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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중국의 하이마트

thezine 2008. 4. 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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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상해에 갔을 때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2주일을 혼자 보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중국어도 못하고, 물정도 몰랐다. 재수좋게 학교에 등록하고 기숙사에 들어갔으니 잠은 자고 학교 갈 준비는 되어있었지만 기본적인 식사 문제도 쉽지 않았던 그때.

 그래도 무작정 감을 따라 돌아다녔는데, 아는 곳이 없다보니 무조건 번화가, 중심지를 찾아다녔다. 요령이랄 것도 없고, 기차역, 전철 갈아타는 역을 찾아 다녔다. 때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꽤 번화하다 싶으면 무작정 내려서 걷기도 했다.

 일단 번화가에만 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뭔가 할 게 있기 마련. 쇼핑을 할 수 있는 상가가 있고, 식당도 다양하고 화려한 간판, 길거리 행인의 사소한 행동에도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리던 그 시절. 그래도 갈 곳은 빤하다보니 난징동루(=상해의 명동), 와이탄(상해의 광화문+고수부지), 상해임시정부청사 같은 곳들은 한 번씩 들렀다.

 여행객이라면 구경이나 하고 말겠지만 거기서 살 생각을 하니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사러 다니기도 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사진에 나오는 전자제품 매장이다. 한국의 하이마트랑 비슷하다고 할까.(그런데 정작 하이마트는 가본 적이 없다.)

 TV, 냉장고 같은 큰 것 외에도 자잘한 전기용품도 두루 갖추고 있다. 매장이 크고, 갖고 싶은 물건이 많아서 초반에 몇 번 들렀다. 어쨌거나 남자들은 전자제품을 보면 발걸음이 멈춘다. 옷가게 앞에 여자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것과 비슷. 처음엔 저 전자제품 상점의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찬쿤'이라는 체인점. 그리고 중국 본토의 기업도 아니고 대만에서 건너온 기업이다.

 그 전에 길거리에 조그만 가게에서 멀티탭 같은 것들을 사려다가 말이 안 통해서 사지 못했던 바보같은 순간을 보냈던 터에, 이 매장에는 물건도 많고 가격표도 선명하게 붙어있어서 꽤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물건도 이 매장에선 더 비싸게 팔고 있었고 처음에 컴퓨터 스피커니, 멀티탭이니 하는 무거운 것들을 시내에서 낑낑대고 들고 와놓고도 뿌듯해했던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동네 까르푸보다 물건을 비싸게 샀던 것이 억울해서 그 이후로 가지 않았는데, 오늘 우연히 생각이 났다. 아무 것도 모르고 상해에 발걸음을 내딛었던 시절의 막막함. 그때 찬쿤에서 물건을 사서 뿌듯하게 보따리를 안고 기숙사로 오던 일은, 그 시절의 상징 같은 기억이다.

 중국에 가는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변화이고 도전이었지만 알고 보니 상해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고 있었고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본인이나 지인이 중국에 사는 일이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도착해 이미 북적대는 곳에 나 혼자 걸어서 힘들게 도착한 기분이랄까. 목적지에 도착해서 기분 좋게 기념사진을 찍을 무렵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김이 새기도 했다.

 '공대'라는 칙칙한 공간에서, 중국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인터넷에서 본 엽기사진 정도였던 과동기들 틈에서, 도서관에서 닥치는대로 중국 관련 책을 읽었던 것도 이제 생각해보면 조금 귀엽기까지 한 beginner의 의욕이었다.
 
 지금도 중국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이런 저런 지식을 쌓고는 있지만 시간에 비하면 그 속도는 아주 완만하다.  회사는 교육기관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일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일을 반복하는 관성도 중요한 곳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2004년 2월 상해에서 누구 한 사람 도움을 얻을 곳도 없을 때, 도저히 걷기 힘들 때까지 돌아다니던 시절은 시간대비 학습량으로 따지면 상당히 효율적인 시간이 아니었을까. 내가 어렵게 도착한 곳이 남들에게는 겨우 버스에 올라 좌석에 엉덩이 붙일 때까지 버스가 이동한 정도의 거리밖에 안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출발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갈 수 있었겠지.

 그때 상해에서 살며 하나 하나 배워갔던 기분이 문득 그립다. 직장인이 흔히 그렇듯 막연히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것도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온전히 배우고 싶은 것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기도 하고 대학원에 가기도 하고 직장을 옮기기도 하지. 나는 어쩌면 그 중간 어디쯤이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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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르지만 아무튼 유학을 떠나는 나 모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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