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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남자

thezine 2009. 12. 13. 23:33
  산책 겸 운동을 한다고 오밤 중에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는 길만 다니자니 지루하고 늦은 시간에 골목길을 다니자니 알지도 못하는 길을 밤 늦게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메고 다닐 수도 없다.

 그래도 동네 근처에 새로운 길들을 몇 개 새로 개척했다. 낮이었으면 더 골목골목 돌아다녔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다. 아직 길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남자가) 지나가는 게 신경쓰였을 동네 부녀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속도를 올려 부지런히 지나쳐 걷느라 추운 날씨에 땀도 살짝 났다.



 동네(라고 하니 아주 가까운 곳들 같지만 버스 3-4코스 정도 거리의 곳들 포함)에 내가 알지 못했던 음식점이나 골뱅이집(이곳에도 생각외로 골뱅이집이 여럿 있다.)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걷는데, 문득 무수한 집들의 창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에 밖에 있자면 몸만 시린 게 아니고 마음까지 시려온다. 오래 전 중학생 시절인가, 집에 가야 하는데 열쇠는 없고 x은 마렵고 딱히 갈만한 곳도 없을 때의 서러운 기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x이 마렵지 않았으면 덜 서러웠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종종 걸음으로 산책을 하며 눈에 들어오는 집들은 종류가 다양하다. 작은 고시원, 보통 크기의 빌라, 단독주택, 마포-공덕에 무수한 아파트들, 고급 대형 아파트까지 종류가 아주 많다. 크기도, 종류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다양하겠지만, 불켜진 창문 속 그 방들은 어디나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방 안이 따뜻한 건 온돌 속을 돌아다니는 뜨거운 물 때문만은 아닐 거다.


 흔히들 책이나 웹사이트나 신문이나 tv나, 라디오, dmb에 상관없이 중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닌 컨텐츠라는 말을 한다. (요즘 화제의 아이폰 역시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덕분에 인기를 끈 거라고 본다.)

 추운 겨울날 저 많은 방들을 채운 건 온돌의 온기 +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란 생각이 문득 든다. 찜질방 저리 가라 할 만큼 바닥이 절절 끓어도 사람 사이의 온기가 없으면 그 온기는 마음 속의 쓸쓸함을 덥혀주지 못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가물면 가문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 비해서, 인간에겐 참 많은 게 필요하다. 공들여 만든 집에서 기름과 가스를 태워 따뜻하게 살면서 그것만으론 부족해서 사람만이 주는 인간적인 정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때론 인간으로서 내 욕심이 과하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