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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끄적끄적

숙제

thezine 2015. 3. 16. 23:14

종일 감기 기운으로 골골댔지만 막상 가족들 모두 자는 조용한 시간이 생기니, 책방에 어슬렁 거리고픈 욕심이 생긴다. 책상에 쌓인 물건을 치우고 의자에 앉는다.

서가에 꽂혀 아직도 읽히지 못한 불행한 책들이, 줄지어 어제나 저제나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책은 그나마도 액자에, 새로 산 다른 책에, 잡동사니에 가려져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는 일상이 어쩌다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걸까.

다시 출장 준비를 하는 것도 재미 있고, 사람 만나는 일도 나름 즐겨하고,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것이 익숙한 사람.

이 책들을 보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영 읽을 시간이...'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싫을 때, 집에 오래된 책꽂이에 꽂힌 오래된 책들을 만지작거리던 생각이 난다. 어쩌면 내 아이들도 꽤 많이 큰 어느 날에 이 책에 먼지를 불어내고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해보니 재테크나 자기개발서같은 책은 그 전에 책꽂이에서 구조조정을 겪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 고전, 교양, 역사책 같은 책은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겠지. 울산집에 가면 어린 시절 읽던 책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꽂혀있듯이.

숙제처럼 쌓여 있지만, 이 책들은 짐이 아니라, 못 다 이룬 작은 소망목록들처럼 손길을 부른다... 아이들의 교육의 목표가 성공이어야 하냐는 물음으로 부모로서 성찰의 계기를 삼는 것처럼, 서재에 들어오면 책도 못 읽고 사는 삶이 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책읽기는 자체로도 즐거움을 주지만, 생각의 꺼리(food for thoughts)를 주기도 한다. (그나마 있는 출퇴근 시간을 다 가져가는 타임지를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못끊는 이유 중 하나. 기술, 인물, 역사, 외교, 정치, 문화, 미래... 다양한 방면으로 새로운 생각거리를 계속해서 던져주는 잡지다. 그리고 구독기간 끊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연락해서 구독 기간 무료 연장과 타 잡지 과월호 무더기 증정 같은 당근을 잘도 던져주시는 영업사원의 능수능란한 설득 때문...ㅡㅡ)

오늘은 책꽂이 꽂혀있는 책들 제목만 보는데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점점 게을러져서 제목만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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