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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법시스템에 눈을 뜨게 해주는 '불멸의 신성가족' 본문

서평&예술평

한국 사법시스템에 눈을 뜨게 해주는 '불멸의 신성가족'

thezine 2009. 12. 14. 00:23


 이 책은 검찰 출신인 저자가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정보를 정리해서 결과적으로 독자가 한국 사법 체계의 현실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책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한국 사법체계의 구성원이 무엇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검찰과 법원 정도만 꼽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난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거기에 여러 가지가 더 붙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검찰과 법원 외에도 중요한 구성원은 '변호사'다. 물론 검사나 판사가 나중에 변호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사시 인원이 많아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므로 여전히 몇 해 이상 일해온 변호사라면 판검사 출신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해서 법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사건을 수임하고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 변호사 사무소의 직원 등 다양한 사람이 연관되어 '한국 사법 체계'가 돌아가는 불문율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이런 사법 체계의 불문율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극히 피상적이다. 검찰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정치 검찰로서의 악명이나 유신 시절 사법 살인에 협조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 딱히 근거가 없는 지식에 기대어 막연히 검찰과 법원을 잘못 이해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은 바라건대(hopefully) 법원에서 시비를 다투는 일을 겪지 않고 평생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든 피의자가 되든 사법체계에 얽히는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사소한 시비나 돈관계로 그 문턱을 넘나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멀면서도 가까운 곳, 많은 사람들이 그곳과는 관계 없는 듯 살아가지만 언제든지 어떤 일로든지 찾아갈 일이 생길 수 있는 곳이 그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법원과 검찰, 사법 체계에 대해서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다. 우리가 이토록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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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는 성의와 선의로 인터뷰에 임한 다양한 사법 체계 종사자들의 긴 시간의 인터뷰를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책으로 구성했다. 책의 저자가 펜 끝에서 엄격한 비판의 날은 무디어지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혹은 비판 자체에 매몰되어 객관성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 스스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소식을 처음 들었던 그 날의 생생한 기억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판사, 변호사, 검사, 그리고 그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실화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한국 사법계의 내부를 보여준다. 드라마에서는 자동차회사도, 잡지사도, 식당도 하나 같이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유치한 묘사가 넘친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이 책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법계의 현실은 너무나도 진실하고 구체적이어서 시종일관 지루해지는 법이 없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우리는 한국의 사법 체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왠지 검사, 판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면서 사또 앞에 조아리는 평민의 심정이 되는 것은 왜일까, 검사와 판사와 변호사들이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낸 불문율은 무엇이고 그것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양심적인 법관들의 노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재판 상대방에게 검사나 판사가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면 재판 결과가 그에 영향을 받건 안받건 상관없이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데 이런 일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걸까?



 이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 자세히 담겨있다. 판사, 변호사, 검사, 그리고 사법 체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은 남들보다 특별히 비양심적이거나 특별히 더 양심적일 것이 없는 평균적인 수준의 양심을 가졌다고 할 때, 일반인들이 사법체계에 대해 가지는 불신들 중에서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진짜 문제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두가 흥미로우면서도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해볼 질문들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법인데, 더군다나 사법체계처럼 일반인들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라면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식으로도 눈이 트이는 것처럼 지식의 지평이 화~알짝 열리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대해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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