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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thezine 2022. 9. 4. 00:58



어떤 책인지는, 이 책 첫장에 나온 글이 좋을 듯 하여 그대로 갖고 와봤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승려로서 지킬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자 마흔여섯의 나이에 사원을 떠나기로 하고 승복을 벗었다. 환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유쾌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급격히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계속해서 전했던 그는 2022년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걸 다시 또 줄이자면, 스웨덴 사람이, 대학 졸업 후 승승장구 하다가, 갑자기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 어느날 환속하여 스웨덴에 돌아와서 강연을 하며 살다가, 루게릭병을 진단 받고 얼마 전 사망했다. 이 책에 집필 시기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오래 전부터 썼다기보다는 저자가 생전에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쓴 듯 하다.




중간 중간에 이렇게 같은 화가의 그림들이 삽화로 여러 번 나온다. 아직 책을 읽던 시기에 검색을 해봤던 것 같은데 남미 출신 화가였던 것 같다.





현대 문화에서는 한국이든 스웨덴이든 주기적으로 누군가 나타나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설파하고  '현상'이라고 부를 만큼 인기를 끄는 일'이 생기곤 하는 것 같다. 정말로 스웨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저자였는지는 모르겠다. 마침 한국에서는 얼마 전 있었던 하버드 출신의 풀소유 사상가 사건때문에, 삶에 대한 태도를 논하는 글을 쓰는 승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갖기 쉬운 시기인데, 불필요하게 '26에 스웨덴 대기업의 임원으로 발탁'했다는 홍보성 문구 때문에 더더욱 기대를 접고 읽기 시작했다. 사회 생활 3년만에 임원으로 발탁이 되었다면 국제면에 나올 인재이거나, 그냥 그럴 만한 수준의 중견 기업이었을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스펙이 훌륭해야 특이한 사상을 펼쳐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들에게 책을 내세울 작은 건덕지라도 있어야겠기에 그런 포인트가 필요한 건 알지만 이 책이 오랜 기간 수련에 정진한 사람이 정신 세계에 대해 쓴 에세이라는 걸 생각하면 웃픈 부분이다.

이 책은 나름 서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초판본 2천부도 떨지 못하는 책이 수두룩한 가난한 한국 도서 생태계에서 서점 입구나 서점앱 대문에 걸리는 책들은 나름 선택받은 책들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ebook으로 보았다. 다른 ebook과 마찬가지로, 그림이나 사진이 나오는 부분이 불편했으나 잠자기 전 잠을 청하며 읽는 책으로 한달 정도 걸쳐서 나누어 읽었다. 자기 전에 흥미 진진한 소설 같은 것은 물론 적절하지 않고, 종종 잠이 잘 오게도 해주었지만, 같은 페이지를 다시 다음날 읽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 방법도 괜찮은 독서법이다. (핸드폰으로 자기 전에 책을 보다 보니 눈이 나빠질 것이라는 걱정은 든다. 교보문고 ebook에서 매달(?) 무료로 1권씩 책을 볼 수 있는데(갤럭시 핸드폰 이용자만 가능한듯?) 무료로 나오는 책들 중에 괜찮은 책들이 꽤 있다.)

생각을 정리된 글로 중언부언하지 않고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그게 명상이든 승려로서의 수련이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세계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중 많은 부분은 나와 생각이 같은 부분도 많았는데, 내 생각이 정신적인 수련을 한 사람과 이미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고가 충분히 성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빈약하진 않은 애매한 범위에 속하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표현할 줄은 모르지만, 그것을 잘 표현한 글이나 이야기를 접할 때, '맞어! 내가 생각하는 게 딱 그거야!'라고 공감하는, 그게 지금 내 감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그렇게 지루하진 않게 이야기한 책이었고, 글이 좋았기에 끝까지 읽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스웨덴 사람으로 태어나 갑자기 인생에 대한 대전환을 해서 승려의 길을 걸는다는 것, 종교의 핵심 교리나 가치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을 바꾸는 선택을 하고 투신한다는 것은, 어떤 전공의 대표적인 수업들의 제목들 조차도 모르면서 그 전공을 선택하는 고3과도 비슷한 불완전한 선택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저자가 처음으로 승려로서 본격적으로 명상 수련을 시작할 때, 머릿속을 잠시도 비울 수 없고 온갖 잡생각들이 쉬지 않고 정신 없이 머릿속을 채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나라도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으면 그날 할 일들, 이번주에 쳐낼 일들, 사려고 고민 중인 캠핑용품, 수 많은 숙제거리들이 떠오를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아침마다 잠시 명상을 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 나의 머릿속은 어땠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자잘한 질문과 생각들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잰 걸음으로 산책을 하는 듯한 느낌. 번잡하거나 정신이 없이 바쁜 것과는 다르고, 계속해서 생각거리들이 싹튼다고 할까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명상가로서, 승려로서, 수도자로서 저자가 느낀 인간적인 어려움과 고뇌를, 말 잘하고 차분한 친구처럼 이야기한다. 이렇게 문명에서 벗어나 수련 생활을 하는 태국 숲속 사찰이나, 카톨릭에 있다는 수도원의 수도 생활, 교회에서 '기도원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나, 한국 불교의 동안거 같은 수련 과정들은 모두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한 의도로, 내 몸의 겉과 속을 모두 최대한 비운 채로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일 것 같다.



저자가 책 후반부로 갈수록 기력이 쇠한 것인지, 처음 불치의 죽을 병을 진단받았을 때의 좌절의 순간이 나온 때로부터, 담담히 미소짓는 듯한 느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마무리까지의 과정은 급하게 끝맺는 영화처럼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긴 시간 정신 수련을 한 사람에게도, 삶에서 죽음으로서의 전환을 (본인은 그 마무리를 위해 온 마음을 기울여 준비하고 잘 받아들였겠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마무리할 마음도, 준비도 안된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데, 한국인의 오랜 경구,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이 모든 것을 담는 진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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