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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연습실

thezine 2007. 9. 1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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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연습을 위해 주말마다 연대 교정을 찾다보니 매번 기분이 새롭다.

어쩌다 공대에서 연습을 했던 날도 그렇고

오랜만에 처음으로 합창연습실에 갔던 날도 그렇다.

(어제는 두번째로 갔던 날.)


합창연습실 바닥에는 언제부터 겹겹이 쌓였는지 알 수 없는,

수작업으로 만든 현수막의 흔적들이 가득하고

역시나 낡디 낡은 긴 의자에는 이곳에서 뭔가를 하고 음식을 시켜먹는 학생들을 위한

음식배달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합창연습실'이라는 이름 답게 합창연습을 하는 데 많이 쓰이지만

공연을 하는 동아리들이라면 모두 노리는 명당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새벽에 일찍 자리를 예약하러 와야 했던 기억.

매주 월요일에 아침 일찍 왔다니,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 >.<



음식을 사다 먹기도 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음식을 해먹기도 했던 곳.

춤연습도 하고, 배고프면 밥을 시켜먹기도 했던 곳.

창문으로 멀리까지 내다보여서

쉬는 시간이면 창밖을 보며 친구와 잡담을 나누던 곳.

학번이 올라갈수록 뒷자리에 앉아 후배들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연습했던 곳.



피아노는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지휘자가 서는 곳도 (이 날은 예외였지만) 늘 항상 피아노 옆자리.



지나가면서 보니 학생회관 옆에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아마 합창연습실의 남쪽 창문이 있는 쪽은 막혀버릴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합창연습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변화'는 늘 꾸준히 일어나고 있나보다.



이날 연습을 가면서 보니

백양로에 학생회에서 내건 현수막도

손으로 쓴 게 아니라 기계로 찍어낸 것 같았다.

손으로 얇은 천에 글씨를 써서 현수막을 만들던 시절에 생긴,

겹겹이 쌓여서 알아볼 수 없는 페인트 자국,

그 위에 새로운 글씨가 씌여질 일도 없으려나.



그래도 교정(校庭)이라는 곳은

바깥보다는 조용하기 마련이고

바깥보다는 변화도 느리기 마련이다.



지금 연습에 나오는 84학번 선배가 느끼는 것은 나와는 또 다른 느낌일 거다.

새로운 간판이 오르고 내려가는 속도가 꽤나 빠른 신촌에서

그래도 84학번이 학창시절일 때부터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는 식당이 있다.

변하는 게 많을수록 남아있는 것들이 소중하고 반갑다.



그대로인 것들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변화를 지켜보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마도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