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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칼럼니스트 Charles Krauthammer의 퇴장

thezine 2008. 9. 26. 01:22

Charles Krauthammer

Charles Krauthammer


 미국에 Charles Krauthammer라는 보수적인 성향의 저널리스트가 있다. 군대 가기 전에 2년, 군대를 다녀온 후 2년, 그리고 회사에 다니면서 누군가 얻어다준 걸로 몇 개월간 TIME이란 미국의 시사 주간지를 읽으면서 이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됐다. 기사를 정독하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 읽다보니 TIME의 왠만한 기자 이름과 자주 등장하는  필자들의 이름은 알고 있다. 그 중에 Krauthammer는 보수적이고 고집스러운 공화당 성향의 필자로 뇌리에 박혀있다. 아마 이 사람의 성이 특이해서 더 잘 기억하는 걸 수도 있다.(크라우트해머...는 아닌 것 같고 크라우쌔머, 크로쌔머..가 맞는지 잘 모르겠음.)

 중앙선데이를 그만 보기로 하고 오랜만에 TIME을 다시 정기구독을 시작했다. (누군가가 구독하다가 포기한 것을 정가보다 싸게 넘겨받았다. 인터넷에서 발견.) 아주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 우리나라 언론과는 화법이 다른 기사문도 나름 재미있고, 시사성이 강한 영어 단어들도 접할 수 있고, 국내 언론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국제적인 시사교양을 얻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년에 20만원 정도인데 싼 가격은 아니지만 매주 배달되는 걸 생각하면 비싸다고도 할 수 없다. (TIME 외판원이 된 듯함.) 옛날에 비해 사진에 관심이 많아진 지금은 잡지에 실린 사진을 유심히 보는 재미도 있다. (사진 기자들에게는 TIME같은 저명한 잡지에 사진이 실리는 것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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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Krauthammer에 대해 쓰려던 글인데 TIME에 대한 내 생각을 늘어놓다보니 서두가 길어졌다.

 얼마 전부터 다시 TIME을 보기 시작했는데, 3번째 권을 받아들도록 Krauthammer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Joe Klein이라는 진보적인 성향의 필자와 짝을 이루어서 칼럼, 에세이가 실리곤 했었다. (미국이라고 해서 선명 보수, 선명 진보 언론이 없는 건 아니지만 TIME은 주류 매체로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려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예전에 TIME을 구독할 때는 Krauthammer(일일이 타이핑하기 귀찮다. K로 약칭하기로 함.)의 글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평가지만 K의 글에서 진보와의 대결 논리가 구차하거나 지엽적인 부분을 걸고 넘어진다는 생각이다.(불행히도 주변에 TIME을 읽는 사람이 없어서 독자로서 생각을 교환해볼 기회가 없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몰랐다.)

 K의 글이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구글을 검색해봤다. 상당수 검색결과 그렇듯, K의 이름으로 검색을 하자 검색결과 1페이지 제일 위에 나오는 건 위키피디아의 K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용을 내 마음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자세한 원문은 여기 링크를 클릭해보시길.


Charles Krauthammer


 1950년 3/13 뉴욕시 출생, 퓰리처 상을 받은 칼럼니스트. 폭스뉴스에 정기적으로 출연, 워싱턴 포스트에 매주 칼럼을 쓰고 있음.

 캐나다에서 자라서 정치학(Political Science)과 경제학 전공, 후에 하버드에서 의학 공부.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지미 카터 정부에서 정신과 연구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되면서 이 분야에 들어서게 됨. 잡지에 기고하고, 카터 정부의 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을 함.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후 저널리스트 경력 시작, New Repulic이라는 잡지의 필자이자 편집자로 합류함.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는 주간 칼럼이 198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함. TIME에는 83년부터 기고를 시작함.

 2006년 Financial Times가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논평가로 선정함.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미국 역할 주창.

 레이건 시절, TIME에 기고한 글에서 반 공산국가 반군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주장해서 보수의 환영을 받고 결국 레이건 정책으로 채택, 이 주장은 당시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레이건 독트린'이라 불리게 됨. 그는 민주주의국가의 자유를 지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3세계 국가에 자유를 퍼트려야 한다는 주장 펼침.

