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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thezine 2024. 3. 2. 00:53

앞서 올린 [서평]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tistory.com) 책을 읽으니, 이 저자는 인용한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 중에 수잔 손택과 나쓰메 소세키가 있었다. 책을 참 많이 읽는 사람인가보다 싶었다. 특정 상황에서 떠오르는 누군가의 연설 문구, 소설 구절, 노래 가사, 영화 장면 같은 것들이 많을수록 감정과 생각의 차원이 넓고 깊어진다.
 
 그런데 읽다 보니 유독, 수잔 손택과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는 부분이 많은 듯 해서, 이번엔 나쓰메 소세키를 키워드로 책을 찾아봤다. 인문학도였다면 일찌감치 대학 시절에 이미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어보았을 것 같다. 수잔 손택은 사회운동가로, 평론가로, 소설가로 유명했던 사람이고, 나쓰메 소세키는(타이핑을 거듭할수록 이 이름은 타이핑하기 번거로운 이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저자 강상중의 설명을 읽으니,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일본 지폐 도안의 주인공이었을 정도의 대문호라고 한다.
 
 수잔 손택도 나중에는 찾아보게 될 것 같은데, 우선 나쓰메 소세키 책을 찾아보기로 했고, 그 중에 이 책과 다른 책을(단편선)을 골랐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 책만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의도와는 다르게, 원래는 강상중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 나쓰메 소세키로 확장하려던 계획이, 강상중 작가의 다른 책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 때문에 골랐고, 작가의 개인적인 해석을 곁들인 평론 비슷한 에세이라서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본어에 대해서는, 한국인에게 초중급은 쉽고, 고급은 어려운 언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가까운 나라이고 실력이 있는 번역가가 많은 덕분인지, 강상중 작가가 쓴 두 책 모두 번역문이 좋았다. (강상중 작가는 재일교포이고, 원저는 일본어로 썼다.) 일본어 번역문이라는 느낌은 확연히 들지만, 의역을 하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일본식 표현들이라 흔히 말하는 어색한 번역 문체와는 다르다. 일본 만화나 소설에서 접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번역 퀄리티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표현 자체가 무겁고, 그래서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쉽다. 
 
 '나쁠 수 없다' (이중부정), '~인 것 같다. ~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이 길어지는 것), '~했던 것이지요'(문장이 길어짐) 같은 문체들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접속사와 쉼표로 여러 줄 이어지는 문장이 특히 읽기 힘들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인 것 같습니다' 같은 표현은 분명하다는 것인지, 그럴 것 같다는 것인지, 확신과 추측의 반대 어감의 단어를 모두 쓰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흔한 말투다. 어투 자체는, 아마도 일본도 한국과도 비슷하게 '겸손해야 하는 문체' 문제가 있는 듯 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책은 반말로 적혀있다. 이렇게 존대말로 적힌 책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비상 상황에서 비행기 승무원이나 소방수가 일부러 반말로 지시 사항을 전달해야 현장에서 명확히 전달이 된다고 한다. 반말에는 단순히 글자수가 짧은 것 이상의 간명함이 있다.
 
 번역과 말투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은 보통 팔리는 책들보다 크기가 작고 얇다. 갖고 다니기에 한결 가볍다. 그렇다고 얼마 안되는 분량을 억지로 책 한권으로 만들어서 팔려고 부피를 뻥튀기한 책도 아니다. 독자들과 출판사가 모두 책 부피 줄이기에 합의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글자는 좀 더 꽉 채우면, 얇게 가볍게 가능?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담담히 풀어나가는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부피도 작고, 더구나 작가가 다른 작가의 관점을 풀어나가는 책이다. 새삼,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런 종류의 책이구나 느꼈다. 나보다 더 많이 읽고 생각한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물이다. 매 페이지마다는 아니어도, 가끔 이렇게 독서를 잠시 멈추고 곱씹고 즐기게 만드는 문장이 종종 나왔으면 좋겠다.
 


요즘은 읽다가 간단히 메모를 해보고 있다
재미있는 구절이 있으면 이렇게 사진 찍어서 메모를 남긴다. 그냥 사진만 찍어놓으면 나중에 왜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다만 원저자의 말투, 일본어의 특징(이라고 추측하는 것)으로 인해 읽기에 아주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 하지만 이 책을 덮은 후에 다시 강상중 작가의 책을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도 않는데 당분간 한 작가의 책만 당분간 읽게 되는구나. (내가 직접 키워드로 찾은 책 외에 추천으로 표시되는 책들은, 찾던 책을 뒤로 하고 새로 눈 앞에 나타난 책에 관심을 뺏길 정도로 교묘하고 기발하진 않다. 도서앱들은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듬을 더 연구해야 할듯)

 

 정작 책 내용에 대해선 적지 않았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 몇 편에 대해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편하고 진솔한 말투여서 그렇지, 딱딱한 문학 작품 해석, 평론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읽었던 이 저자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은, 그동안 일본 역사에 반복된 국가, 제도권, 기득권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이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런 책을 쓴 저자가 왜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는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나쓰메 소세키는 국가, 기득권, 거대 담론의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이것을 나름 유쾌하고 기발하게 표현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비판하는 일은 때론 비판하는 사람의 정서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무언가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즐거움 백신'이 필요하다. 화나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려면 결국 아이러니와 비꼬기, 냉소가 적절히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질의 작가가 일본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대문호로, 때론 국수주의적인 작가로 오해한 채로 인용되기도 하는 듯 하다. 기발하고 유쾌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글의 근저에는 우울함이나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으니, 그 시작부터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상황 자체도 나쓰메 소세키가 '웃퍼'할 만한 상황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