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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대만의 가을] 마지막 목적지 타이난 낮 관광

thezine 2007. 11.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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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nan



 타이페이, 화롄, 루이쑤이, 타이동, 즈번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 타이난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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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더운 타이완 날씨의 추억.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은 책을 보다, 자다 하며 갔다. 타이난에 도착한 후부터는 아는 사람이 마중을 나오고 안내해주고 했던 덕에 아주 편하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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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었던 호텔. 여행 기간 내내 묵었던 곳 중에 가장 좋고 가장 비쌌던 숙박이었지.
우리돈 6만원 정도였는데 그전에 만오천원 정도 하는 방에 비하면 호화로울 지경.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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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역에 마중을 나왔었고 '안평고보'에 함께 갔던 David. 타이완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미국 사람이다.

 이 곳은 '안평고보'라고 하는 곳이다. '타이난'은 대만의 남부의 도시. 지금은 '타이베이'라는 북부의 도시가 수도이지만 대만에 네델란드 사람, 중국 본토 사람 같은 외지인이 먼저 정착한 곳은 이곳 남쪽이다. 그때 네델란드 사람이 지은 성벽의 유적이 남은 곳이다. 이 건물처럼 말끔한 건물은 모두 재건 과정에서 새로 지은 건물이지만 그때 당시의 성벽도 일부 남아있다. 네델란드 사람들은 Zealandia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원래 이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있었는데 지형이 바뀌면서(지진이라도 겪었는지) 해안선이 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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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나라의 '바다왕'이었던, 대선단을 이끌었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성공'. 그는 '반청복명(만주족에 의한 청나라를 반대하며 명나라를 복구)'의 기치를 내걸고 대만에 근거지를 두었다고 한다. 대만을 네델란드로부터 '해방'시킨 영웅으로 기려지는 인물이다.

 대만 뿐 아니라 해협을 건너 마주보고 있는 '시아먼'이라는 중국 도시에서도 정성공의 기념관을 볼 수 있었다. '시아먼'에 갔을 때는 기념관에는 우연히 다녀갔었는데 알고보니 대만 해협 양쪽의 지역에서 모두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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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고보의 원래 모습을 복원한 미니어처다.
그 옛날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온 네델란드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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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만 -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라는 대만 역사책 서평에 올린 그림이다.
대만 역사 자료 중에 손꼽히는 중요한 그림인가보다.
노루를 잡고 초지에서 생활하던 대만 원주민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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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보면 물통 밑에 수도꼭지도 달려있다.

 옛날 사람들의 삶은 지금의 기준을 보면 무지 많이 불편했을 거다. 냉장고도 없고 에어컨도, 세탁기도 없었다. 더운 건 참는다고 해도, 더운 날씨에 음식을 보관하지 못했을 생각을 하면, 얼마나 맛 없는 음식으로 대충 대충 먹고 살았을까 싶다.

 편한 것을 찾아다니는 건 진짜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탐험하고싶은 '오지'는 지구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불편을 감수하기엔 이미 너무 편리함에 익숙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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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고보 구석의 낡은 벽돌들.
1500년대라는 멀고 먼 옛날부터 이 자리에서 비르 맞고 풀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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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를 가건, 어지간한 유물은, 알고 보면 모두 길어야 100~200백년 안에 중수되었거나 2차 대전 이후 복원된 것일 때가 많다. 그래도 이곳 안평고보의 구석에서는 원래 모습 그대로 남은 성벽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고마운 마음. 5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성벽과, 그 시간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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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공 들여 쌓아진 성벽이다.
하지만 이제는 파편만 남아 '기능'은 모두 사라지고 이렇게 역사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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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현장 일부는 이렇게 발굴 작업 현장을 재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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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안내도 해주고 같이 돌아다녀준 친구. 이름도 까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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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초기 역사를 청동부조로 설명한 작품들이다. 한자로 빡빡하게 설명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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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벽돌을 쌓던 사람들이 500년 후에 한국 여행객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을 봤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들에겐 그저 힘든 노역이었을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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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옛날부터 사탕수수를 길러왔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에도 사탕수수는 중요한 작물이었다. 경제발달 초기에는 설탕 수요가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당시 경제가 발전하던 일본의 설탕 수요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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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고 '포대'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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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입구부터 분위기가 조용~하다. 평일 낮에 이런 데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많을리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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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대만 역시 침입을 많이 당했다. 포대를 쌓아 나름 방어를 했던 곳이다.

 이곳을 거닐며 동행한 대만 사람들과 군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만 군생활 힘들어?'
 '힘들지~'
 '어디서 했어?'
 '해군. xx라는 섬에 있었어.'
 '대체복무 제도 있지? 어떠냐?'
 '대체복무도 있지. 오래됐어.'

