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여행-가출일기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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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2터미널 가는 길에 도로변에 황무지가 나오면 볼 수 있는... 바위? 산도 아니고 언덕도 아니고 그나마 바위라는 표현이 가장 가깝겠다. 2터미널이 생기기 전에도 다른 곳에 가다가 이곳을 지나친 적이 있다. 그땐 이 길에 통행이 적었던 터라 차를 세우고 이 바위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이 확실한지는... 잃어버린 예전 핸드폰에 증거가 남아있을 텐데 아마 중국 어딘가로 팔려가면서 다 지워졌겠지. 췟. 영종대교를 넘어 인천공항에 넘어올 때도 중간에 유난히 불쑥 솟아있는 섬이 하나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 쌓여 있어서 섬이라 하기도 그렇고, 모양이 독특하다. 이런 모양의 풍경에 꽂히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유명한 정자, 팔각정 중에는 그렇게 험하고 불쑥 솟아..
제주 시내를 다니다 보면 눈에 띄어서 한 번씩은 보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 눈에 띄는 것에 비해서 방문객은 많지 않은 곳이다. 제주목관아. 목이라는 행정단위로 제주라는 지역의 관아라는 뜻 같다. 조선시대 제주도지사 격인 제주목사가 근무했던, 지금으로 치면 제주도청 같은 곳.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역대 목사들의 기념비석들도 여기 모아놓았는데, 어쩌면 그 중에 일부는 본인의 공덕을 기리고자 스스로 '휼민비'라 이름 붙인 것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은 제주도에 그리 많지 않은 고건축물이건만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안에서 볼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저것 컨텐츠를 채우느라 쥐어짠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들고, 여기저기 전시물마다 스피커를 설치해서 튼 음악은 전통음악도 아니고 드라마 OST같다..
일본을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래 저래 몇 곳을 몇 차례 다녀봤는데, 얼마 전 일본 출장은 그 전과 달랐다. 예전엔 느끼지 못한 일본의 엄숙주의를 유독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 마지막 날 새벽에 길을 나서는 2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일본식 진지함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많았다. 출장 업무 자체도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가 단점으로 작용했을 때의 모습과 관계가 있었다. (한국도 일본을 제외하면 '이 정도 얘기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어야지?' 하는 'High context -간접적으로 문맥 상의 뉘앙스를 파악해야 하는- 문화로는 손 꼽힌다고 하던데... 직설적으로 손꼽히는 독일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 좀 답답할 수도 있겠다, 사무실 옆에 아우디폭스바겐 한국 본사가 있는데 그 사람들 생..
오래 전 학생 시절, 연애 감정을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오는 곳, 위안과 휴식을 얻는 곳. 베이스캠프는 다시 돌아올 곳이기 때문에 평소 소홀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오래 머물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소중히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저 방은 이도 저도 아닌 대기소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조명을 다 켜도 환해지지 않던 방, 그보다 더 어두운 욕실, 카페트 틈 촘촘히 먼지가 가득했던 곳. 감옥 같기도 했던 생활... 늘상 잠시 후의 일정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마다, 특히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이 공간은 나에게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곤 한다. 여행..
19세기 후반, 베를린에서 일본까지 17개월 동안 말을 달리며 대륙과 국가들을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았다는 사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태블릿PC,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에 WIFI EGG를 지참하는 요즘의 여행과는 형식 면에서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말에는 약간의 옷과 신분증과 돈, 일기장과 필기구가 전부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곧바로 페북에 올리고 1-2분만 지나도 좋아요 개수를 확인할 수 있는 여행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렇게 여행하지 말라는 법은 없긴 하다. 오래 전에 여행기를 읽으면서 문득, 이제 미지의 세계는 없어진 것 같아 아쉬웠던 적이 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한 중간에도 한 때는 사람이 살았다고 하고, 이제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받는 곳에서 언제는 여행객이 물고기를 잡고 취..
동남아시아의 비가 많은 나라에 가면 비가 자주 많이 오는 곳 다운 건물의 특징들이 있다. 처마가 길거나, 지붕 덮힌 실외 통로, 배수가 잘 되는 재료, 탁 트인 베란다가 흔하다던가. 바닥 물청소 후 바닥 말리는 송풍기도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비 오는 소리나, 처마에서 흐르는 물, 주차장에 고인 물... 에어컨 바람 선선한 실내에서 비 구경 하니 좋다. 맛 좋은 커피가 없어서 아쉽고,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 귓가를 때려대는 인도 중국 짬뽕스러운 국적불명의 노래만 끄면 딱이겠구만.
글을 쓰려니 English patient 영화가 생각난다. 영국인이 많은 듯. 개개인의 삶의 질은 높지 않은 느낌. 가기 전부터 돌아온 후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걱정거리들. 세상에 걱정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없지. 아침이어도 춥지 않고 샤워기에선 열기에 데워진 물이 나오고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고. 수영 중에는 아무 생각도 안든다. 물 위에 다 내려놓고 싶네.
혼자 하는 여행을 특별히 선호하진 않지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니) 혼자라도 가야 할 때가 있다. 1) 같이 갈 만한 사람이, 2)마침 그 여행지를 좋아하고, 3) 마침 그 시기에 시간이 나야 가능하니까. 매년 돌아오는 회사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준비하면서, 가볼 곳들, 먹고 싶은 음식, 동선을 그려보고, 시간을 맞춰보고, 여기에서 하고 싶은 것, 저기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일하는 틈틈이 채워넣어보았다. 회사에서 바쁜 와중에, '어차피 할 거니까', 하면서 시간을 내서 한 일. 그런데 오늘, 주말 오후 간만에 여유를 느끼며 누워있는데, 어제 여행 일정을 짜던 일이 생각나고, 문득, '아 그 시간이 즐거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여행 자체로 즐겁기도 하지만, 여행 준비도 못지 않게 즐거운 일이..
7080도 아니고 백년전쯤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스럽던 시절에 난민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지금 7백만이 넘지만 당시 백만이던 인구가 두배가 넘게 몰렸다니 얼마나 난장판이었을지. (사실 내 생각엔 홍콩은 현대적인 정부가 생긴지 수십 년 된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 난장판에 가깝다. 잘 돌아가는 난장판이랄까...) 홍콩 역사박물관은 면적이 아주 넓진 않지만 중국어와 영어만 적혀있고 게다가 전시물에 붙은 안내문구는 왜 그리도 작고 조명은 글자가 안 보이게 해놨는지... 암튼 그래서 4시간을 꽉 채워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제 홍콩 역사는 빠삭한 기분? 전시물 중 옛날 흑백 영상에 잠깐 스쳐가는 저 장면에 바구니 속 두 아이가 내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전에 휘말린 고향을 떠나온 저들에게..
실없는 말장난으로 일단 가볍게... 2010년인가 짧게 다녀왔지만 가봤다고 하기도 뭣한 짧은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갔지만 여전히 여정은 짧기 그지 없었고 관광이 아닌 출장이라 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곳도 가고, 관광객들이 가는 곳은 못 가고... 멀리 건물 위로 살짝 보이는 하얀 모서리를 가리키며 '저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대가리'라는 설명을 듣기도 하고,시드니에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많이 떠들고. 호주는 연간 강수량이 세계적으로도 아주 적은 편이라고 하는데, 가있는 내내 가끔씩 조금씩 비가 왔다. 도착한 아침에는 특히나 차창에 흐를 정도로. 마중나온 분의 차에 타면서 으레 차의 오른쪽 좌석으로 걸어가려는데 그런 경험이 많았는지 곧바로 '왼쪽이예요'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