 '동복'이라는 솥



 훈족의 활동시기는 흉노족의 활동시기와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한다. 동유럽 사람들에게 훈족은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훈족이 동유럽 지역에서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훈(the Huns)족의 이름을 딴 지금의 헝가리(Hungary)라고 한다.

 방금 말한 훈족과 흉노족을 동일시하는 주장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 책에는 흉노족의 역사, 인종, 문화, 훈족과의 관계... 이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각각의 다른 설들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인 자료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학자마다 각자 개연성있는 주장을 내놓기 마련이고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두세가지의 설이 모두 나름 그럴듯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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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유적 발굴 현장


 역사 자료들이란 것들은 대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면서도 한 편으론 자료 자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언어, 다른 문자를 때론 추측으로, 때론 공부해가며 해독해야 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싶다.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 재미있겠다 싶으면서도 이런 부분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정말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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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을 쓰다보면  책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고, 책의 내용을 소개하다보면 어설프게 책을 요약하려고 바둥대는 경우가 생긴다. 흉노에 대한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이 정도로 끝.

 이 책 '흉노'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때론 딱딱해지고 형식적인 나열이 되기 쉽지만 그 맥락을 파악하면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말하자면 '철수와 영희가 만났다'는 문장은 건조한 사실의 기술일 뿐이지만 만약에 철수와 영희가 특별한 사이라거나 둘 사이에 별난 일이 있었다는 맥락이 있다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법이다.

 사냥한 동물의 털옷을 입고 말을 타고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며 사냥과 전투, 약탈을 일삼았던 유목민족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권력 다툼, 이웃 나라들과의 싸움과 흥망성쇠의 과정을 상상하며 읽으면 그만큼 책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 능동적인 독서를 한다는 것도 나름 정신노동이다보니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나중엔 집중력이 떨어지면 하품이 나오기도 하고 읽고 난 후에 정신적으로 더 피곤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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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던 하서주랑(河西走廊)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건데, 역사적인 배경을 다루는 책들을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 중국에 대한 책들을 읽다보면 퍼즐을 맞추듯이 먼저 읽은 책의 한 부분을 지금 읽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더 자세하게 다루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나라가 서역과 교류를 하기 위한 통로(하서주랑)를 확보하기 위해서 흉노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인 내용이 나온다. 중국어시험을 볼 때면 읽기시험의 지문이나 듣기시험의 지문으로 아주 다양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때 하서주랑에 대한 내용을 듣기시험 지문으로 들으면서 말 자체는 대충 이해가 되지만 문맥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생했던 생각이 났다.

 그나저나 흉노라고 하면 그래도 중국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한정짓기는 무리인 듯 하다. 흉노의 원저작은 사기, 한서 등의 중국 사료들이지만 흉노에 대한 연구는 중국 뿐 아니라 몽고, 러시아, 일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주로 인용하는 관련 연구서는 대부분 저자의 스승 격인 일본의 선배 연구자들의 저작이 주를 이루고 중국의 흉노 연구자들의 저작은 아주 비중이 낮다. 중국의 역사 학계가 주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과거를 해석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럽의 경우 훈족의 침입을 받은 경험 때문에 '유목민족=야만인'이라는 수준 이상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진 않았다고 하니 어쩌면 흉노 연구의 권위자 다수가 일본인일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동북공정, 서남공정을 진행하며 역사를 창작하는가 하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동북아3국의 커다란 이슈가 되곤 한다. (우리나라에선 특이하게도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뉴라이트가 정권의 홍위병으로 득세하는 양상인데 민족주의적인 흐름과는 상이하다.) 역사가 근대 민족주의의 도구로 인식되는 상황이다보니 역사를 누가 서술하고 어느 역사가 주류로 인정받는가 하는 것이 민족주의 대결의 대리전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흉노라는 책 자체는 명저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술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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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노에게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흉노의 국가체제, 왕과 씨족과 벼슬의 명칭과 같은 것들은 대부분 사기에 기록된 것들 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흉노족이 사용했던 언어와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음차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한나라를 제압하고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기마민족 흉노, 문자와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은 아쉬움에 연구자들은 오히려 흉노를 더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인이 자신이 한 일을 구구절절 광고하고 의정보고니 하면서 생색을 내면 오히려 없어 보인다. 반대로 역사의 한 시기를 호령했던 흉노라는 존재가 남은 기록이 별로 없고 알려진 바도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더 연구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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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유적지:과거의 흔적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책의 저자가 역사 연구자가 된 과정, 흉노의 역사를 연구하게 된 과정이나 이 책의 번역자가 흉노의 역사에 대해 가진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는다. 저자는 관련 분야 역사학자로서, 번역자는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로서 가슴에 뜨거움을 품고 책을 집필하고 번역했다. 책을 읽으면서 때론 지루하게 책장을 넘길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는 무언가를 향한 뿌리칠 수 없는 뜨거운 가슴이 느껴졌다.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는 사마천이 임소경이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가 실려있다. 이 편지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치욕을 감내하며 살아남아 사기를 집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그 '뜨거운 가슴'에 대한 이야기의 정점이다. 위에도 썼지만 역사 이야기는 언제나 맥락에 대해 독자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감동의 정도가 달라지는 듯 하다.

 재미있던 책의 초반부를 내일이라도 다시 간단히 읽어봐야겠다. 한 책을 다 읽고 내려놓으면서 가끔은 숙제를 끝낸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흉노를 읽고난 후에는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남는다. 먼 옛날에 대한 향수는 일종의 본능인 듯 하다. 이 책은 짜임새 있고 어렵지 않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흉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교양을 높여주고 재미도 있지만 그에 더해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2000년 전의 이야기로 묘한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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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내내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