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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영화 2편 - '모뉴먼츠 맨', '노예12년'

thezine 2014. 3. 1. 01:44



 딱 봐도 캐스팅이 화려하고, 군복 차림에... 라이언일병구하기 스타일의 잘 만든 전쟁영화스럽게 보이는데, 실제론 아주 잔잔한 영화다. 히틀러가 빼돌리던 유럽의 예술작품들을 회수하고 주인에게 돌려주는 임무를 맡았던 실제 부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대'의 자격으로 계급을 달고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지만 미술사학자, 건축가, 보존처리전문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제목 '모뉴먼츠 맨'은 이 부대의 이름이었고, 반대로 독일군도 '트로피 부대'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부대를 조직해서 전리품을 휩쓸고 다녔다고 하네.


 '우리가 인류의 예술과 역사를 구하겠어' 하고 뛰어드는 이들을 초인적인 영웅으로 그렸다면 모뉴먼츠맨이 아니라 아이언맨이 되었겠지만, 늙고, 배 나오고, 때론 실패한 개인사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이 모여 선한 목적을 위해 노력했던 것은 인정할 만한 사실일 것 같다. 러시아군은 예술품을 노리는 또 다른 늑대로 그려지는 것도 어찌 보면 전형적인 미국 중심주의처럼 보이지만, 2014년도에도 러시아가 하는 꼬라지를 보면 거짓말은 아니다 싶다.


 2차대전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수 많은 영화들이 다루었는데, 어느 영화도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풀어놓곤 하는 조지 클루니라는 걸출한 행동가 배우의 존재감이 큰 영화다. 어릴 때 본 미국 코미디에서 봐온 익숙한 빌 머레이, 존 굿맨 같은 배우들이 이렇게 노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미드, 영드를 본지 오래 되었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타임지에서 괜찮은 배우라고 소개를 해서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알고 있었다. 사진만 봐선 그닥 멋진지 모르겠는데 화면에서는 매력이 느껴지는 배우다. 패스벤더는 엑스맨에서 역할만 기억나고 ㅎㅎ (매그니토), 에지오포가 주인공 흑인인가 본데 이름은 낯설지만 얼굴은 익숙하다. 포스터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브래드 피트는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월드워z를 촬영하러 런던에 온 브래드피트가 스티브 맥퀸 감독을 만나서 마음을 맞춰 제작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 감독의 인터뷰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길지 않은 인터뷰글에 대한 인상 때문인지, 표정은 침착하지만 부조리한 역사에 대해 끓는 분노를 안고 있는 감독의 모습이 상상되는 영화였다.


 위 영화의 조지 클루니도 그렇고, 브래드 피트도 그렇고, 이 두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 말하고 싶은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의 스타 파워와 선구안을 잘 활용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내 느낌에 그런 면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조지 클루니를 좀 따라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도 살짝...ㅎㅎ 조지 클루니가 워낙 행동가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부에는 노예제가 남아있고, 북부에는 자유인 흑인이 있던 시절, 자유인 신분이었으나 남부로 납치되어 12년을 노예로 살았던 사람의 생존 후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족이 있고 자유인인 사람을 납치해서 노예로 부려먹고 죄값도 치르지 않은 호*새*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건... 노예제를 책에서 배운 우리들에겐 새삼스럽게 다가올 부분이다.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러 편의 2차대전 영화들에 홀로코스트가 등장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는 주장?),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이야기를 별로 안/못하는 게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티브 맥퀸도 이 영화를 만들고 '왜 그렇게 껄끄러운 소재를 다루나'하는 질문을 받긴 했다. '못 만든' 게 더 크겠지.)


노예제라는 제도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전염병처럼 뿌리를 내렸었지만, 그것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는 왜 이렇게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참상은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서, 인생의 비루함은 김기덕의 영화에서, 일상의 지리멸렬함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렇게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은 많았는데 말이지.


 한편... 노예제나, 홀로코스트나... 가해자의 심리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노예 주인들은 농장/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가 절실히 필요했고, 이 때문에 노예제를 스스로 억지로 정당화하거나, 또는 외면하거나, 아니면 정말로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회적인 가해자의 심리는 그와 비슷한 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회계조작을 해가며 대량해고를 하고,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믿고, 독립정신을 기리는 날 친일교과서를 선전하고, 나라를 지킨다면서 재판 증거를 위조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지. 노예 농장주들에게 노예제도는 '공동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 의해 부조리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에게 유죄를 구형하고, 선고해놓고, 아직도 재판이 공정했고 판결이 옳았다고 믿는다는 사람들도 비슷한 정신증세가 아닌가 싶다.





 모뉴먼츠맨과 노예12년 모두 최근 타임지에서 소개한 영화들이고, 마침 며칠 자유시간이 생겨서 이틀 연속으로 늦은 시간에 영화를 봤다. 둘 다 인기 영화는 아니어서 퇴근 후 적당한 시간에 하는 상영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노예12년은 '마침 비는 상영관은 있고, 이 영화가 나와는 있고, 그냥 걸지 뭐. 근데 뭐 다른 거 대신 걸 만한 영화 있으면 당장 내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상영 시간표를 짠 듯 하다. 상영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더군. 모뉴먼츠 맨을 본 상영관은 닥터드레 헤드폰이 의자마다 걸려있고 노래방 마이크 커버를 씌우고 헤드폰 끼고 영화를 본다고 쓸 데 없이 2천원인가 더 비쌌다. 전쟁영화라고 해서 사운드가 빵빵할 거라고 생각하고 닥터드레관에서 상영한 건가... 아...


이상 멀티플렉스 영화관 까기였음.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가지는 강한 설득력, 빵빵한 감독과 배우... 그러나 둘 다 흥행영화는 아니어서 상영관이 많지 않고, 마침 나는 둘 다 퇴근 후 살짝 두통이 올 때 참고 봐야 했고, 왠지 한 부류로 느껴지는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참여하였고.. 공통점이 많은 영화였다.


오랜만에 이렇게 혼자 영화들을..... 둘째 나오면 당분간 또 땡이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