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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피엔스

thezine 2021. 11. 23. 00:25

무슨 책인지 모르고 시작해서 재밌게(읽었다는 말이 무색하고) 읽으면서도, 내 생각이 많이 바뀌게(했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만든 책(인데 엄청 오래 걸려서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인간을 사피엔스라는 종류로, 정확하게는 위에 사진에 나온 표현대로, 사피엔스라는 '속'으로 명확히 구분한 후, 이 사피엔스라는 '속'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고 미래의 고민거리까지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우선 기초적인 잘못된 지식인데 이번에 알게 된 것은 교과서나 어린이 과학잡지에서 접했던 '네안데르탈'인 같은 것이 인류의 연장선상에 있는 '조상'격이 아니라,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 관계에 있던 영장류로, 말하자면 현 인류의 직계 조상보다는 가문이 끊긴 방계에 해당한다는 점.)

사피엔스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에 대한 묘사 부분은 저자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 같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사족보행을 위주로 하던 동물의 세계에서 이족보행을 하며, 더 높이서 더 멀리 보면서, 자유로워진 두 팔로는 도구를 다루게 된 강력한 사피엔스의 등장! 그 와중에도 먼 친척과도 같은 네안데르탈인이 오히려 신체적인 능력은 더 뛰어났지만, 사피엔스에게는 조직을 이루어 협동을 하는 또 다른 강력한 능력이 있었다. 순서나 시기나 역사적인/과학적인 증거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많겠지만, 지금의 사피엔스를 만든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을 처음 펼친 후로 한참 동안 나누어서 읽은 탓에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고, 읽다가 잠들어서 다시 또 읽고 하느라 몇 번씩 읽은 곳도 많다. 한 번은 다시 처음부터 속독으로 읽어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드디어 책을 덮은(e book이라서...말이 그렇다는 것임) 소감은 남겨야겠다.


독후감을 쓴다는 게 요약문과 감상문을 같이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용도 길거니와, 전술한 이유로 내용 중에 잊어버린 부분도 많아서 감상문으로 바로 넘어가야겠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해석하고 이해한 사피엔스의 역사는 마치 인간이 다양한 시기에 지구를 살다가 멸종한 공룡의 역사를 서술하듯이, 특정 그룹의 동물의 역사를 3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역사이다.

그들이 어떻게 지구에 등장하고,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고, 가는 곳마다 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종교, 국가를 이루고 이후 최근들어 급속한 속도로 과학기술을 고도화시켰는지에 대해, 때론 과학적인 증거들과, 그럴듯한 추론을 덧붙여 (마치 본인은 사피엔스가 아닌 제3의 관찰자가 된 듯이)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인류가 이미 손에 넣은 기술과, 인류가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경향과 천성을 고려할 때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예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진화론의 과학적인 증거들을 깔고 글을 썼지만 과학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사피엔스의 동물로서의 진화, 그리고 종교와 문화의 발명 과정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개연성이 높아서 인류 역사가 아구가 들어맞는 느낌,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듣고보니 내 생각도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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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 고른 다른 책들 간에 묘한 교집합을 발견한다고 하는데, 마침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읽고 있는 다른 책에서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객관화하고 과학적 추론을 바탕으로 꽤 그럴듯한 상상을 펼치는 내용을 읽고 있다.("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 그리고 최근 몇 년 내내 죽음과 인생에 대한 에세이를 찾아 읽고 있고, 또 노화와 노화 방지에 대해 읽었던 책까지, 모두 인간의 시작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제각각 관계 없이 고른 책들이 한 가지 큰 주제의 각기 다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혹은 인간의, 혹은 나와 주변 사람들과 같은 사람의 인생의 시작과 끝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이 끝나갈 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혹은 꼭 내가 어떻게 한다기보다도 때가 되면 그 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것이 나의 질문이고, 앞서 말한 책들은 그 이야기의 답...까진 아니고 답을 만들 재료를 이것저것 하나씩 모아주는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잘 먹으라고 설명할 때 레고 블럭을 모으는 것에 비유를 하곤 했다. 그 레고 블럭을 잘 쌓는 것은 잘 자고 잘 운동하고 잘 노는 것. 레고 블럭을 계속 채워줘야(잘 먹어야), 그리고 그 블럭을 잘 쌓아야(일찍 자고 잘 놀자)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고, 둘 중에 하나만 있어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사피엔스, 인간 없는 세상,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명 에세이 몇 권,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답을 찾는 것이 내가 짓고 싶은 집인데, 블럭은 하나둘 모이긴 하는데 설명서가 없구만.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것 치곤 아주 천천히 때론 오랫동안 손에서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