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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의식적인 선택

thezine 2019. 3. 10. 00:28

 무자녀 인생도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이라고 인정하고 거론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기를 보는 것을 즐기지 않고, 양육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 생각이 없는' 것을 '아기를 싫어하는 냉혈한'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그렇다.

책을 읽어보니 무자녀인 사람들의 삶은 사람들의 편견이나 선입견과 일치하는 면과 불일치하는 면이 모두 있었는데, 그래도 대체로 선입견과 다른 면이나,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아 보인다.

우선 개인의 삶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해보고 따져볼 것도 없이 무자식 인생이 상팔자다. 차분한 저녁식사,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보내는 주말, 계획대로 만들어가는 인생...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대개 본인이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포기한 가치들이다.

 같은 조건일 경우 아이가 없는 가정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다만 예전부터 아이가 없이 사는 사람들은 노후가 가장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 책은 그 부분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다. 책을 보니, 미국의 문화환경이 물론 차이는 있지만, 나름의 해결방법은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 간의 모임을 통해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그 외 여러 친목 모임, 사회 활동, 취미 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본인이 '아이 없이 살기로 결심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경계했다 해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정당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축복받아야 할 생명의 탄생으로 인해 모두가 불행해진 가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팔레토의 법칙이 부정적인 면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결혼과 육아를 할 능력과 취향을 모두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고민 없이 결혼과 출산을 하고, '이 정도로 힘든 줄', '이 정도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줄' 몰랐던 결과를 무의식 중에 후회하고, 아이와 본인 모두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어떤 품성이나 능력이나 취향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육아 적합성 하위 20%인 사람들이 이 세상의 가정 불화의 80%를 겪으며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가정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에서 나름의 균형과 행복을 찾겠지만, 출산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가정도, 소수든 아니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아기들은 그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보살핌 받을 권리가 있는데, 오히려 부모와 아이 모두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살면서 겪는 여러 비극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단, 육아 능력이라고 표현한 것은 돈 이야기는 아니다. 저출산 덕분인지 이런 저런 육아와 교육 지원 제도가 꽤나 많다. 내 생각엔 저소득층이라 해도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비하하지 않을 수 있는 멘탈만 있으면) 돈 많이 들이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다. 물론 헝그리하게 아이 키우기도 어지간히 힘든 일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출산을 재고해봐야 할' 기준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 소중한 시간과 한정된 돈과 나날이 저하되는 체력을 아이를 위해 나눌 의향이 있을 만큼 아이를 낳고 싶고, 각오를 하고 있고, 더불어 부모로서 최소한의 공감 능력은 갖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자원봉사로 영유아 돌봄 시설에 간 적이 있다. 시설에 근무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 한두 달 안에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은 앞으로도 입양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늘 부모가 안고 업고 맨 살을 부비며 키운 아기들과 달리, 그 곳의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작은 아기 침대에 누운 채로, 옆 아기의 울음 소리와 딱딱한 플라스틱 모빌, 흔들 의자 장난감만 접하며 지낸다.

 그렇게 시설에서 몇 달을 자란 아기는 숨소리만 들어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러 잠시 안아줄 때에만 숨소리가 편해졌다. 한 아기는 5개월 정도였는데, 거의 울지 않았다. 울어봐야 냉큼 달려와 안아줄 사람은 없다는 것은 이미 몇달 사이에 배운 것 같았다.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의 사례는 약간 극단적일 수는 있지만, 축복받아야 할 생명의 탄생이 무책임, 또는 불행의 결실이 된 모습이 여러 해가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출산율로는 전세계 최하위? 최하위권?인 나라에서 출산은 무조건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 결혼 전에, 그리고 임신 전에 1시간이라도 제대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때 됐다고 생각하고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점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에서 1시간씩 평생 3시간만 할애해서 '애 키우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이렇게 힘든 거야. 그래도 낳고 싶어야, 그때가 아이를 낳을 때인 거야. 이 정도 고민은 꼭 해봐라. 그래야 너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해' 이런 이야길 꼭 해줘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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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인구가 너무 많아. 노년층 부양이 어쩌고 저쩌고 다 필요 없고, 지구가 감당 못해. 그만 좀 낳자'는 책이 있었다. 그 책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아이를 둘, 셋 더 많이 낳을 수록 그만큼 한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부모의 시간, 돈,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아이가 형제를 갖게 되면서 얻는 것이 물론 많지만, 부모 뿐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도 형제로 인해 본의 아니게 희생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결혼 전에 읽었더라도 나의 가족 계획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동성애자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일 듯 한데,)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이를 낳아서, 대단히 잘 키우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은 키울 수 있겠다 싶은 정도의 판단이 안 선다면, 남들 다 하니까 나도 아이를 낳자는 식으로 얼렁뚱땅 낳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를 낳을 사람 입장에서도, 태어날 아기 입장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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