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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은교

thezine 2013. 9. 18. 22:01

'서평'이라고 매번 말머리를 달긴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쓰는 글 대부분은, 특히 이 책에 대한 글은 평가의 글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후감'이라는 제목은 초등학생 방학숙제용인 것 같은 느낌이고. 꼭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늘 하던 대로 일단 말머리는 달았다.

 

 아무튼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읽었다. 영화는 이미 개봉할 적에 보았고, 그래서 이 책을 내가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골랐던 것 같다. 그래, 책으로도 한 번 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애당초 나는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거니와, 나름 한국 문학계의 명사인 박범신 작가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말을 달 수는 없겠다. 뭐... 나름의 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

 

 갈망, 욕망에 대해, 늙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정보성 글을 읽을 때는 그냥 집중만 하면 줄줄줄 읽어나갈 수 있는데, 은교는 종종 단어를, 문장을 곱씹으며 읽어야 했고, 때론 두세번 읽어야 '읽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작가는 밤에만 쓴 이 글을, 독자도 밤에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에필로그를 남겼는데, 나는 종종 전철에서도 읽었다. 따지고 보면 퇴근하는 전철에서만 읽었던 것 같다. 출근하는 전철에서는 감상에 빠질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요즘,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 한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체력도 부족해진 것 같거나 한 외형적인 변화도 있지만 사회생활이나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달라진 내 자리에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고점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나 여자나 체력적으로는 20살을 전후해서 정점을 찍게 된다.

 

 

 

 

 '은교'는 그런, 빛과 에너지와 싱그러움이 가득한 시절을 살아가는 소녀다. 소설에 등장할 때는 17살인가 그렇고... 대학생이 된 모습으로도 등장하는데(영화에는 안 나오는 부분) 아무튼 여자로서 외면의 매력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나이,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인 이적요는, 영화를 본 사람은 아는 것처럼 노환으로 죽음이 멀지 않은 70대 노인... 신체의 기능이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둘 약해지고 무력해지는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다. 죽음이 멀지 않은 노인의 눈에 비쳐진 싱싱한 젊은 아가씨의 모습은 생명과 욕망과 빛나는 청춘과 꿈과 가능성과 에너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긍정적인 기운 서린 표현이 모두 어울리는 존재로 비쳐진다. 책에 잠깐 나온 분량이지만 은교라는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특출난 외모는 아니다. 그 나이에는 으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젊음 자체로 아름다운 싱싱한 아가씨(그것도 고1로 등장하니 파릇파릇하다 못해 풋사과 같은 느낌)와 70이 넘은 노인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긴 세월을 살았고 짧은 시간만을 남겨둔 노인의 시각에서 본 젊음의 아름다움과 그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심리가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사이 종종 나의 20대를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멀리 두고 온 친구들과 통화하느라 추운 겨울 밤 늦게 인적 없는 거리 공중전화 박스에 오랜 시간 서있던 기억, 어리바리했던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선배들은 대학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모르는 것 같았던 느낌, 줄창 놀고 또 놀고 밤 새고 또 놀고, 열과 성을 다해 놀던 기억, 그리고 군대, 제대, 연애...

 

 소설 속 은교과 비슷한 나이에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하는 생각을 종종 했고, 그때 모습을 그려보면 확실히 그 사이 먼 길을 오긴 했다. 운동도 꾸준히 하던 시절에는 철봉이든 벽이든 아무 데나 매달리고 팔 힘만으로 거뜬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던 걸, 지금은 턱걸이 몇 개 하고 구름다리 몇 개 건너는 것만 해도 팔이 아프고 힘이 달린다.

 

 

 

 남자와 여자의 전성기는 다르다고들 한다. 20대 시절에 비해서는 군살도 늘고 했지만 여전히 기운 좋을 나이인 것도 사실이다. (짐도 들고 아이도 안고 하며 다녀도 할 만 하다 싶은 걸 보면 ... --^ )

 

 지금까지 시간을 정말 잘 살았는가 하면, 오묘한 느낌이다. 아주 나쁘지도 않지만, 아주 백점짜리도 아니다. 그때 그때 지금 생각하면 답답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한 적도 있다. 20대 초반이라고 하면 어느덧 15년 정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다시 15년이 지나면, 50대에 접어들어 돌아보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은교는 여자 캐릭터이고, 여자들이 나이들수록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워할지 모를 (내가 여자가 아니니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스무 살 무렵 청춘, 푸른 봄 그 자체인 시절을 상징하는데, 남자의 스무살은 그보다는 빛이 덜한 시기인 것 같다. 체력적으로야 정점에 달할 시기이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하고 목적 없이 헤메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은교라는 17살 여성과 이적요라는 70대 남자 노인의 이야기 사이에서, 나는 20대 남성, 30대 남성의 자리는 어디였고 어디여야 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되새기고 고민했다. 주어졌던 지난 시간들과 놓쳐버린 기회들에 씁쓸했고 내가 누렸던 것들에 감사했다. 나는 나이들고 있구나,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는 생각도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갈망에 대한 글인데, 거기에는 나이듦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한 고민거리가 함께 있었다. 기차를 타면 싫든 좋든 창밖의 풍경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가올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줬던 책이다.

 

 두 번에 나눠 썼더니 참 두서 없는 글이다. 하도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아까워서 그냥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