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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대만의 가을] 마지막편, 타이난을 떠나던 날

thezine 2007. 11. 23. 14:09


 전날 해산물+맥주+복분자주의 파티 덕분에 이 날 아침은 정신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숙소에서 내내 쉬다가 떠나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는 대만 친구 때문에 억지로 호텔을 나섰다. ㅠ_ㅠ 지나고 나서는 그때 힘들어도 돌아다닌 덕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다녀와서 다행이지만 그땐 숙취 때문에 아주 고생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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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안 로(海岸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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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시사주간지 TIME에서 봤던 바로 그 곳이다. TIME의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여행지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대만 '타이난'시의 '하이안'로 라는 거리를 소개했었다.
 
 하이안로는 일제시대에 지은 낡은 건물이 있던 곳이다. 도로에 인접한 건물들을 일부 허물고 지하 상가 거리를 개발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발 사업이 중간에 엎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반쯤 허물다 만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흉물로 남을 뻔한 거리에 이렇게 자율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술집과 까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건물은 투시도법으로 건물의 모양을 그린 BLUE PRINT라는 술집이다. 말 그대로 '청사진'을 모티브로 그린 벽화. TIME에서 이 거리를 소개한 글을 보고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날 드디어 거기에 갔다. 그러고 보면 관광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멋진 곳들이지만 그만큼이나 마케팅이 중요한 것 같다. 남이섬이 실제로도 이쁘긴 하지만 겨울연가가 없었다면 그렇게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 되진 못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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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안그래도 숙취로 힘든 데다 날씨도 무지 더웠다. 동네 개도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더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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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양쪽으로 이렇게 반쯤 허문 건물 벽에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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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그림에 조명까지 설치했나보다. 밤에 왔으면 조명도 이뻤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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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안로 거리를 간단히 구경하고 차로 이동하던 중에 지나간 '문학역사관'인가 하는 건물. 일제시대에 저음해 지어진 듯한 고풍스런 건물.

 대만 사람들은 웨딩촬영을 많이 한다. 타이베이의 박물관 근처에도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건물 앞에서도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웨딩촬영은 스튜디오 촬영을 주로 하는 것 같은데 대만에선 주로 야외 촬영을 하는 것 같다. 날씨도 더운 나라에서 고생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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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에서 먹은 군것질 거리들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로우유안(肉圓;육원)이라는 음식. 만두 같은 것 안에 돼지고기가 들어있고 소스는 매콤하다. 한국 사람이 좋아할 법한, 떡볶이 소스와도 조금 비슷한 맛이다. 젓가락으로 베어먹은 후에 남은 소스는 옆에 국물에 부어서 휘휘 저어서 마신다.

 타이난은 대만에서도 가장 군것질거리로 유명하다. 약 300여가지가 있다고 하니, 하루에 10개씩 먹어도 한달은 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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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친구는 내가 쉴 틈을 주지 않고 먹을 거리와 음료수를 안겨줬다. 로우유안을 먹은 후에 음료수 스탠드에서 사과 주스를 사서 내 손에 들려줬다. 속이 안 좋아서 아침부터 물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주스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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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孔廟: 콩먀오) - 공자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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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바로 건너편에는 '공묘(孔廟 : 콩먀오)'가 있었다. 안내 책자와 달력을 보고 운이 좋다 싶었던 게, 매년 9월 28일은 공자의 제사날이라고 한다. 대만에도 공자의 묘가 몇 군데 있다. 여기서 공묘는 '묘지'가 아니라 '사당'을 뜻하는데,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타이난인 만큼 공묘 역시 타이난이 가장 유서 깊다. 세월이 느껴지는 저 커다란 나무가 공묘에 잘 어울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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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성(성스러운 성), 입덕지문(덕으로 들어가는 문), 개현(열어 어질게 하다.)과 같은 문의 이름들이 공묘에 어울린다. 유치원 아이들이 모여서 재잘재잘 떠들며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으려다 타이밍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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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묘의 입구 부근에 있는 '예문'이다. 물론... example sentence가 아니라 '예의의 문'이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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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묘 마당에서는 공자의 제사날을 기념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대만은 옛날부터 전 국토에 풀숲이 우거져 있었고 사슴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대만 역사 초기 주민들은 사슴 사냥을 주로 했었다. (전에 올린 사슴 사냥하는 그림 참조: 링크된 페이지 중하단 부근) 중국 대륙과 똑같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지만 대만은 대만의 방식으로 이 날을 기념하는구나 싶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궁사들이 전통활을 쏘고 있고 과녁에는 사슴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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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도 많고, 양복에 꽃을 꽂고 맨 앞자리에 아저씨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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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통 궁사에 이어 양궁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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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다 보니 기울어졌네. 귀찮아서 그냥 올림... ^^;

