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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짧은 소설 모음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thezine 2013. 4. 22. 23:25

 

 

신경숙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고, 인기 드라마 원작자라는 점만 알고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이는 많아도 소녀 감성의 글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예상 대로다.

 

꼭지 별로 짧게 짧게 구성된,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글들로 묶여 있는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가 무라카미의 일상 속의 잡담을 모아 엮은 책이고, 이 책은 짧긴 짧을 망정 '소설'로 쓴 글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던 글이라는 점, 작가가 일상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로 가볍게 시작해서 마무리한 글들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어떻게 말하면 명성에 기대어 참 쉽게 대충 쓰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짧은 글들 사이사이에도 작가의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냥 칭찬하기도, 마냥 비토하게도 되지 않는 그런 글.

 

특히 고흐의 삶에 대한 글은 두어번 더 새겨 읽었던 것 같다.(고흐의 삶을 노래한 starry starry night이란 노래가 퍼뜩 생각났는데, 정작 그 노래에서 생각난 가사는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연인들이 그러듯 넌 생을 마감했지' 라는 우울한 가사) 내가 떠올린 노래 가사에 나온 것과 달리 그 글에서 고흐는 열정과 사랑이 넘쳤던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내가 고르는 책들이 대체로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느린 책들도 많다 보니, 이렇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들도 때때로 읽어줘야 하는데, 이 책은 넘기는 속도도 빠르고, 얕게나마 작가의 감성도 느껴지는 글들이 이어지는 점은 좋았다.

 

 

조금 특이사항이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된 글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이름까지 말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정도로는 묘사가 되어 있다. 아무튼, 20년이나 되는 가택연금생활 동안 본의 아니게 경찰로서 '감시'를 해야 했던 사람이 다른 요원 모르게 그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나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했던 이야기.

 

다른 글들은 대부분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이 글은 뭔가 사실로만 된 것 같아서 조금 검색해보니 (글을 읽다가 종종 레퍼런스를 검색해보는 습관이 있다) 조선일보 기사를 거의 베껴서 쓴 글이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특이한 상황 (역사적 인물의 서거, 그를 감시해야 했던 사람이 장례식장에 나타나 고인을 회고하는 상황)의 감상을 묘사하다 보니 상상과 허구라곤 거의 끼어들 틈이 없이 본의 아니게(?) 사실을 표절(?)한 게 아닌가 싶다.

 

 

짧은 꼭지들로 구성된 책들의 미덕이라면 어느 때고 집어들어도 부담이 없고 시간이 되면 시간이 되는 만큼만 독서를 해도 끊기는 일이 없다는 점. 감성이나 문학성이 조금만 더 깊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명색이 소설가인데 적산가옥 같은 단어를 뜻을 잘 모르고 쓴 것 같아서 약간 실망스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