 냉전 후 다극체제가 될 거란 의견이 지배적일 때 그는 미국 일극 체제가 될 것이라 예견했으며 또한 이것이 길어야 30-40년 갈 것이라 예견함. 네오콘과는 의견이 달라서 외국의 사태에 개입하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 미국의 이익이 걸리지 않은 일들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주장.(생각보다 선구적인 안목이 있는 듯)

 보수, 네오콘으로 평가받는 편이나 국내 이슈에선 비교적 진보적. 합법적인 낙태, 사형 반대함. 줄기세포 연구 지지. 자연 보존을 위한 고율의 에너지 세금 지지.(한국과 미국에서 '진보적인 주장'으로 꼽히는 것들만 비교해봐도 이렇게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환경과 소수자인권 같은 부분처럼 공통된 것들도 많지만, 위에 말한 낙태, 사형제, 줄기세포, 환경보존, 세금 등이 미국 진보/보수의 쟁점인 반면, 한국에서는 북한문제, 재벌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부시 정부에서 생명윤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했으며 반면 생체 실험, 클론, 안락사 등에는 반대함.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다른 보수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지만 보수 중에서는 비교적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편. 고문에 대해선 임박한 위험이 있거나 고문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는 허용할 수 있다고 함.

 네오콘의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와는 서로 비판하는 안 좋은 사이.

 진보적인 언론비평그룹인 FAIR라는 조직에서는 그가 부시의 2기 임기 취임 연설에 대해 과하게 후한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폭스 뉴스에서 그는 부시를 JFK에 비유했는데, FAIR에서는 그 연설을 K가 썼다는 의혹 제기. 실제로 2기 취임 전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연설문이 아닌 차후 중동정책에 대한 자문을 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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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이 위키피디아에서 나름 요약한 K에 대한 소개이다. TIME 잡지에 그의 글이 보이지 않아 궁금해서 알아본 건데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다. 레이건 정부, 미국 보수세력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사람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적인 필자로 꼽힐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위키피디아를 검색해서 K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가 왜 TIME에 대한 기고를 중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K가 TIME을 위해 기고를 멈추다' 같은 단어들을 활용해서 다시 구글을 검색해보니 쉽게 관련된 글을 찾을 수 있었다.(관련글 원본 클릭)

 TIME에 글을 기고하던 유명 보수 언론인은 K 말고도 Kristol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 모두 작년(2007년)말에 TIME과의 외부 필자 계약을 연장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성이 K로 시작하는 이 두 사람 모두, 그리고 TIME의 대변인은 자세한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보수성향의 필자로 National Review라는 잡지에서 활동하는 Ramesh Ponnuru라는 사람을  필자로 섭외중이라고 한다.

 관련글을 읽으면서 글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거기에 달린 리플들도 꽤 흥미로웠다. 관련글이 실린 사이트 자체를 둘러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이 주로 방문하는 사이트인 듯 하다. 말하자면 조선일보의 기사 댓글을 보는 듯 했다. 대체로 TIME이 좌파적이고 진보 성향으로 너무 편향되었다는 리플이 많았고, 위에 거론한 Joe Klein이라는 진보 성향 필자에 대해서는 Joke Line이라는 별명으로 조롱하는 글도 있었다.

 리플에서 종종 보인 것처럼 TIME이 과연 그렇게 진보적인 매체인가 하면, 본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Fox news(미국의 TV판 조선일보)가 괜찮은 언론이라고 믿는 미국 우익 네티즌들에게는 TIME은 한국 보수가 말하는 '좌파 꼴통'언론으로 찍혔지만 말이다. (리플들을 보니 미국에서도 리플의 공격성은 한국과 비교해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 듯 하다.)

