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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유 본문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물리적인 시공간이나 통장 잔고 여유와는 다른 점이 있다. 만원을 들고 7천원짜리 2천원짜리를 샀으면 1천원짜리를 사면 딱 맞고 무리가 될 것도 없는 쇼핑과는 달리... 내가 가진 열 시간을 그렇게 꼭 맞춰 쓰다가는 압력밥솥 밸브처럼 압력이 넘쳐나는 (그래서 '꼭지가 돈다'는 표현이 나온 것일지도) 일이 생긴다.
혼자 아이를 볼 때는 아이의 작은 잘못에도 짜증이 나는데, 아이 엄마가 있을 때는 육아의 부담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게 된다. 워낙에 느끼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하는 성격이다보니 일부러 다른 사람이 보라고 이뻐하는 티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고...하는데, 그런 거 아님 .. --;;
아이들이 외가댁으로 떠난 후 집에 오니 지저분한 것들부터 눈에 보인다. 1박2일 혼자 보낼 공간을 먼저 후다닥 빛의 속도로 청소를 했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아이들 미끄럼틀 안에 낙서한 것까지 닦고 카페트도 털고...
마음의 여유란 것이 그렇다. 평소 하지 않던, 평소 귀찮아서 손이 가지 않던 곳에까지 손이 가는 것. 그리고 오늘은 혼자 영화를 보려고 영화를 알아보면서 명동 cgv에 가기로 했다. 내가 보려던 영화가 맞는 시간대와 상영관이 거기여서 가는 거긴 하지만, 한동안 용산 아니면 여의도만 가다가, 오랜만에 총각 시절 데이트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향한다. 총각 시절이라기보다 아이가 없던 시절 이야기지.
명동이 이제는 명소라고 하기도 뭣한, 그냥 번화가일 뿐인 곳이 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오랜만에 가려니 기분이 좋다. 그래봐야 혼자 여러 곳 다닐 것도 아니고 아마도 극장 근처나 조금 걸어다니는 정도겠지.
그러고 보니 문득, 겨울에 데이트했던 생각들이 난다. 겨울에 크리스마스와 화려한 트리 조명들이 시내 가득해서 그랬을까, 데이트는 여름에도 많이 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추운 겨울 명동 거리를 걸었던 기억들이 나네. 빨리 베이비 시터 아주머니를 구해야 그런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겠지.
아주 춥지는 않은 겨울날, 옷을 따뜻하게 입고 거리를 걸을 때 들이마시는 공기의 상쾌함이 저 문 밖에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시간에도 쫓기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 되는 시간. 5개월 만에 처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