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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대만의 가을] 타이동을 떠나 타이난으로 가는 길

thezine 2007. 11. 1. 14:07
 타이난은 대만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다. 이번 글은 타이동을 떠나서 마지막 목적지인 타이난으로 가던 날 아침의 기록이다.

 전날 머물렀던 '진안뤼셔(금안여사金安旅社)'라는 정감 넘치는 낡은 여관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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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한 방,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여니 밝은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다. 빠트린 게 없나 둘러본다. 낡고 허름한 작은 방이지만 나에게 하룻밤 달콤한 휴식을 제공했던 곳, 다시 돌아오지 못할 생각을 하면 늘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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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체공학적으로 가장 샤워하기 불편한 구조로 만들어졌던 욕조. 저 작은 욕조에 그나마 바닥마저 둥그렇게 경사가 져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딱 좋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변기는 물살이 세지 않아서 늘 미리 바가지에 물을 채워놨다가 물을 내리면서 동시에 바가지의 물을 부었다. 이렇게 낡아도 관리는 깔끔하게 하니까 지내기엔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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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 전 진안뤼셔의 입구를 찍었다. 11월 1일 오늘도 저 유리문 안에는 그 친절한 할머니와 소수민족계 아가씨가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나른한 채로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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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즈번' 온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곳이다.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면 앞에 두 글자를 '딩동'으로 읽는다는 걸 알 것이다. '딩'이 들어가는 지명의 한 글자, 그리고 타이동의 '동'을 따서 만든 글자일텐데 그래도 왠지 귀엽고 웃겼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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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한 딩동객운 대기실 모습.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거의 노인 뿐이다. 한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의식하시네.

 그래도 나름 '딩동객운'이라는 운수회사의 대기실이지만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대기실의 전부다. 대도시가 좋다고 대도시에 살고 있지만 때론 너무 정이 가는 이 한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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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말 걸 때만 빼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듯한 아저씨. 창틈으로 팔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어제 다녀온 '즈번'에 가는 버스를 타는 이곳에 왜 다시 왔을까?!!
 
 '즈번'은 타이난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기차역이다. 숙소에서 타이동 기차역에 가려고 해도 10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택시로 타이동 기차역까지 가느니, 더 싸게 버스를 타고 '즈번' 기차역을 가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날 '즈번'에서 '타이난'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를 알아뒀었다. 하지만 변동이 생길지 몰라 예매는 하지 않았다.

 일정이 무지 느긋하면 모르지만, 난 매일 이동을 해야 하니 늘 일정에 대한 고려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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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간대에 가는 차는 미니 버스였다. 차 안은 얼마나 더울꼬. 이 뜨거운 여름 낮의 태양을 받고 있던 낡은 미니 버스. 하지만 에어컨을 미리 틀어둬서 그렇게 덥진 않았다. 대신 좌우로 무지 흔들리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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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출발해서 '구' 타이동 기차역 앞을 지났다. 여행책자에는 옛날 역도 기차역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차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열차도 서지 않는다. 새 기차역은 시내에서 먼 곳에 있었다.
 
 누가 왜 그 먼 데로 기차역을 옮겨놓았을까? 어쩌면 지역 실세가 땅을 산 뒤에 그 동네로 기차역을 옮기는 '한국식 개발'과 유사한 이유는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해봤다.

 우리나라도 'X씨 가문'이 그룹 임원을 다 해먹고 'X씨 가문'이 무슨 고등학교 이사장, 교사, 교장 다 해먹는 것처럼 대만도 잘 먹고 잘 사는 가문들이 몇 있다. 그 중 일부는 일제시대에 친일로 일군 재산으로 아직도 호의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일부는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사람들이다. 어쩜 그리 우리나라랑 비슷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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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골 마을에도 '로또' 광고가 걸려있었다. '1등은 1억 보장(약 32억원)', '다음은 바로 너' 이런 내용이 쓰여있다. '다음은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타이완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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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전날 버스를 잘못 내려서 얼결에 들렀던 '즈번' 기차역이다. 중간보다 약간 오른쪽에 시커멓게 그늘이 진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가 어제 나를 택시에 태워 온천에 데려다 줬었다. 전날은 잠결에 잘못 내렸지만 이 날은 계획대로 '즈번'역에 온 거라 한층 마음에 여유가 있다.

 '즈번' 역을 나서면 주변은 황량하다. 딱 중간에 보이는 건물도 실제론 직선도로 몇 킬로미터 앞에 있는 건물이다. 청명한 하늘과 황량한 대지, 저 멀리 보이는 아득한 산자락,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는 곳. 그 느낌은 서울에 사는 우리들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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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번(지본知本)'역의 내부. 대만의 시골 기차역의 분위기는 다 이렇다. 나무와 풀이 울창하고 조용하다. 공기는 나른하고 온도는 뜨겁지만 바람은 솔솔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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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번'역에 매점이 마침 때맞춰 문을 열었다. 보리차 음료수인 것 같아서 샀는데 보리차가 맞다. 하지만 맛은 '하x보리'랑 다르다. 설탕 탄 보리차 마셔본 사람? 딱 그 맛이다. 맛이 어떨 것 같은가? 난 1/3쯤 마시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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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번'역사 건물의 뒷모습. 저 나무 이름이 뭔지 궁금했다. 머털도사 머릿결처럼 덥수룩하고, 바람이 불면 물결치는 모습이 귀엽다. 손으로 쓰다듬어주면 나무가 씩 웃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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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한 여름(9월 말이었지만), 길게 뻗은 기차길 저편으로 작은 점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도 썼지만 여행하다 기차를 타면 마음이 편해진다. 기차가 15시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치면 적어도 그때까진 다른 고민할 필요 없이 느긋하게 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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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하루치'씩 한 번에 올렸는데 한 번에 30장이 넘게 올리다보니 좀 산만하기도 하고 올리고 싶은 사진도 양을 줄이나르 빼게 되서 이번엔 하루치를 몇 번에 눠서 올린다.

 다음 여행기에서는 '타이난'에 도착한 모습부터 시작할 예정. 기차를 타고 가며 찍은 사진은 없다. 거의 책을 읽거나 자면서 갔기 때문.. :)


 여행기를 올리다보니 다시 그때 그 느낌에 젖어든다. 사골로 곰탕을 끓일 때 한 번만 끓이고 버리는 사람은 없다. 여행도 다녀온 후 사진을 보며 느낌을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한 듯.

 대만 여행을 끝으로 여행 좀 자제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다. 대만 또 가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