 리플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생각나는대로 나열하면 대충 이랬다. (어떤 것들은 편의상 2-3개를 합친 것도 있고 의역을 한 것들도 많으니 '조작'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길^^;)

 "TIME 같은 쓰레기를 아직도 읽나? 난 읽은지 몇 년도 넘었다. 병원 가서 대기실에서 읽을 게 없을 때나 읽는다. 이번 일로 얼마 남지 않은 공화당 성향 독자들마저 떨어져나가겠구만."

 "병원 대기실에서 할게 없으면 뜨개질이나 하지 그래? :)"

 "요샌 (K들을 대신할 보수 필자로 거론된 Ramesh를 가리키는 듯. 이름이 인도계 이름이다.) 인도, 파키스탄, 중국... 이런 데서 온 애들이 보수적인 얼굴마담 자리마저 차지해버렸다. 북유럽계의 백인, 진짜 미국인들의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 얘들은 추수감사절에 칠면조요리도 먹지 않아!" (가장 어이없고 웃긴 리플로 꼽고 싶다.)

 "TIME이 진보적이라고? 푸하하 너 정말 재밌다."

 "Google같은 진보적 기업도 있지만 핼리버튼, 블랙워터, 뉴스코프, 엑슨모빌 등 파시스트 회사들은 수도 없이 많다. TIME이 좌로 이동했다기보다는 우에서 중간으로 이동했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이 인간들은 '훈족 왕 아틸라(Attilla the Hun)'보다 왼쪽에 있으면 전부다 극렬 좌파라고 까댈 놈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무식한 거야." (서양인들은 '훈족'은 유럽을 멸망시킬 뻔한 야만인들로 묘사하는데, 그들은 중세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호전적인 종족이다.)"

 "TIME 얘들은 푸틴 같은 빨갱이(commie)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놈들이야. (이라크의 미군 사령관인) 패트레이어스 장군을 놔두고 말이야. 이 정도면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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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이 길었는데 아무튼, 결론은 그랬다. K는 작년 12월쯤 TIME과의 외부 필자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TIME에서 정기적으로 그의 글이 실릴 일은 없어 보인다. 일단은 내가 좋아하진 않았지만 익숙했던 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궁금증이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소되었다. 그리고 덤으로, 미국의 네티즌들도 한국처럼 정치적 견해에 따라 격한 글들을 주고 받는다는 것, 특히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같은 매체를 놓고도 진보와 보수의 평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많이 다르고 진보와 보수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쟁점(달리 말하면 주된 싸움 거리)도 차이가 많지만 비슷한 점도 꽤 많다. 영화 속에서 보는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미국이란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다. 물론 거기에는 외국에 무관심하고 지구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웃에 대해 무식할 정도로 아는 것이 없는 미국인들의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TIME인지 어딘가에서 '미국인들은 다른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Americans are notorious for being monolingual.) 말이 통하지 않으면 노력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여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라고 소리친다.'는 글을 본 것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여러 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multi-lingual이라고 하고 2개의 언어를 할 줄 알면 bilingual이라고 하고, 1개의 언어를 할 줄 알면 American이라고 한다.')

 여러 면에서 너무나 다른 두 나라지만 진보와 보수의 싸우는 모양새는 참 너무나도 비슷하다. 쟁점이 되는 이슈는 다르지만 보수가 쓰는 언어와 전략, 진보가 쓰는 언어와 전략, 논리가 비슷한 듯 하다. 

 K의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다 알게 된 것들을 보며 느낀 것들이 있다. 2008년 들어 우리나라가 급격히 오른쪽, 더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보혁갈등과 전투적인 리플들의 향연을 접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꼭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란 점을 포함해서 몇 가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디에서나 이런 형태의 갈등은 만연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톱만큼의 진보를 이루는 것도 아주 힘겹다는 사실 말이다. 정말 쉬운 길은 없다. 역사도 종종 이를 증명해왔고, 2008년 대한민국에서도 우리는 현장감있게 이 진리를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진보는 느리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고, 톱니바퀴 하나가 부러지면 순식간에 여러 칸을 후퇴해버리는 현실을 말이다.

 진보가 한 걸음 밀릴 때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가는 걸 보면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마냥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비슷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참고할 만한 여유 정도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