 '환영참관'이라고 쓰여있다. 말 그대로 관람을 환영한다는 말씀이지만, 왠만한 사람 허벅지 이상의 높은 높이로 만들어진 계단이 여자가 공묘에 입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미였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아이러니하다. 그렇다. 우리는 잊고 지내지만 저 시대에는 남녀차별이 장난아니었던 시절인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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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묘의 기둥과 들보에 그려진 그림들이 단아하고 아름답다. 너무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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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묘의 내부 모습. 여행기를 올리며 자주 느끼는데, 참 햇빛이 쨍쨍하다. 초반에는 비도 자주 오고 했는데 후반부에는 늘 쨍쨍했다. 대만의 날씨는 덥긴 하지만 기분이 탁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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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곳을 가면 으레 바닥을 유심히 살핀다. 전쟁과 화재, 그리고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오래된 건물이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아주 어렵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바닥돌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기 마련이다.

 북경의 자금성에 갔을 때도 나중에 중건된 건물들과 현대에 유리창을 끼워넣은 건물들, 새로 만들어 넣은 가구들과 달리 몇 백년을 굳건히 버텨낸 바닥돌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디디고 지나다닌 닳고 닳은 바닥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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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마을 모습의 미니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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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의 동네 사람들이 모두 팔을 벌리고 다니는데 어린아이 같아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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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행사가 거의 끝난 후에, 한 쪽에서는 무료로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서있는 아저씨 헤어스타일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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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수학', 즉 '모든 대만에서 가장 높은(머리 수) 학교'라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추엔타이쇼우쉐'라고 읽는다. 우리식으로 하면 '전국최고학부'인 셈. 일반 학교에 비하면 부지가 그리 크지 않고 현재는 학교로서의 기능도 없어졌다. 하지만 힘이 넘치는 필체로 '전국최고학부'라고 적어놓은 품새가 참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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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건너편의 거리다. 입구에 돌기둥만 오래된 것 같고 그 안은 평범한 거리이다. 일반 거리가 오래된 돌기둥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사가, 유적이 이렇게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서울 거리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종로 거리, 청계천 주변 같은 곳에 조그맣게 'xxx선생 생가 터', 'xxx다리 터'와 같이 대리석으로 된 표지만 남아있는 걸 생각하니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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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돌기둥 안쪽에는 하늘에 줄을 달아 수증기인지 물인지를 뿌려서 공기를 식히고 있었다. 한가롭고 쨍쨍한 여름 낮에 저런 나무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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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묘' 맞은편에 있던 오래된 건물. 건물에 지붕을 따로 씌워놓은 모습이 범상치 않아 일단 찍어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 건물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애국부인회'인가 하는 단체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다. 일제시대에 청장년은 태평양 전쟁에 동원되고, 대만에 남은 부녀자들은 후방 보급에 동원되어 전쟁 물자를 만들던 시절의 건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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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샤오위에(度小月, 도소월)'라는 이름의, 아주 유명한 식당이다. 국수에 고기 소스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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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입구에 있는 조리대. 시커먼 솥에 있는 소스는 100년째 설겆이를 하지 않고 계속 새 재료를 넣어서 끓여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한테 유명해서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 음식도 우리 입에 맞는 편. 다만 한국 사람들은 거의 싫어하는 '샹차이(=고수=코리앤더)'는 빼달라고 하는 게 좋다. 양은 많지 않고 값은 아주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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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R을 타고 공항으로


