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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대만의 가을] 여행기 번외편 - 여행 후유증

thezine 2007. 10. 8. 02:16
 안그래도 요즘 신문에 '가을 날씨가 가을 날씨답지 않게 비도 자주 오고 흐리다'는 내용이 많다. 날씨가 '한국의 가을 날씨 다운', 하늘이 높고 맑은 날씨였다면 여행 후유증이 덜 했으려나?

 무슨 말이냐면, 날씨가 쨍쨍하던 동네에서 여행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바람이 선선한 건 좋은데 날이 너무 자주 흐려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여행 초반에는 지겹도록 하루에도 여러 번씩 비가 내렸지만 여행 중반부터는 날이 아주 좋았었다. 맑고 쨍쨍한 날, 들판을 따라 난 조용한 찻길을 땀 흘리며 걷던 기억이나, 기차를 타고 가며 창 밖으로 푸른 하늘과 햇빛, 넓게 펼쳐진 들판을 보던 기억. 물론 덥고 땀도 났지만 그때 느꼈던 눈부신 태양이 문득문득 그립다.

 대만 동부의 시골에 비하면 탁하디 탁한 삼성동의 (정확히 말하면 '사무실의')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긴 휴가를 다녀와서 일하기가 싫어진 건지, 아니면 방금 쓴대로 태양과 구름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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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촌구석 온천여관에서 묵은 다음날, 택시를 불러서 타고 나가야 할 먼 거리를 무작정 짐을 끌고 나섰다가 한참을 걸어간 적이 있다. '택시 잡아탈 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나선 길, 끝가지 걸어가겠다는 묘한 고집이 생기는 것도 웃기지만 사실.

 고생스럽게 땀을 흘리며 4-5킬로미터를 걸어서 벌겋게 열이 올라 기차역까지 걸을 때는 다리도 아프고 덥기도 무지 더웠지. 당연한 거겠지만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다리는 더 아프고 마지막 몇백미터가 가장 힘들기 마련.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힘들게 걸어 도착한 '루이쑤이'역. 저 택시만 탔으면 10분도 안 걸릴 거리였는데... ㅠ_ㅠ



  힘들게 걸어서 도착했던 기차역, 그날 온 몸으로 받아야했던 따가운 햇살, 규칙적으로 들려온 가방 바퀴 굴러가는 소리, 그 와중에 시원하게 불던 바람. 조용한 시골 마을의 여유로운 공기, 길가에 무성한 옥수수밭...



 그러고 보면 여행지의 공기는 확실히 '거주지'의 공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나보다. 세상에는 세 가지의 공기가 존재하는 것 같다. '거주지'의 공기는 집과 같은 편안함, 익숙함, 때로는 지루함. 그리고 '일터'에는 지루함, 바쁨, 밀린 일과 자리를 지켜야 하는 단조로운 공기가 흐른다.
 
 또 하나가 '여행지'의 공기다.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한 여행지. 그곳의 광고판, 행인의 옷차림, 식당의 음식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소소한 볼거리로 기억에 남는, 자유롭고 느긋한 공기. 나와는 아무 관계 없이 오래도록 존재해왔던 장소와 사람들 속에 툭 떨궈진 이방인이 된 짜릿한 이질감.

 물론 내가 마신 '여행지'의 공기가 현지 사람들에게는 '집'이자 '일터'의 공기였을 것이다. 또 나의 '거주지'나 '회사'의 공기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의 공기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겠지.

 결국 상대적인 거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뜨거운 대만의 공기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여행 때문에 극도로 얇아진 지갑을 볼 때면 이제 한동안은 얌전히 절약하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만, 여행 전에는 '이거 다녀온 후에는 앞으로 여행도 자제하며 그 돈으로 저축을 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어느 정도, 누구에게나 자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으하하 (웃고 나니 우울해... 으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