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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thezine 2021. 12. 13. 23:30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나도 흥미로운 기사, 에세이를 읽고 거기에서 언급된 인물, 책, 이야기를 찾아서 읽곤 했었다. 사피엔스나 총균쇠 같은 책들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인류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그 삶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도 사색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문학도와 의사의 길 사이에서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했고, 힘겨운 과정의 끝에 다다를 무렵에 폐암 선고를 받고 오래지 않아 명을 달리한 Paul Kalanithi라는 의사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쓴 글이다. 그리고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Nina Riggs라는 작가가 전이성 유방암에 걸린 후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며 쓴 책이다. 둘 다 저자가 치명적인 질병을 마주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적어내려간 책이다. 사피엔스 같은 책과는 달리 아주 직접적으로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죽음을 주제로 썼다.

'숨결..'은 저자가 의사로서 가진 의술에 대한 지식, 직업 생활에서 수다하게 접한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좀 더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고, 이 삶을..'은 저자가 원래 작가여서 그런지 좀 더 유머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후기를 쓰려다 오래 전 읽은 '이 삶을..'이 생각나서 내 블로그를 찾아보니 제목과 표지 사진만 올려두고 미완성/미공개 상태로 올려놓고 있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니 책의 내용 대부분은 이미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고... ㅠㅠ)

그리고 슬픈 이야기지만, 두 책 모두 저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치고 또 고치며 퇴고를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책은 말 그대로 '쓰다 만' 느낌으로 끝난다. 어쩌면 본인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 직접 인생의 끝을 이야기하는 책이기에, 그런 완벽하지 못한 마무리가 더 자연스럽고, 혹은 인생의 마무리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래 전 외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물론이고, 가까운 형제가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났을 때조차도, 원초적인 이별의 감정은 북받치게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죽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꼭 이렇게 준비 없이 아침을 맞아 허둥대다 무언가 빠트린 채로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으로 길을 떠나는 것이어야 하는지, 하는 고민들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이 두 책 외에도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회고와 사색의 흔적을 글로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이 두 저자는 각각 원래 작가였거나, 혹은 문학도를 꿈꾸었던 사람이기에 아마도 고민 없이 인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의 큰 부분을 들여서 글을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의 정확한 나이와 타계한 연도까진 찾아보지 않았지만 각각 5~10년 정도 전에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나이는 나와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저자의 생각과 가치, 사고 방식, 취향 같은 것들이 대화를 나누듯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고, 김영하 작가가 에세이에서 그토록 재삼재사 강조하고 애정을 표시한 글의 가치이자 힘일 것이다. 심지어 죽음을 앞둔 작가가 쓴 글이라는 것은 여러 글 중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을, VR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아주 잘 찍은 2D 사진처럼 선명하고 자세하게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두 책은 그 두 사람의 인생을 담고 남겨놓은 작품이 된다.



어떤 SF소설인지, 아니면 공각기동대 같은 애니메이션일 수도 있는 작품에서, 사람의 몸이 죽은 뒤에도 뇌만 살아남아 정신이 유령처럼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부정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스러운 이야기와는 달리, 책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한다면, 그 사람의 글 쓰는 재주야 어쨌든 개개인의 인생이 담긴 의미있는 글이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 남기기 과정이 없이, 마치 읽고나서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리는 책처럼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우리는 재미있는 책 한권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역사의 도서관에 있을 수 있었던 책이 한 권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컨텐츠가 과도하게 넘쳐난다고 하지만, 우리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컨텐츠들을 대충 담아놓고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