 전날 과음도 했겠다, 어영부영 마지막날을 보낼 뻔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지런한 대만 친구 덕분에 마지막날도 시간을 활용해서 몇 곳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짐을 모두 정리해서 고속철도역으로 출발했다. 이제 대만을 떠나는구나, 슬슬 실감이 나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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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철도역에 있는 모스 버거. 일본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오사카에 갔을 때 먹고 싶었는데 결국 기회가 없었다. 어딜 가도 일본을 닮은 대만에서 모스 버거를 발견했다. 근데 그냥 구경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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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의 고속철도는 한국의 KTX와 비슷한 개념의 철도다. High Speed Railway라고 해서 HSR이라고 부르고 중국어로는 '고속철도'를 줄여서 '까오티에(高鐵 : 고철)'라고 부른다. KTX보다 조금 싼 편.
 
 다행히도, 타이난에서 타이베이까지 갈 필요 없이 타이베이 조금 전에 공항 부근에서 내리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기 전에 수원쯤에 공항이 있어서 바로 수원에 내려서 공항으로 가면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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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24시간 정도를 대만의 친구가 항상 안내해준 덕에 안내만 받는 입장이 되었다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 바퀴달린 가방(일명 돌돌이)을 끌고 지갑과 여권을 늘 갖고 다니고 수시로 카메라를 꺼내고 종종 여행책을 뒤적이는 여행지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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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SR 내부. 역사 개찰구에 가장 가까운 열차 중간 부분은 '상무(비즈니스)석'이라 더 비싸다. 개찰구에서 좀 걸어가야 하는 일반석은 한 줄에 5자리지만 자리도 남았고 불편하진 않았다. 소음도 없고 쾌적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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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내부에 마치 비행기처럼 쇼핑 거리를 안내해놓고 있었다. 모형 HSR, 머그컵,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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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 열차에 몸을 실을 때가 가장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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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부근의 '타오유엔'역에 내린 후 플랫폼을 떠나가는 HSR의 모습.

 '타오유엔'역을 나와서 공항 셔틀버스를 타면 15분 정도만에 공항에 도착한다. 탑승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타고 다시 피곤한 몸을 좌석에 맡겼다.
 
 이렇게 대만 여행이 끝나는군. 7박7일의 나름 빡셌던 일정, 첫날 새벽 어렵게 숙소를 찾아 더워서 잠 못 이루던 기억도 나고, 타이베이에서 자주 비가 오던 기억, 중간에 들렀던 곳들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처음엔 일정이 길게 느껴졌지만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끝날 때쯤에는 옛날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여행은 이제 자제하고 돈을 아껴야지...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다음엔 어딜 언제 갈까 궁리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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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 착륙 순서가 밀렸는지 공중에서 방황을 조금 했던 것 같다. 평소와는 달리 내륙의 시가지 상공을 돌아다녔다. 지상의 불켜진 거리와 상가가 꽤 가깝게 보이니까 그냥 비행기를 탈 때랑은 다른 새로운 기분.

 문득 든 생각에, 20층만 넘어가도 '스카이 라운지'로 경치를 강조하고 음식값도 비싸고 한데,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훨씬 높은 고공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한참 사업 구상을 하다가, 모든 손님들이 동시에 입장해야 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다 먹고 난 후에 이착륙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포기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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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위에는 평소처럼 퇴근하고, 평소처럼 어딘가로 가는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다시 짐을 끌고 집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휴가가 끝났다는 사실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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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끝내며



 이렇게 돈도 많이 써야 하고 준비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몸도 피곤한 그 길을 혼자 떠났던 나 자신이, 그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재밌다고 느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런 저런 대만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고, 결국 여행까지 마치고, 여행에서 사온 선물을 선물하고, 그리고 여행기까지 마무리했으니 이로서 대만 여행 패키지 마무리 끝~

 다음엔 어딜 갈까, 다음에는 언제 갈까, 다음에는 어떻게(혼자/친구와) 갈까, 그런 생각이나 하며 연말을 보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