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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신촌을 이 각도에서 보기는 처음. 그러고 보니 학생 시절 다니던 곳은 6층(칵테일바 런어웨이), 7층(카페... 이름이 재즈였던가?)이 가장 높은 곳이었나보다. 내가 들르던 만화방, 당구장, 플스방, PC방, 술집, 밥집은 거의 지하1층~2층 이었던 것 같다. 바람산은 어쩌면 처음이 아닌지.... 가본 적이 한 번 정도 있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착각이거나. 신촌은 이 정도 높이에서도 꽤나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잠깐 하숙이란 걸 해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무인카페 스터디룸이 되어있다니. 하긴 하숙집이 있기엔 번화한 곳이었나보다. 입대 전날 머리를 깎으러 평소 가던 곳보다 비싸고 좋아보이는, 보보라는 미용실을 찾아갔었다. 그 사이 (그러니까... 25년!?!) 어떤 매장들이 이곳을 거쳐갔을까. 지금은 휑하니..
'재개발'은 그 전에 '개발'이 있었다는 말. 태초에 빛이 있고 언덕배기 가파른 비탈에 빌라들이 지어지던 그 전의 개발 혹은 그 전에 빌라보다 허술한 양옥, 그 전에 판자집 같은 것이 있었을지 모르는 곳. 서울의 경계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원주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전에는 작은 수퍼 작은 세탁소 작고 낡은 철물점이나 백반집이 있었던 것 같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위해 땅을 고르면서 이 곳은 등고선 자체가 달라져버릴 테고 수몰지역처럼 삶의 흔적도 깨끗하게(?) 지워질 것이다. 이미 내가 사는 곳이 그렇고 그 옆의 아파트가 그런 건처럼.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한 번 지으면 고쳐짓기 힘든 아파트가 들어선 후에는 오히려 역사가 쌓일 만큼 보존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 특히 흔할 것인데, 멘탈이 흔들리는 날이 있다. 흔들린다 아니다로 말하긴 뭐하지만 평소보다 약해지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그렇지 않은 날에 난 참 멘탈이 좋아. 좋아졌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조금 멘탈을 저축해뒀다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마음이 편해지는 주문, 만트라 같은 글이 많은 책이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 옛날에 PC통신에 글을 쓰던 건 내가 글을 쓰며 기분을 다스린 것인데, 오늘은 쓸데없이 커뮤니티를 오가며 글을 읽다가 문득 이중에 마음을 다스려주는 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게 있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절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일주일 시작.
핸드폰 ebook을 읽으러 아파트 정원에 나왔다가 개중 멀쩡한 단풍잎을 고르긴 했는데, 종이책처럼 페이지 사이에 꽂아서 보관할 수가 없네.
먹이에 가까이 자리잡을 여건이 되는 동물이 더 크게 자라는 것처럼 단풍도 볕이 좋은 자리의 이파리가 더 잘 익어 보인다. 동물은 자리를 옮길 수 있지만 심어진 자리 자란 각도 그대로 바람에만 일렁일 뿐인 나무들. 단풍잎을 담아와서 나의 베란다 공간에 1㎡짜리 가을 땅을 만들면 좋겠다. 그런데 '벌레가 묻어오지 않을까? 그럼 이파리를 살짝 훈증처리를 할까? 그럼 단풍 이파리가 익어서 이상해질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하고, 아까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저기 이파리들은 깨끗해보이긴 하는데...'하는 생각도 했다. 늦가을도 가을이니까 아직은 좋다. 내일 저녁 비예보가 있다. 많이 떨어지겠구나.
익숙하지만 잘 몰랐던 수 많은 장소 중 한 곳. 섬이 많고 물이 맑아 해산물이 풍부하고, 언덕이 많은 섬길이 거제, 통영과 여러 모로 비슷한 곳. 이름을 아름다운 물이라고 지을 만하다. 남해안의 해안선에 이런 멋진 곳이 많이 있겠구나.
어제 오늘 오는 비는 유독 빗방울이 이리저리 튀고 부서지는 느낌이다. 크게 방울 방울 떨어지는 비와도 다르고 흩날리며 내리는 비와도 다른 느낌. 눈송이의 질감에 따라 진눈깨비, 싸리눈, 함박눈, 다르게 부르는 것처럼 비도 방울비, 가루비 같은 구분이 있을까 궁금하다. 요 며칠 내린 비는 더 튀고 많이 부서져서 내리는 양에 비해 더 시야를 가린다. 가을비 내린 후에는 반팔 차림 외출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계절은 한바탕 내리는 비가 갈피가 된다.
한 번에 여러 책을 그때 그때 내키는 대로 조금씩 읽어가는 습관대로, 요즘은 이 두 권을 주로 읽고 있다. 인간 없는 세상 -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 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생태계, 자연 환경, 도시 공간 같은 것들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책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각 분야 별로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예상을 펼치는데, 그 밑바탕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살아온 역사, 지구에 남긴 장기적인 흔적들, 지금 우리의 사는 모습 같은 것들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국지 분쟁으로 인해 분쟁 당사자 양쪽 모두가 살지 못하게 된 키프로스 섬 해변가 휴양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이미 현대문명의 손길이 거쳐간 후 불모지가 된 곳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허감과 호기심과 허무..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몇몇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오늘도 한 친구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들은 70년 내외의 시간을 살면서 호오의 감정과 유무형의 재산과, 가족과,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셨다. 내세나 천국이나 윤회를 믿는 것과는 관계 없이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거의'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굳이 이 말을 보탠다.) 모두가 진리로 받아들인다. 하버드 의대 연구소 싱클레어 박사의 노화에 대한 책 서문에는 인생을 풍부하게, 매일매일 의미있게 seize the day하며 살아온 고모(이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온 그 분조차 죽음을 앞두고는 점점 신체..
군복무를 마치고 부대를 떠나는 것을 '전역'이라고 한다.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역할/역종이 바뀐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제대'한다고도 하는데, '제대'란 입대의 반대말이고 '제외한다, 덜어낸다+부대'로 이루어진 단어다.) 미군부대에서 전역은 ETS라고 한다. Estimated Time of Separation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직역하면 (부대로부터) 분리가 예정된 일정이라는 말이다. 미군부대는 선택에 의한 군복무를 하고, 군복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들의 경우 '예비군' 복무를 선택하면 약간의 보수를 받고, 간헐적으로 훈련에 참가하면서 예비군 신분을 유지한다.(고 들었다.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군대 시절 들은 이야기로 적자면 그렇다.) 일종의 파트타임 군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역병사의 ..