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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타이완 경제

thezine 2010. 8. 22. 16:31





Taipei의 랜드마크 101빌딩

 타이완에 대해서는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역사에 대해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타이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 등등. 6월인가, 오랜만에, 이직 후로는 처음으로 타이완 출장을 다녀왔었다. (원래는 그 이후로도 매달 방문할 계획이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담당 업무가 좀 바뀌어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좀 뻘쭘.)

 타이완의 주요 산업체는 핸드폰(HTC의 스마트폰?!), 반도체, LCD 디스플레이... 왠지 우리나라랑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인구 규모도 2배가 넘고 자동차, 중화학, 철강, 조선 등 더 다양하긴 하지만, 아무튼 전자산업에 한정해서 보면 주력 분야가 겹치는 느낌. 예전에 대만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사람들 중에 LCD 생산설비를 만드는 한국 기업체 주재원도 있었던 것도 뭔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튼, 인구 2천만명 정도의 타이완 사람들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으니 '타이완 경제가 무기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나 같은 외국인의 눈에 보이는 타이완 경제의 문제점들은 몇 가지 있다.

 중국 경제가 개방화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들이 중국에 뛰어들었는데, 그 중에 가장 덕을 본 나라가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이 아닐까 싶다.(정확한 수치 같은 건 모르겠고 그냥 느낌에;;) 중국에 가까이 있고, 문화적으로도 가깝고(한자 문화권), 화교 인구도 꽤 많고 말이다.

 상해에 놀러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들르는 '신천지'라는 유흥가(?)도 내가 알기론 대만 자본이 동네를 통채로 사들여서 상해 특유의 석고문 양식으로 지어진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쇼핑몰, 카페, 바, 음식점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업이다.


FOXCONN의 노동자


 애플社의 아이폰, 맥북, 아이맥 등의 외주생산업체로 중국 심천 공장에 공장을 운영하다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때문에 노동자들이 연달아 자살해 욕을 바가지로 먹은 바 있는 대만의 팍스콘을 포함해서 상당수의 대만 제조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대거 공장을 옮겼다.



 대만 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경쟁력도 높아지고 돈도 더 많이 벌겠지만, 대만 기업들이 대만을 떠나면서 대만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대만의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임금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낮다. 우리나라에서 고연봉의 기준을 '억대 연봉'이라고 상징적인 선을 정해놓은 것처럼, 대만에서는 10만 대만달러의 월급이 고소득의 상징적인 기준선이다. 월급이 10만 대만 달러이면 약 380만원 정도인데, 물론 한국에서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고소득' 축에는 끼지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그룹사라면 정유, 자동차, 통신, 전자, 기계, 유통 같은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대만의 대표적인 대형 그룹들 중에는 편의점, 패스트푸드 같은 소비산업, 프랜차이즈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가 많고 더운 대만 특유의 '인도를 덮은 건물'과 대만에 가장 흔한 가게인 7-ELEVEN


 참고로 대만의 자영업은 창업자 1인이 자기 자금과 대출금을 합쳐 올인하는 한국식 창업과 다르다. 두세명 이상의 투자자가 돈을 합쳐서 재정적인 투자만 하고 매장의 관리는 그런 소규모 매장 운영만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업체가 대신 관리해준다고 한다.

 이런 대만의 창업 관행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선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하나로 투자를 하는 중상 수준의 자산가들은 이런 식으로 재산을 불려간다는 점, 그런 소규모 매장(ex. 10평 미만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냥 알바생도 아니고 '운영 대행 업체'에 소속된 '파견직원' 신분이라는 점 등등... '파견직원'이라는 형태가 일자리 중에서 가장 열악하고 불합리한 조건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대만에는 식당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도 자영업 비율이 높다 어떻다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대만은 더 심하다. 그래도 장사가 되는 이유는 대만 사람들이 매식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의 특징인 것 같은데, 평소에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서는 요리를 별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오는 특징들이, 생활비 중 식비 비중이 높고, 대신 식대는 싼 편이고, 식당들은 테이블 회전수가 높다. 테이블 회전수가 높으니까 식대를 높지 않게 해도 유지가 되고, 그러니까 또 사람들은 부담없이 매식을 하고.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식이다.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이 맞벌이를 하고, 맞벌이해서 번 돈으로 꽤 비싼 아파트 임대료를 내고, 나머지 돈으로는 밥을 사먹고 생활비에 쓴다. 저축도 하긴 하겠지만 저축액의 비율은 높지 않은 것 같다. 돈놀이 좋아하는 중국이라 그런지, 부동산 투기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해서 집값은 상당히 비싼 편인 것 같다. 결국 맞벌이를 해야 그냥 먹고 살 만한, 그렇게 빡빡하지도 않고, 여유가 생기지도 않고, 그런 게 대만 사람들의 생활이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게 대만만의 특징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타이완'이라 쓰던 게 대만으로 바뀜... 고치기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고, 그렇다고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쪼들리진 않게 그냥 저냥 사는 것 같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제는 무기력하고 상하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




 대만에 오래 있던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업무상 왔다갔다 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느낀 점이다. 얼마 후면 대만 사람과 결혼한 직장 동료가 생길 예정이라, 그땐 아마 더 자세한 것도 물어볼 기회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