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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쭝궈,듕귁

샹하이 샹하이 샹하이

thezine 2008. 3. 12. 00:15
 출장 일정 마지막에 시간이 하루정도 남았다. 어차피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도 상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상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봐야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어딜 가거나 하진 않았고 전철을 타고 가며 찍은 사진 몇 장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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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지난 출장 사진을 올릴 때도 올렸을지 모른다. 전철을 타고 갈 때 늘 지나치는 한 부자 아파트의 모습. 아파트 단지 안에 요트 선착장이 있고, 강의 지류를 타고 바다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상해의 '황푸강'으로까지 나갈 수 있을 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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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지난 번에 올렸던 사진. 역시 전철 타고 가면서 보이길래 찍은 사진이다. 상해기차역을 지나칠 때쯤이면 저 멀리 있는 이 건물들이 보인다. 동그란 구조물이 특이한 '동방명주'는 방송탑으로도 쓰였다는데 지금은 관광지로만 유명하다. 어떤 책자에 의하면 'incredibly ugly'한 구조물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딱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 옆에 층계무늬가 있는 건물은 상해의 대표적인 건물이었던 '진마오 따샤'라는 건물이다. 50층 이하로는 사무실로 쓰이고 51층부터는 하야트 호텔이 들어서있다. 88층이 전망대였던가... '진마오(金茂)'라는 건물의 이름은 '재물이 무성하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층수 역시 88층이어서 상해 신시가지 푸동지구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 완성되면 아무래도 전보다는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새 건물은 상해금융센터... 어쩌고 하는 건물이라고 들었다.

 중국 여기저기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어지간한 지방 대도시에만 가도 엄청난 부자들이 즐비하지만 역시 중국 도시의 꽃은 상해다. 상해를 동방의 진주라고 했던 누군가의 표현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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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을 타고 '쩐핑루'라는 정거장을 지나칠 즈음이면 그 앞의 한 건물이 보인다. '동방호텔'이 이 건물에 있다. 여자친구를 알게된 후 종종 찾아갔던 곳. 가끔 전철역 앞의 노점상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먹기도 하고 자전거에 꽃을 싣고 다니는 아주머니에게서 파란색 꽃을 사기도 했던 곳. 지금은 몇 명 친해진 여자친구의 회사 동기들도 처음 만났던 곳.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짠하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보니 주변에 못보던 건물이 들어서있었다. 이 다음날 공항에 가며 이 건물의 앞으로 고가도로를 타고 지나가는데, 전에 택시를 타고 여기에 가려면 '광신루' 램프에서 내려와야 했던 생각이 나서 또 새로왔다. 어찌 생각하면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어찌 생각하면 아득하니 먼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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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코우 축구장. 그 뒤로는 윤봉길 의사가 의거했던 루쉰공원(그 당시 명칭은 '홍코우 공원') 역시나, 집과 학교에서 가까워서 몇 번이나 갔던 곳이다. 이 안에는 윤봉길의사 기념 정자와 정원이 있어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온다.

 한국과 북한의 국가대표팀 경기가 태극기/애국가 문제 때문에 북한에서 열리지 못하고 상해에서 열리게 되었다는데, 아마 그 장소가 이 축구장일 거다. 휘트니 휴스턴, 비 같은 유명 가수들의 공연도 이곳에서 종종 열린다. 마침 내가 간 날이 경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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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국에서 첫 학기를 보냈던 기숙사. 중급 호텔이자 기숙사로 쓰이는 건물이다. 지금은 상해외대가 돈을 많이 벌어서 새 건물을 지었는데 외국인 기숙사도 다 옮겨간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상해에서 겨우 5개월(?) 정도만 살았던 곳이지만, 첫 외국생활을 했던 곳이라 나름 정이 들었다. 중국말이라곤 거의 할 줄 몰랐던 그때가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게 상해 생활을 시작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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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에서 나와서 혼자 자취를 시작한 후로도 꾸준히 다녔던 체육관이다. 수영장도 있지만 결국 한 번도 가지 않았고 웨이트와 유산소만 했었다. 여기에서 찍은 사진들을 예전 홈페이지에 올리곤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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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에서 살 동안 자주 이용했던 식당이다. 방과 후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고 그보다는 배달을 시켜먹곤 했던 곳. 친구가 오거나 하면 늘 여기에서 북어국과 보쌈정식을 시켜먹곤 했었다.

 상해에 간 날,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와 술을 마신 탓에 다음날 해장을 하러 진미원에 갔었다. 전에는 10위안하던 북어국이 이제는 15위안으로 올랐더군. 2년이니까 그 정도 오를 만도 하다. 인민폐 가격이 상승한 것까지 감안하면 체감가격은 더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보단 싸다. 우리돈으로 2천원 정도 하는 셈이다. 그래도 중국 물가가 막연히 쌀 것으로 생각한 사람에겐 비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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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에서 지내는 약 24시간 정도의 시간동안 이것 외에도 찍을 만한 게 많았지만 짐도 많고 피곤하기도 하고 다음날은 숙취까지 괴롭히는 통에 사진은 별로 찍지 않았다.

 소주에서 상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왜 그리 감상에 빠지고 눈물이 나던지, 출장이 끝났다는 편안함 때문이었을지, 덩달아 생각나던 일들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과거가 얼마나 좋았던 간에, 현재 어떤 어려운 일이 있건 간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본능적인 자각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하루이틀만 과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실연을 한 후라면 연인과 사이가 좋았던 그 언젠가로,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면 그 사람이 곁에 있었던 '그 언젠가로 잠깐만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해에서 지낸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졌다. 그 중 몇 사람들은 아직도 자주 만나고 몇 사람들은 가끔 안부만 전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는' 상해 홍커우의 거리를 걷다보니 잠시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후 같은 반의 한국 남자들과 점심을 같이 먹던 때, 자주 봤던 나이 비슷한 친구들과 밥을 먹고 한국식당을 찾아다니던 때, 살림살이를 사러 마트에 갔을 때 연락을 받고 짐을 들어주러 후배들이 와준 그때, 반의 동생들과 맛있는 멕시코 음식을 먹으러 나갔던 그때로 잠시만 다녀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상해를 가는 것이 차라리 쉬우면 쉬웠지 그때 그 사람들 그대로 한 자리에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 그 형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반에서 항상 튀던 한국 여자애는 어디 살고 있을까? 그때 나름 친했던 외국인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지낼까?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궁금증만 더 커져간다. 해결할 수 없는 궁금증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아쉽다.


 생각해보면 그때 상해에서 보낸 시절이 그렇게 '재밌다'고 비명을 지를 만큼 흥미로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와서 이렇게 그 시절의 일부를 그리워하는 것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똑같이 4년이 지난 후에는 이 원룸방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시켜먹고 축구를 보던 순간이 눈물나게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때 참 재밌었다'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라도 있으려면 지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는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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