 이런 군대에 대한 이야기.
 의무 병역제도인 나라라 그런 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중국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인 대만. 그러나 이미 일찌감치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했다. 군대보다 쉬울 거라고 처음에는 사람이 몰렸지만 실제로 해보니 만만치 않게 힘이 들어서 그 뒤로 지원자가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실질적으로 대체복무제도가 있다. 공익, 병역특례 등. 단지 4주 군사훈련만 다른 교육으로 대체한다면 충분히 도입이 가능하다. 그래도 눈과 귀를 막고 입만 열고 '시기상조'만 외치고 있다. 역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논리도 필요 없는 무대뽀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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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대포의 모형만 전시돼있다. 바닥에 반원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다. 저렇게 거대한 대포를 움직이려면 바닥에 원형으로 레일을 깔아서 좌우로 회전시켰다. 좌우회전, 상하 각도 조절, 화약을 재어 넣고 포탄을 발사하던 급박하고 위험한 과정은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가롭게 거닐기 딱 좋은 고요한 공원으로 바뀌었다.

 진시황이 국력을 소진해서 쌓은 만리장성과 서태후가 해군 군비를 전용해 지은 이화원이 지금은 북경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이다. 당대 지도자의 실정, 전쟁과 같은 고통의 흔적이 후대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덕분에 많은 후대인이 먹고 사는 것도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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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은 먹거리로 유명하다. 대만에서 먹거리가 가장 풍부한 도시라고 한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모든 도시에 야시장이 발달했다. 대만 사람들은 야시장에서 이런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여가를 보낸다.

 사진에 나온 음식은 '관차이반'이라고 부른다. 토스트의 속을 파서 스프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 '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맛은 둥그런 빵을 파서 스프를 채운 '크램차우더'하고 똑같다. 관건은 고소하고 맛있는 스프, 스프에 들은 야채와 쫄깃한 재료들, 반면 바삭바삭하게 구운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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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물게 나오는 내 독사진. 이 건물은 '츠칸로우'라고 하는 건물로 기억한다. '빨간 건물' 정도의 의미. 원래 서양 사람들이 지은 건물인데 '홍마오청(빨간 털난 사람들의 성)'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빨간 털이 난 네델란드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 후에 무슨 일인지 현재와 같은 동양적인 모습으로 개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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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귀엽지 않은가? 막춤 추는 듯한 이 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우의 사당이었던가? 오른쪽에 걸린 수많은 부적들은 입시의 행운을 비는 것들이다. 저 신이 학문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신에게 학문 성취를 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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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도 미니어처가 있다. 먼저 나온 사진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 서양사람이 지은 건물이라는 사실이 느껴진다. 오래 전에 지은 건물이 몇 백년동안 자리를 지키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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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물에 지하로 연결되어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우물. 저 위에 나왔던 '안평고보'와 지하로 연결되어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했던 걸로 기억난다. 물론 실제로는 연결되어있지는 않다. 거리가 꽤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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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나를 자기 차로 이리저리 안내해준 대만 사람 Even. 평일인데 시간 내서 이리저리 안내해주고 밤에 술자리도 만들어주고 다음날도 안내해주고... 생각해보니 민폐 참 많이 끼치고 왔다.

 그 날 밤, Even의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나는 가져간 복분자에 맥주와 백주를 마시고 결국 쓰러짐... -_-;; 그 (속)아픈 기억은 다음 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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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에서 보낸 첫 날은 아침에 이동시간, 타이난 낮 관광, 밤에는 파티로 나누어서 올린다. 내용상 전혀 다르기도 하고 길이도 길어져서 그렇다. 인기 드라마도 아닌데 왜 편수를 늘리냐고 악플이 달려도 어쩔 수 없다. ^^;

 타이난의 여행을 그 전까지의 여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현지인이 편하게 차로 안내해줬다는 점, 드디어 싸구려숙소를 벗어나 꽤 좋은 방에서 묵었다는 점, 현지 사람들과 그 친구들과 즐거운 파티를 했다는 점.

 회사 일로 알게 된 사람이라서 부담가질까봐 최대한 혼자 다니려고 했는데 굳이 안내를 해주고 저녁식사 자리도 마련해준다.

 손님 대접의 정서는 역시 동양 사람들끼리 통하는 바가 있다. 일본, 중국은 한국과 여러 모로 문화적 바탕이 비슷하다. 물론 과거 중국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다. '한자 문화권'은 의외로 동질적인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와 중/일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다른 점 투성이처럼 느껴지겠지만, 한자 문화권 외의 나라에 비하면 그 차이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웃한 나라들이니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이래저래 부딪힐 일도 많고 은근 감정 싸움도 심하다. 독도 문제, 조어도 문제, 간도 문제 같은 모든 인접국가의 고질적인 영토 문제 외에도 자존심 싸움도 세다.

 늘 애정만 갖고 대할 순 없지만 더 넓게 보고 아시아를, 조금 좁혀서 동아시아 한중일대만 같은 인접국가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유럽 여행 한 번 안 가보고 대만, 중국, 일본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 모르는 연예인의 스캔들보다 이웃집 아줌마 바람난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 것에 비교하면 좀 이상하려나? ^^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할수록 하나의 커다란 퍼즐처럼 이리저리 들어맞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만의 한 섬이 '류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가까운 일본의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대만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독립운동을 했었고 마찬가지로 친일파의 친일청산이 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나는 '이홍장'이라는 사람이 중일전쟁 패배로 인해 일본에 가서 협상을 통해 대만을 할양했다는 사실들을 배우면서,
 동아시아의 역사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섥혀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과정이 꽤 재미있다.

 대만 최고(最古)의 도시 '타이난'에서 대만의 역사를 생각하며 느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